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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Jul 04. 2018

[변산] 영화가 청년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

영읽남의 벌책부록 - 변산


최근 개봉한 <여중생A>와 <마녀>, 그리고 <변산>은 한국의 10대와 20대 등 젊은 세대를 중심에 둔 영화입니다. 서로 닮은 게 없는 이 영화들은 장르와 말하고자 하는 주제도 상당히 다른데요. 이번 시간엔 이 영화들이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이 시선의 차이는 감독과 주인공 간 거리의 차이이기도 하죠. 한국 영화의 감독들은 그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여중생A>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집에서 폭력에 시달리는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서 상처받는 미래의 유일한 탈출구는 온라인 게임이었죠. 온라인 가상 세계에서만 그녀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감독은 이 두 공간의 톤 앤 매너를 다르게 가져감으로써 미래가 세계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줬죠. 현실은 건조하고 차갑게, 온라인 세계는 채도가 높고 따뜻하게 표현해뒀습니다.



이 영화엔 제대로 된 어른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보다 난에 더 애정을 쏟고, 다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죠. 이런 무관심 속에 반장, 부반장은 교실에서의 권력자가 되고, 따돌림을 주도하게 됩니다. 학생들에게 중요한 건 친구 간의 관계, 그중에서도 인기 있는 친구와의 관계죠. 이경섭 감독은 10대의 관심사와 그들에게 사이버 공간이 가지는 의미에 관해 섬세한 묘사를 해뒀습니다.


<마녀>는 평범한 10대 소녀 자윤이 각성하고, 초월적인 힘을 가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의 일상, 학생으로서의 삶을 담으려고 하지는 않죠. 그녀가 10대 소녀임을 알 수 있는 건, 앳된 얼굴과 교복이라는 의상뿐입니다. 하지만 영화엔 박훈정 감독이 10대를 이해하는 코드 하나가 있는데요. 오디션 프로그램입니다. 자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해 상금을 받으려고 하죠. 물론, 나중에 이 오디션에 참가한 진짜 의도가 드러나기는 하지만, 가난한 10대의 유일한 탈출구로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변산>은 앞선 두 영화의 주인공과 달리 10대를 벗어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은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죠. 좁은 방에서 잠을 자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학수가 포기하지 않았던 건 래퍼라는 꿈인데요. 이 꿈을 이뤄줄 관문이 ‘쇼미더머니’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준익 감독도 박훈정 감독처럼 젊은 세대의 가장 확실한 계층 상승의 기회를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찾고 있었죠.


<변산>의 ‘쇼미더머니’를 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다양한 과제를 해결하던 학수가 나중에 받게 된 미션은 ‘어머니’에 관한 것이었죠. 학수의 가정사와 얽혀있는 소재인데, 실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출연자의 가정사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악한 가정환경과 불우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부모님 등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좋아하는 사연이죠. 어떤 드라마보다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리얼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오디션 프로그램은 극한의 순간에 찾아온 최고이자 마지막 기회로서 영화와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각박해진 현실, 청년 세대에게 꿈이라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의 반작용으로 나타난 현상이죠. 그리고 그만큼 꿈이란 걸 말하기 힘든 시대를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은 많아지고 있고, 청년 세대가 중심에 있는 영화에서도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변산>의 이준익 감독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를 주인공으로 뒀지만, 그를 깊게 탐구하지는 않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정도의 사연과 고민만 담았죠. 잘 편집된 ‘쇼미더머니’의 예고편 같은 부분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캐릭터들의 깊이가 얕고, 그래서 그들이 만드는 갈등도 해프닝 이상의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청년 세대에 관해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바라보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죠.



이번 주 시네 프로타주에서는 근래 한국 영화 속 청년 세대를 보여주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세 편의 영화 중 <여중생A>의 이경섭 감독만이 그들 옆에 서서 세상을 바라봤다는 느낌을 주죠. 올해 호평을 받은 <소공녀>, <리틀 포레스트> 등과 비교해 진정 그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영화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카메라와 그들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겉이 아닌 속까지 소통할 수 있는 영화를 기다리며, 이번 주 시네 프로타주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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