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Aug 18. 2018

[공작] '첩보물'의 외연을 지닌, 뜨거운 '브로맨스'

영읽남의 벌책부록 - <공작>


윤종빈 감독의 <공작>은 잔잔한 영화입니다. 첩보물이라고 하지만, 다른 상업 영화의 인기 요원들과 비교하면 초라한 면이 있죠. 제임스 본, 에단 헌트, 킹스맨과 달리 최첨단 장비를 지원받지 않고, 특별한 능력도 없습니다. ‘짝퉁’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롤렉스 시계로 적의 눈을 홀리고, 마음을 훔치는 게 특별한 능력이라면 능력이죠. 이번 시간엔 이 평범한 요원이 활동한 영화, <공작>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공작>은 실화를 무난히 옮겨 낸 영화입니다. 남북의 긴장 관계 속에서 한국, 중국, 북한을 발로 뛰며, 첩보 활동을 펼친 흑금성의 이야기죠. 적당한 긴장감과 이를 완화해주는 유머, 그리고 다시 조이는 긴장감을 반복하며 긴 러닝타임을 끌고 갑니다. 이 영화가 긴장감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건, 배우들의 연기력과 과거의 시대와 북한이라는 미지의 공간을 구현한 미장센에 있죠.



리명운(이성민)이 흑금성(황정민)을 탐색하고 경계하면서도 북한의 고위 관계자로서 위엄을 잃지 않으려는 복합적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후반부엔 황정민에게 마음을 여는 뜨거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 캐릭터가 더 좋아지게 하는 연기였죠. <공작> 전에 개봉한 <신과함께-인과 연>으로 올여름 중심에 서 있는 주지훈의 살벌한 연기도 이 영화의 분위기를 더 조여줍니다. 까칠한 모습 중에 보이는 코믹한 모습, 특히 클럽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요. 이 장면에선 김홍파의 연기도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90년대의 중국, 그리고 북한을 밀도 있게 묘사한 것도 영화의 분위기를 잡는 데 큰 몫을 합니다. 고증에 있어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차갑고, 건조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고풍스러운 건물은 그 당시 북한의 상황을 대변해주는 하나의 ‘인물’ 같죠. 그 밖에도 첩보 활동이 있는 호텔 등의 공간은 명암 대비가 두드러지고, 음침하면서도 무거운 느낌을 줍니다. 이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작전을 펼치고,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겨야 하는 흑금성의 처지와 잘 어울리죠. 그리고 곳곳에 음모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첩보 영화다운 분위기를 잘 조성하고 있습니다.



‘액션이 없는 첩보 영화’라는 말에 윤종빈 감독은 ‘스파이가 액션을 쓴다는 건 작전에 실패했을 때다’라는 현답을 내놓았습니다. 액션이 없는 첩보물이라기에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공작>과 함께 언급되기도 했죠. 이 두 영화는 액션을 기대한 관객에게 심심하고 실망을 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액션 없는 첩보 영화에도 몰입할 수 있는 관객에게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공작>보다 훨씬 건조하고, 긴장감도 큽니다. <공작>은 액션의 빈자리를 염려했던 탓인지, 조였던 긴장을 풀기위해 유머를 자주 날리죠. 윤종빈 감독의 능력 덕이 그 장면만 떼 놓고 보면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머 탓에 차가운 영화의 온도가 올라간 느낌입니다. 덕분에 첩보물의 묵직한 힘이 희석되죠.



더불어 차가웠던 영화는 흑금성과 리명운의 동조로 뜨거워집니다. 이 영화는 첩보물의 외연을 지녔지만, 진한 브로맨스와 동포애를 느낄 수 있는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의 동선과 특별한 느낌을 주기 위해 사용한 줌 달리만 봐도, <공작>을 통해 윤종빈 감독은 체제를 초월한 두 남자의 브로맨스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기존 북한 관련 영화인 <의형제>, <공조>, <강철비>와 유사한 주제 의식으로 볼 수 있죠. 그래서 새롭지도 않습니다.


<공작>은 특정 집단을 생각나게 하는 정치성 짙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정치권의 부패, 비리가 단골이 되어버린 시대, 그리고 영화 밖의 현실에서 기무사 관련 문제가 터진 직후인지, <공작>이 보여준 사건이 크게 충격적이지 않죠. 오히려 익숙함과 피로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게 영화 외적으로는 불운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윤종빈 감독의 말을 빌리면, <공작>은 액션을 쓸 만큼의 위기가 없는 영화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분위기를 잘 조성했다고는 하지만, 임팩트가 부족한 영화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무난함 외의 묵직함, 혹은 더 장르적인 재미를 원했던 관객에게는 분명 아쉬울 수도 있죠. <공작>은 첩보영화인 척하다 이야기를 안전하게 봉합하는 무난한 상업영화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맘마미아2] 알면 재미있는 10가지 잡지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