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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Oct 27. 2018

[창궐] 그날 밤, 강림대군이 본 것

영화 일기#069 창궐


“이게 나라냐”, “내가 이러려고 왕이 됐나 싶다”. 시사회 이후 창궐을 대표하는 대사들이다. 이에 김성훈 감독은 <창궐>을 오락 영화로 봐달라며, “대중 영화가 특정 목적을 갖고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겸손이거나 거짓말이다.


<창궐>은 안정적인 전개와 대규모 액션에서의 볼거리를 보장하는 영화다. 하지만, 너무도 익숙한 클리셰와 급격한 액션 밸런스의 붕괴는 보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이청(현빈)이 100 대 1의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을 때, 수천의 이빨이 얇은 천 하나를 뚫지 못한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자준(장동건)이 ‘야귀’가 된 몸을 통제하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뛰어나게 잘생긴 인물은 면역력이 남다른 걸까.(이건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창궐>은 민심을 얻은 자(이청)가 민심을 저버린 자(김자준)와 싸우는 이야기다. 권력에 무심한 태도를 가진 이청이 위기에 처한 백성을 외면하지 못하고, 결국엔 인정받는 전개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결국엔, 백성으로부터의 권력, 정치에 관해 말하는 단계까지 간다. 다만, 이런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설득력 있게 보여줬을까. 여기엔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이청은 백성의 대표가 될 수 있을까

이청은 죽은 형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궁에 들어갔다. 그리고 형을 죽게 한 김자준의 존재를 알고,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칼을 들었다. 그런데 그 복수가 끝나면, 사적인 이유로 들었던 칼이 백성을 위해 든 숭고한 칼이 되어있다. 극의 후반부에 이청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 역시 죽은 형의 사람들을 위한 희생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그리고 그는 칼을 내려놓고서야 수많은 백성을 ‘처음’ 목격한다. 그가 백성이라는 존재를 생각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던가.


또 하나, 자발적으로 힘을 뭉친 백성의 대표가 이청이라는 것 역시 아이러니하다. 이청은 그들의 삶을 모르며, 심지어 조선 밖에 있던 왕족이다. 차라리, 그들과 같은 신분에서 난세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내세우는 게 더 혁명적이고, 신선한 전개를 기대할 수 있다. 이청을 내세운 구도는 역사적 배경을 차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일 것이다. 어떤 이유든 난세를 구할 인물로 이청이 선택된 것부터 <창궐>은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백성은 혁명을 원한다기보단, 통치자를 새로 뽑는 선거를 치르는 인상을 준다.



이청이 그날 밤 본 것

이 영화에서 현실 정치를 환기하는 건 앞의 대사뿐만이 아니다. 김성훈 감독은 더 강렬한 이미지로 어떤 정치적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이청과 김자준의 맞대결이 끝나고 들려오는 백성의 소리, 그리고 그들이 들고 있던 수많은 횃불은 낯설지가 않다. 이 장면은 민중이 들었던 촛불로 청와대(궁궐)의 주인을 바꿨던 ‘촛불 집회’의 이미지와 겹친다. 이 장면을 너무 정치적으로 읽은 게 아닐까 고민도 했지만, 이 다음 장면은 이를 더 보강하고 있었다.


이 장면 다음엔 이청의 얼굴을 담은 클로즈업 샷이 있다. 여기서 그는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민심으로부터의 정치’에 관해 말한다. 강렬한 감정과 뚜렷한 정치관이 나란히 놓인 장면이다. <창궐>의 드라마와 액션의 조화에 관해 따로 말하지는 않겠지만, 이 장면에서 이청이 횃불이 수놓은 장관을 음미하는 장면은 유독 돌출되어 있고, 감정적이다. 과하게 말하자면, 이 장면에선 촛불 정국의 순간을 목격한 감독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김성훈 감독은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창궐>에서 정치성 짙은 어떤 순간을 환기하는 장면과 뚜렷한 메시지가 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빼면, <창궐>엔 별다른 특징이 없다. 그만큼 ‘야귀’는 존재감이 없었고, 액션도 평이했다. 대신, 정치적 메시지에 힘을 많이 준 영화다.


메시지의 옳고 그름도 중요하지만, <창궐>에서 이 뚜렷한 메시지가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 김성훈 감독이 담은 메시지엔 동의하고,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올바름을 ‘영화’로 보여주고, 말하는 방식은 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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