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읽남의 씨네픽업 -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마블 코믹스 팬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 각기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 관한 10가지 잡지식, 지금 출발합니다.
1. 작품의 영어 부제인 '스파이더버스'(Spider-Verse)는 2014년 마블 코믹스에 등장한 평행세계입니다. 다양한 '스파이더맨'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죠. 1963년 처음 출판되어 명맥을 이어오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코믹스 700호(2012년)에서 '피터 파커'가 '닥터 옥토퍼스'와 싸우다 죽으며 끝나는데요. 그러나 이는 마블 코믹스의 대규모 리런치 이벤트인 '마블 나우!'의 사건 중 하나로, 2014년부터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1호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때 나온 이벤트가 바로 '스파이더버스'였죠.
2. 이번 작품을 이끄는 캐릭터는 브루클린 출신의 평범한 10대 소년 '마일스 모랄레스'(샤메익 무어 목소리)입니다. 특히, 힙합 음악과 그라피티를 좋아하죠. 투명 인간으로 변하는 능력이 있는데, 위장술 능력을 지닌 거미 '알케맥스 42'에게 물린 덕분입니다. 2011년 원작 코믹스에서 처음 등장한 '마일스'는 총괄 프로듀서인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가 만든 캐릭터인데요.
그가 실제로 입양한 2명의 흑인 아이들,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그리고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년)에서 '마일스'의 삼촌인 '애런 데이비스' 역할을 맡은 도널드 글로버가 드라마 <커뮤니티>(2009~2014년)에서 입은 '스파이더맨' 잠옷에서 영감을 얻었죠.
3. 원조 스파이더맨 '피터 B. 파커'(제이크 존슨 목소리)도 등장합니다. 특히 자신의 소개 장면에서는 토비 맥과이어가 출연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오마주하죠. 1편의 유명한 키스 장면, 2편의 '메리 제인'을 날아오는 차로부터 막는 장면, 지하철을 탄 시민들을 구하는 장면, 3편의 '흑역사' 춤까지 등장합니다.
10대 히어로였던 '피터 B. 파커'는 이번 작품에서 다년간 슈퍼히어로 생활을 하며 '권태'에 빠진 청년으로 등장하는데요. 이전 작품과 나이대가 다른 '피터 B. 파커'를 표현하기 위해 마빈 킴 모델링 수퍼바이저는 캐릭터의 패션을 재구성하는 등 디자인에 변화를 줬습니다. 또한, 그의 공간을 유심히 보면, 장식장 안에 '스파이더맨 코믹스'를 비롯해 '스파이더맨'을 모델로 만든 '플레이스테이션 4'와 게임 속 '스파이더맨 슈트'를 볼 수 있죠.
4. '스파이더 그웬'(헤일리 스테인펠드 목소리)이 활동하는 세상에서 그녀는 '드러머'이며, 음악과 무용에 재능이 있다는 점이 의상에 반영됐습니다. '스파이더 그웬'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뒤 주변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2014년)의 그것을 반대로 한 것이죠. 한편, 1933년 대공황 시기, 범죄자들과 싸웠던 독특한 이력을 지닌 '스파이더맨 누아르'(니콜라스 케이지 목소리)는 2009년 처음 코믹스에 등장한 캐릭터인데요. 다른 '스파이더맨'들과 달리 흑백으로만 존재하는 세계에서 왔습니다.
5. 미래에서 온 히어로로 어려서 고아가 된 '페니 파커'(키미코 글렌 목소리)는 '벤 삼촌'과 '메이 숙모'의 손에서 자란 뒤, 아버지가 수년 전 남기고 떠난 'SP//dr' 로봇을 조종하며 아버지의 대업을 이어나가죠. 로봇의 머리 부분은 조종사 '페니 파커'와 정신적으로 연결된 방사능 거미의 집으로,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년) 속 전투 병기 '에반게리온'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슬랩스틱 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돼지 스파이더맨'인 '스파이더햄'(존 멀레이니 목소리)은 벽에다 원을 그리면서 그곳을 통과하는 초능력을 지녔죠.
6.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박태현 리드 모델러가 작품의 배경인 뉴욕의 모습을 구현했습니다. 미국 동부에 가본 적이 없는 그는 구글맵 스트리트 뷰를 통해 맨해튼과 브루클린 거리를 꼼꼼히 살펴 디자인을 완성했죠. 또한, '마일스'의 삼촌 '에런'은 이번 영화에서 유일하게 목소리 연기 배우의 외모에서 착안한 캐릭터인데요. 김시윤 캐릭터 디자이너는 마허샬라 알리의 긴 체구와 얼굴에서 영감을 얻어 캐릭터를 디자인했죠.
7. 이번 작품은 처음 '스파이더맨 코믹스'가 나온 1960년대의 프린트 기법과 현대의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를 섞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애니메이션보다 두세 배가량 더 많은 장면으로 구성되었는데요. 덕분에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사상 가장 많은 제작진이 동원됐습니다. 보통 애니메이터 한 명이 일주일을 꼬박 일해 4초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면, 이번 작품은 일주일에 1초 분량을 만들지 못할 정도로 고된 작업을 해야 했죠.
8. 또한, 제작진은 '스파이더버스'라는 평행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특수효과에도 공을 기울였습니다. '스파이더맨'들이 차원을 이동할 때마다 극 중 캐릭터나 건물 등에 나타나는 깜빡임 현상은 똑같은 캐릭터를 여러 대의 카메라로 각각 촬영해 만든 효과입니다. 이는 한 프레임 안에서 여러 시각을 보여주는 '큐비즘' 기법으로, 현재 주인공이 사는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평행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만든 추상화 작품과 같은 시각효과 방식이죠.
9. 이번 작품은 지난 11월, 세상을 떠난 마블 명예회장이자, '스파이더맨'을 창조한 스탠 리의 유작입니다. 그는 '마일스'에게 '스파이더맨 수트'를 판매하는 의류 가게의 주인으로 등장하는데요. 또한, '마일스'와 '피터 B. 파커'가 뉴욕 도심의 길거리를 걷고 있을 때 이들과 멀찍이 서 있거나 행인으로, '마일스'가 거미줄을 타고 고층 빌딩이 가득한 도시의 공중을 가로지를 때 지하철 창문에서 '스파이더맨 포즈'를 취하는 장면이 눈 깜짝할 사이에 등장합니다. 또한, 엔드 크레딧에는 스탠 리를 추모하는 문구와 영상이 특별히 삽입됐죠.
10.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다른 장치로, 영화의 오프닝 이후 '미국만화잡지협회'의 만화 검열 규제 '코믹스 코드'(1954년~2011년, CCA)가 등장합니다. 보건부로부터 스탠 리는 마약의 위험성을 경고해달라는 이야기를 요청받았고, 그는 '해리 오스본'이 마약으로 폐인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준비했지만, '코믹스 코드'의 규제로 압박을 당했죠. 그러나 스탠 리는 이를 무시하고 1971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96~98호를 '코드'를 붙이지 않은 상태로 출간했는데요. 이후 '코믹스 코드'는 점차 힘을 잃었고, 2001년 마블 코믹스는 '코믹스 코드'를 떼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