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바보야, 중요한 건 스펙터클이 아니야

Appetizer#187

누구나 매일 잠을 자고, 이 당연한 활동엔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지친 신체와 뇌가 쉬기 위한 시간으로 알려져 있고, 이 영역을 더 탐구하기 위해 지금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루 24시간 중 6시간 이상 잠을 잔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 삶에 서 꽤 많은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은 내 삶의 일부이지만 내 것이라 하기 애매하다. 그 시간을 우리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기에. 물론, 꿈이라는 활동을 통해 무의식이 작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삶에서 대개 그 시간은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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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내 몸을 통제할 수 없는 그 수면 시간에 일어나는 기이한 변화에서 출발한다. 현수(이선균)는 잠들면 두 번째 자아가 깨어난다. 평소의 차분하고 다정한 남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폭력적이고 기이한 행동을 하는 남자가 그 자리에 서있다. 이렇게 또 다른 현수가 활동하는 시간, 그의 아내 수진(정유미)은 잠에서 깨어 그의 모든 걸 목격한다. 수진은 현수에게 말을 걸지만, 현수는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다 잠에서 깬다. 한 남자의 무의식을 관찰하는 한 여자의 의식. 이 부부를 관찰하는 관객은 현수의 두 번째 자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 영화는 비교적 로케이션이 적었고, 집을 중심으로 대부분 실내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날씨, 사람, 소음 등 외부 환경의 변수 없이 촬영을 진행해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었을 거라 예상된다. 실제로 <잠>은 50억 원 미만의 제작비로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는 데 성공했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건 작은 규모였지만, 심리적 갈등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확장되고 관객을 불안하게 한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잠>은 갈등을 어떻게 만들고 변주하며 관객을 스크린에 빠져들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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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현수의 기이한 행동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를 찾는다. 이때부터 현수는 자신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점차 이 방법에 한계를 느낀 수진은 무속인을 매개로 비과학적으로 현상에 접근한다. 이렇게 과학과 비과학이라는 대립항을 통해 첫 번째 갈등이 시작된다. 여기서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그들의 선택은 더 흥미롭게 보인다. 무의식에서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현수는 과학을 통해 이성적 답변을 찾고, 자의식을 갖고 현수를 이성적으로 관찰하는 수진은 비이성적인 답안을 찾아간다.


이런 대립은 인물 내에서도 진행된다. 잠든 현수는 귀신 같은 행동을 하지만, 이를 경험한 적 없어 차분할 수 있었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한다. 그러나 수진은 현수와 반대의 상황이다. 제정신으로 현수의 광기를 목격한 수진은 자신의 아이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에 이르면 불안감이 극에 달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잠>은 밤에는 현수가, 낮에는 수진이 조금씩 괴물처럼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 인물에게서 보이는 양면적인 속성, 그리고 이런 양면성을 보이는 인물 간의 대립은 다양한 층위에서 긴장감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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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의 수면 상태를 과학과 비과학, 이성과 광기가 오가며 해석하는 과정에서 부부의 관계는 삐걱거리고, 객석의 불안감도 커진다. 더구나 등장하는 의사와 무속인 모두 의뭉스러운 점을 보이게 디렉팅된 연기를 보이기에 관객은 누구도 믿을 수 없어 혼란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판단에도 의문을 게 한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히스테릭한 상황까지 관객을 몰고 간 덕분에 <잠>은 점프 스퀘어와 자극적인 이미지를 배제하면서도 극도의 공포를 조성할 수 있었다.


좁은 공간 안에 기이한 현상과 복합적인 인물을 밀어 넣고, 갈등의 양상을 정교하게 세팅한 <잠>은 스펙터클과 액션을 도구로 스크린을 점유하려는 지금의 상업 영화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려는 것 같아 흥미롭다. 영화는 꿈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잠>을 통해 꿈을 다시 꿀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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