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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비로운별 Mar 29. 2021

'라면왕', 그가 남기고 간 것들

故 신춘호 농심 회장 별세

과거 라면만 48년째 드셨다는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화제 된 적이 있는데, 그 주인공은 박병구 할아버지다.


그는 장의 통로가 좁아져 음식을 소화할 수 없는 '장협착증' 진단을 받은 뒤 민간요법부터 수술까지 진행했지만 별다른 회복세를 보이지 않았는데, 최후로 선택한 음식 하나가 미음도 토해낼 정도인 그에게 포만감을 느끼게 했다. 


바로 그가 선택한 최후의 음식은 귀하디 귀한 약초도 아니고, 몸에 좋다고 정평이 나있는 건강식품도 아닌 '라면'이다. 다름 아닌 그가 최초로 접한 농심의 '소고기라면'이 의지를 잃어가는 그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어준 것이다.


이후로 '소고기라면'에 이어 '해피라면', '안성탕면'까지 연결된 그의 생존을 위한 농심 라면 사랑이 48년째 지속돼 '농심의 동반자'가 되셨던 박병구 할아버지. 그는 농심 라면 덕분에 아흔이 넘도록 장수하셨지만 지난 2020년, 안타깝게도 향년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故 박병구 할아버지의 사례 외에도 뉴스를 보면 성공 신화를 쓴 사람들이 지난 힘들었던 무명 시절을 회상하면서 근근이 라면으로 버텼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싼 가격과 든든함을 갖춘 라면 한 봉지가 전국 곳곳의 서민들에게 큰 힘이 되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많은 이야기들은 '라면왕'이라고 불렸던 故 신춘호 농심 회장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과연 '라면왕',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한국 식품기업의 초석을 다지며 롯데 창업 과정을 도왔지만, 라면사업을 놓고 사이가 엇갈려 그는 홀로서기에 도전했고 결국 '농심'이라는 거대한 식품 기업을 일궈냈다.


결국 그가 가지고 있던 라면에 대한 집념과 의지, 소신은 전쟁 후 가난해 먹을 것이 없던 시기에 값싸고 간편하게 서민들의 굶주린 배를 채웠던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농심의 대표 히트 상품인 '신라면', '짜파게티', '안성탕면' 등의 라면들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봉지가 뜯어지고 있고, 컵에 물이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도 진출하고 있어 해외여행 경험이 있다면 식료품 코너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의 제품과 똑같은 모양의 '신라면' 봉지들은 우리를 반갑게 할 뿐만 아니라 라면의 세계화를 실감 나게 한다.




故 신춘호 농심 회장은 지난해 12월 마지막 출근 당시에도 "거짓 없는 최고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을 키우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사업 초기 때부터 오직 기술 개발과 품질 향상에만 매달려 제품 본연의 경쟁력에만 집중했던 그의 열정과 투지가 여러 번 바뀐 강산이 무색하게도 일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라면왕'은 하나의 큰 별이 되기 위해 떠났지만, 그의 인생 철학과 이것이 담긴 라면이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남겨졌다.



《형 신격호 반대 뚫고 라면사업…짜파게티 새우깡 작명하기도》-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special-edition/view/2021/03/293948/)



Photo by jese75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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