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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비로운별 Apr 06. 2021

우리만의 사진사

오래된 컴퓨터 속 사진들

“우와! 화면 켜졌다!”


방 한쪽 구석에서 전원이 켜지지 않아 수년째 방치되어 있던 구식 컴퓨터가 오랜 잠을 자고 일어난 듯 힘에 겨운 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렸다. 약 1시간 정도 본체를 열어 수년간 묵혀있던 먼지를 털어내고 이것저것 부품들을 뺐다 껴봤더니 마침내 일어날 생각도 않던 컴퓨터가 기지개를 켜고 왜 이제 왔냐는 듯 힘겹게 나를 맞이했다.


아무래도 오래된 연식의 컴퓨터라 지금은 지원되지 않는 운영체제가 설치되어 있었다. 보통 이 정도로 오래되고 심지어 고장까지 난 컴퓨터는 그냥 버리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겠으나 반드시 이 컴퓨터를 고쳐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


이 컴퓨터에는 부모님께서 찍은 우리 가족의 사진들이 가득했기 때문인데, 별도로 저장해 두지 않고 이 컴퓨터에만 저장해두었기에 이 사진들을 복구하려면 반드시 이 컴퓨터를 고쳐야만 했다.


마침내 나는 혼자 끙끙대다 컴퓨터를 고쳐내는 데 성공했고 혹여 비실비실 힘을 잃어 전원이 픽 꺼져버릴까 갓난아기 다루듯 클릭도 조심스럽게 하며 사진이 저장된 폴더를 찾았는데 방대한 양의 사진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잘 기억나지도 않는 내 유년 시절 사진들부터 남동생과 늦둥이 막내 여동생의 사진까지 양이 어마어마했다. 마침내 모든 사진들을 별도로 백업해두고 오랜만에 어린 시절의 사진들을 보는데 상당히 재미있었다. 흔히 술자리에서 친구에 대한 일화가 좋은 술안주가 되는 것처럼 추억 회상만큼 또 재미있는 게 어디 있으랴.


지금은 데면데면한 동생들과 무엇이 그토록 재미있던 건지 서로 꼭 붙어 깔깔 웃고 있는 사진도 있었고, 어렸을 때 사진 찍기를 싫어했던 내가 엄마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웃고 있는 사진, 그리고 세 번의 졸업식 사진들까지 나와 동생들의 성장 과정을 되돌아보니 어느덧 20대 중반에 발을 살짝 담그고 있는 아저씨가 된 내 모습에 세월이 야속하기만 했다.


사진을 보다 중간중간 아빠와 엄마가 나온 사진과 가족사진도 눈에 들어왔다. 약 10여 년 전 부모님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어렴풋 남아있던 흔한 30대의 어른 모습이었다.


이 사진들을 보고 지금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매일 봐서 체감이 되지 않아 몰랐던 것일까, 어느새 흰머리가 나기 시작해 채도가 옅어진 머리부터 얼굴에 하나둘씩 자리 잡은 주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어린 시절 언제까지나 늙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더 보고 싶어 부모님의 다른 사진을 찾기 시작했는데, 애써 컴퓨터를 고쳐 찾은 사진 폴더에는 나와 동생들의 사진으로만 가득했고 정작 부모님의 사진은 드물었다. 졸업식 때나 가족사진 말고는 부모님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이를 보며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들의 일상은 찾아보기 힘든 그들의 사진처럼 우리를 낳은 이후로 거의 사라진 듯했다. 항상 그들의 이름 대신 내 이름이 앞에 붙은 ~~ 아빠, ~~ 엄마로 불리며 살아왔을 나날들, 그리고 친구들 만날 틈 없이 오로지 자녀들에게만 쏟아붓던 헌신적인 사랑과 시간들.




그들이 우리에게만 플래시를 비췄기에 유난히도 많이 차이나는 부모님의 사진과 우리들의 사진 비율, 그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당시 부모님의 땀과 눈물로 파인 주름들에서 보이는 그들의 사랑은 내 마음 한구석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사진들을 보며 과거의 추억들을 헤집어놓고 노트북을 닫으니 심란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되는 듯했다. 이젠 자랄 대로 자란 내가 부모님의 일상을 되찾아드려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젠 행복한 부모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많이 찍어 우리 가족 앨범의 비율을 맞추고 훗날 내가 사진들을 보고 부모님의 사랑을 느낀 지금 이 순간처럼 부모님께서 우리가 찍은 그들의 사진들을 보고 우리들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날이 오기를 염원하며.


언제나 사랑하는 우리만의 사진사님, 이제 편히 앉아 활짝 웃어보세요. 하나 둘 셋!




Photo by Immo Wegman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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