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비로운별 Jun 29. 2022

교생 혹은 아이돌? (1)

7년 만에 느낀 학교 분위기

냉기와 따스함 섞인 바람이 불던 지난 4월, 흔히 '교생실습'이라 하는 교육실습을 다녀왔다.


교육실습은 대학 교직이수 과정 중 거의 막바지라고 볼 수 있는 단계다.

나는 비사범대 국문과에서 교직이수 과정을 밟고 있고,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는 4학년이기에 마침내 교육 실습할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우선 교육실습 전 들었던 생각은 설렘과 두려움이었다.

지난날 그토록 동경했던 교사의 삶을 잠시나마 체험할 수 있게 됐지만, 잘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공존했다. 다른 건 몰라도 실제로 수업지도안을 짜고 학생들 앞에서 수업해야 하는 연구수업이 특히 그랬다.

지금 다시 수능 국어를 풀어도 높은 성적이 안 나올 것 같은 내가 과연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지 걱정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4월은 오고야 말았고, 나는 해내야 했다.




명찰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나는 재학 중인 대학교와 같은 재단인 특성화고등학교로 실습학교를 신청했다.

실습학교 선정 당시 이사를 갔었는데, 이사 가는 지역에 있는 모든 고등학교에 연락을 넣었음에도 당시에는 외지인이었던지라 다들 나를 받아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오히려 이런 상황이 결과적으로 좋았던 걸까, 같은 재단이어서 그런지 편하게 실습할 수 있도록 많이 신경 써주셔서 좋았다.

하지만 거리는 멀었던 탓에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루틴은 나를 피곤하게 했다. 나중에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는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을 정도다.


한 달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언제 두려움을 느꼈었냐는 듯, 멀었던 출퇴근 거리 말고는 힘든 건 없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심했었던 건 행동과 처신 문제였다. 실습학교가 여고였는데, 나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조심해야 할 게 많은 요즘 세상이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도 남자 교육실습생들은 철저하게 학생들과 50cm 정도(?) 거리두기 해달라고 권고하셨다. 아이들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서로 조심한 끝에 문제없이 마칠 수 있었다.




마침내 담당학급을 맡게 되고 처음 방문했을 때, 굉장히 놀랐었다. 나름 서울 소재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급 인원수가 합쳐서 12명 남짓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요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 학령인구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다.

물론 이런 요인도 있겠지만, 실습학교가 특성화고등학교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름 덕분에 아이들 이름 외우는 건 그나마 수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쉬웠다는 건 아니다. 아이들의 사진이 있는 학급 명렬표를 받아 열심히 외우긴 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이들이 전부 마스크를 쓰고 있던 탓에 얼굴을 외우는 건 큰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번호순이었던 자리 배치가 나를 살렸다.


이름 외우다가 내 옹졸한(?) 마음을...


이름도 다 외우고 나니, 점점 아이들에게 내적 친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아이들은 수줍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고, 그렇게 친하진 않았다. 아침 조회도 들어가고 오후 종례도 들어가면서 나름 아이들과 대면은 많이 했었지만, 실질적으로 10분 남짓한 시간이라 친해질 시간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내가 노력을 안 한 부분도 있었다. 수업 간 쉬는 시간도 있고, 어마어마하게 긴 점심시간도 있었는데 내가 먼저 다가간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가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시기에 아이들과 상담 후 일지를 작성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나는 이 과제를 명목으로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과연 상담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걱정했다. 그래도 종례 때 담임선생님께서 교생 선생님이 상담할 아이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전파해주셨고, 다행히 2명의 아이들이 상담하고 싶다고 내게 얘기해줬다!


그런데 막상 상담을 하려니 나는 아이들의 진로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걱정돼서 아이들의 진로와 관련 있는 대학교의 입시 요강을 보기도 했다. 마침내 찾아온 아이들과의 상담 시간. 점심시간이 반쯤 지났을 무렵 교육실습생 대기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가 보니 5명이 있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3명의 아이들이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상담하기로 했던 2명을 따라온 것이라고 했다. 일단 침착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뭐...? 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먼저 와줬다고...?'라고 생각하며 내심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5명의 아이들과 상담을 했는데, 사실 상담이라기보다는 그냥 잡담 같은 대화에 가까웠다. MBTI 이야기와 형제자매 유무 등등 친해지는 과정에서 흔히 하는 질문들을 했었다. 이렇다 보니 상담일지 작성은 물 건너갔지만, 그래도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먼저 다가와줬다는 아이들의 고마운 마음에 감동했었다. 사실 이 상담이 교육실습 기간 중 가장 행복했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뭐 상담일지는 나중에 회장과 부회장을 맡고 있던 아이들이 다시 상담하러 와줘서 그때 나눈 진솔한 이야기로 작성해 제출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상담을 해보니 항상 밝고 순수해 보였던 아이들이 속으로는 입시에 대한 불안함과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많이 자신감을 잃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그저 잘 될 거라는 위로밖에 해줄 말이 없어서 무력감을 느끼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들과의 상담이 어느 정도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첫 번째 상담에서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인데, 항상 내가 반에 들어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나한테 관심 없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니 상담 후 나도 적극적으로 쉬는 시간에 틈틈이 우리 반에 찾아가려고 노력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너무 고마웠지만, 내가 담당하지 않았던 학급에서도 내게 먼저 다가와줬던 아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이 정말 많지만,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 다음 글에 감사함을 담기로 한다.

작가의 이전글 할머니의 기싸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