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즐겁다

솔로 후쿠오카 여행기

by 신비로운별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봄이 아직 싱그럽게 빛나고 있는 요즘, 인생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갔다 왔다.


사실 처음부터 혼자 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같이 가려고 한 친구가 회사 사정으로 결국 불참을 선언해 홀로 떠나게 됐다. 그래도 5일 중 본래 친구와 함께하기로 했던 3박 4일을 제외하고, 1박 2일만큼은 혼자 지내보자 다짐해 비행기와 숙소를 추가로 예매해 놓았기에 오히려 좋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목적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일본 후쿠오카였다. 지난 3월 말 친구들과 오사카에 다녀온 후 일본 감성에 취해 재빨리 예매한 후쿠오카행 항공권. 하늘도 내 즉흥적인 행보에 힘을 실어준 건지 오사카 때와 다르지 않은 온화한 봄 날씨가 이어질 줄은 몰랐다.


막상 도전하는 마음으로 떠나려 했지만, 그래도 인생 첫 솔로 해외여행에 두려움이 있었던 걸까? 인천국제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오전 4시 30분 발 공항버스에 탑승했다.


그렇게 2시간을 달려 공항에 도착하니 이제야 실감이 났다. 이른 오전 시간이지만 저마다 설레는, 아쉬운 마음으로 출국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혼자였던 나는 귀에 꽂은 버즈 속 음악에 몸을 맡기며 덤덤하게 출국 심사를 마친 뒤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역시 나는 즉흥적인 성격이 강한 P형 인간. 사실 출발 전날까지 구글 지도에 가고 싶은 곳만 저장해 놓고 별다른 계획을 세워놓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후쿠오카에 도착하고 숙소에 캐리어를 맡긴 뒤에야 동선을 고려한 일정을 세웠다.


물론 이런 이유로 여행 동선에 예기치 않은 변수가 생기기도 했다. 정말 가고 싶은 카페와 식당, 이자카야였는데, 하필 내가 가는 날만 휴무였던 것.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주로 지도에 표시해 놓았던 곳은 SNS 등에서 꼭 가봐야 한다던 곳이었는데, 한국 사람들로 가득했던 웨이팅 맛집은 별로였고, 오히려 변수에 발길을 돌리며 즉흥적으로 찾았던 곳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람이 없어 조용했던 카페에서는 아침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카페라떼와 함께 고소한 곡물의 풍미가 인상적이었던 디저트가 일품이었고, 번화가 외곽 쓸쓸한 골목에 자리 잡은 이자카야에서는 서툴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나를 현지인들이 푸근하게 맞아줬다.


이렇다 보니 점점 여행에 자신감이 붙으면서, 혼자여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이 굳어졌다. 혼자여도 전혀 눈치 보지 않는 일본 문화지만 한 명도 가능하냐는 물음과 함께 입장하곤 했는데, 첫날 방문한 이자카야부터 내 마음은 풀리기 시작했다. 한국에 관심이 많다는 이자카야 종업원과 다찌석에서 혼술을 즐기시던 직장인 아저씨, 나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이자카야 사장님까지 현지인들 덕분에 진저 하이볼이 더욱 달게 느껴졌다.

이건 체리 사와..

아무래도 거리 때문일까, 신기하게도 이들 모두 부산 여행은 갔다 왔다고 하더라. 다음 한국 여행 목적지는 아마 서울이 될 테지만, 그다음 목적지로는 내 기억에 인상 깊었던 한국 여행지 중 하나인 수원을 추천해 줬다.


다른 이자카야에서는 일본에서 워홀 중인 한국인 종업원을 비롯해 K팝에 관심이 많은 현지인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침 엔터 업계에 있었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통했고, 이 시간 또한 즐거웠다. 집에 있는 사인 CD를 들고 다시 후쿠오카에 오라는데, 마음 같아서는 오늘이라도 다시 가서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도 혼자 하는 여행이 마냥 평화로웠던 건 아니다. 하필 근교 도시로 떠나 왕복 3시간 정도 기차를 타야 했던 날, 늘 잘 되던 보조배터리가 갑자기 작동을 안 해서 결국 숙소가 있는 하카타로 향하기 전 휴대폰이 방전됐었다. 중심지인 하카타로 돌아가는 건 약소한 일본어로 어찌어찌 물어보며 성공했지만, 문제는 숙소였다. 기차나 지하철을 타는 건 그나마 표지판이라도 있는데, 숙소가 몰려있는 하카타에서 내 숙소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결국 이때 코리안 찬스를 쓰고야 말았다. 하카타역 주변을 약 40분 동안 돌고 돌다가 한국어가 들리는 순간 이들에게 구글 맵 이용 찬스를 한 번 요청해 보리라 다짐했고, 일본에서는 피하고 싶었던 한국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도움을 청해 숙소로 가는 길을 얼추 파악한 뒤 성공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나름 3일 동안 거닐었던 길인데, 핸드폰이 꺼지니 무력하게 후쿠오카에서 김 서방을 찾고 있는 내 모습에 허탈하기도 했다.

이런 묘미도 있었지만, 혼자 여행하다 보니 그동안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풍경들이 더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신사 계단 사이에 피어난 꽃, 낮은 일본 주택 지붕들 위로 걸린 폭신한 뭉게구름, 투명한 유리구슬을 모아놓은 해변, 멀리서 달려오는 열차를 위해 적막히 길을 열어두고 있는 기찻길까지.


만약 대화를 하거나 지도에 집중하며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다면, 사람들로 붐벼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면 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풍경이다. 비록 무용(無用)할 수도 있는 것들이고, 대표 관광지로 알려진 곳을 향하다 발견한 사소한 것들이지만, 분명 이들은 일당 약 2만 보로 지친 나를 멈춰 세우면서 어떤 것들보다도 나를 뭉클하게 했다.


5일 동안 이런 매력을 느끼고 나니 혼자 떠나는 해외여행이 이제는 두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면 향후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오롯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볼 수 있게 되는 귀중한 시간이 될 테니, 가능하다면 홀로 떠나봐야지. 그동안 지나쳤을 만한 아름다운 장면으로 비루한 내 나이테를 촘촘하게 채우리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