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행복하게
최근 호황이라는 OTT를 매달 돈을 써가면서 구독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말 내가 흥미를 느끼지 않는 이상 굳이 TV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옛날 밥 친구였던 프로그램들은 어느새 저마다 본질을 잃기 시작하며 퇴색했고, 결국 이들과의 연을 끊고 말았다.
이후 새롭게 찾은 밥 친구는 유튜브. 여느 유튜브 이용자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책상 모니터 앞 간소하게 밥상을 차린 뒤 빨간색 재생 버튼을 누르며 식사를 시작한다.
내가 최근 즐겨 보는 유튜브 콘텐츠는 한일커플, 한일부부 에피소드다. 물론 '나는 한일커플이 돼야지~'라는 생각으로 영상을 찾아본 건 아니다. 최근 일본 여행을 준비하며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던 중, 알고리즘에 얽혀 우연히 접하게 된 이들의 일상은 건강한 미래의 결혼관을 정립할 수 있게 해 줬다.
그렇다고 이들의 일상을 담은 유튜브 영상이 TV 프로그램을 뒷전으로 할 정도로 재밌느냐고 물어본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수요를 목적으로 한 콘텐츠는 대중의 반응을 필요로 하고, 그렇다면 자극적인 요소가 필수불가결이겠지만 이들의 유튜브 영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이들의 영상은 재미보다 교훈과 공감으로 나를 사로잡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한 영상에서는 아내의 눈물이 나를 감동하게 했다.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다는 음식을 구매하기 위해 남편은 전날부터 타 지역으로 향했고, 심지어 새벽부터 웨이팅을 한다. 마침내 남편의 노력으로 새벽 공기가 담긴 음식을 받아 든 아내는 매우 기뻐하면서도 눈물을 흘린다. 이 눈물에는 여러 복합적인 의미가 담겼겠지만, 내 마음을 울린 가장 큰 의미는 결과가 아닌 과정까지 생각하면서 표현한 고마움이었다는 것이다. 아내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음식을 받아 들고 좋아할 아내를 생각하며 타지 웨이팅까지 나선 남편의 새벽을 이해한 눈물이었던 것이다.
다른 영상에서는 결혼을 준비하며 동거를 시작한 한일커플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여자는 부모님이 자수성가를 이뤄냈음에도 이들의 힘을 빌리지 않더니, 남자와 함께 0의 상태로 새 출발에 나선다. 더군다나 이들의 출발지는 여름에 더 덥고 겨울에 더 추운 옥탑방이다. 이렇듯 상대적으로 열악한 여건임에도 두 사람은 불평 하나 없이 안분지족(安分知足),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자세로 행복한 미래의 뼈대를 세운다.
실제로 신혼집이나 혼수가 중요한 한국과 다르게 일본은 신혼집이 월세든 자가든 중요성이 크지 않다고 한다("일본, 한국보다 신혼집 부담 덜해..집 크기 안 따지는 문화", 중앙일보, 2016). 출발 단계에서 모든 것을 갖추고 시작하는 것이 아닌, 0의 상태에서 함께 생활하며 하나씩 갖춰가는 문화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문화에 매우 호의적이다. 장남으로 자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50대에도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님의 등골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분가할 때까지 이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문에 없을지도 모르는, 이런 가치관으로 힘들어할 내 미래의 아내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젠더 갈등부터 시작해 개인주의와 비혼주의가 만연한 세상이다. 특히 비혼주의 면에서는 요즘 TV 예능이 힘을 실었다고 보고 있는데, 이런 면에서 내가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이유를 하나 더 더할 수 있겠다. 이혼은 분명 필요한 제도이겠으나, 이혼이 난무하는 현실의 이면은 대중들에게 자극이 된다. 비록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결국 이 자극에 길들여진 대중은 고성과 눈물로 중첩된 결혼 생활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더욱 비혼을 꿈꾸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 자극과 재미가 없더라도 따뜻함과 배우고 싶은 점이 많은 한일부부 유튜브를 본다. 나 또한 이들처럼 힘들더라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도닥여주며 함께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