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수제비에 눈물을 훔친 소년

같은 21세기일지라도

by 신비로운별

2025년 행정구역 명칭이 읍으로 된 한 소년의 동네에는 십여 개의 돌 징검다리를 두고 흐르는 세찬 물결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비가 올 때는 무늬를 뽐내던 돌들도 잠시 세신을 위해 몸을 숨기지만, 이렇듯 화창한 날에는 사람들의 놀이터가 된다.


작열하는 햇살과 함께 수면 아래로 투명하게 보이는 자갈들이 빛나던 2025년 어느 날, 앳된 학생들의 모습이 길을 걷던 한 소년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시간은 중학생들이 하교할 무렵인 오후 4시쯤이었고, 체육복 혹은 교복으로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던 것으로 보아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중학생들이었으리라.



이들은 후덥지근한 공기와 다르게 시원한 물가에 발을 담그고 손에 집은 자갈의 모양을 비교하고 있었다. 아버지께 전수받은 꿀팁을 설파하며 납작한 돌을 집어든 아이도 있었고, 수없이 물수제비를 시도하다 실패의 맛을 본 아이는 차라리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겠다며 큼지막한 돌을 들고 와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맞다. 평범한 학생들이 물수제비 하는 모습일 뿐인데, 무엇이 소년의 가슴을 간지럽게 하며 발길을 멈추게 했을까.


우선 오랜만에 목도한 상황이라 그런 것일지 모르겠다. 요즘 아이들이라면 걷는 도중에도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을 테지만 전자파 하나 없이 깨끗했던 이들의 물수제비는 소년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한 소년 또한 '낭만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21세기 도입부와 함께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별 것 아니지만 손바닥 만한 작은 카드에 적혀 있는 능력치가 높은 친구를 부러워하고, 화려한 장식과 함께 날카롭고 명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치는 친구의 팽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은 종이로 만들어진 캐릭터 딱지를 불사의 딱지로 만들어보겠다고 주물 댄 뒤 의자발 밑에 넣고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하거나, 2009년 가을 우연히 TV를 통해 전해지던 KIA 타이거즈의 우승 장면을 본 뒤 양현종이 돼보겠다면서 한 손에 꽉 쥐어지지도 않는 야구공의 실밥을 어루만지던 한 소년도 있었다.



분명 즐거웠던 한 소년의 먼지 쌓인 기억을 열어봤을 뿐인데, 키만 커진 소년의 눈가가 붉어지는 건 왜일까.


어쩌면 이 소년은 모르는 곤충이나 식물을 발견할 때 검색창이 아닌 키가 큰 어른에게 물어봐야 했던 그때를, 흰 쇠창살이 걸린 우리 집 베란다 창문을 타고 놀이터까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때를, 집 전화기로 친구 부모님께 안부 인사를 전하며 친구를 불러내야 했던 그때를, 정글짐 밑 푹신한 모래구덩이에 묻혀 있던 500원을 집 앞 분식집 떡꼬치와 맞바꿨던 그때를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햇빛에 달궈진 징검다리를 건너던 한 소년은 그 짧은 찰나에 스쳐간 기억들을 어루만지며 눈가를 닦았고, 지면에 발을 디딘 그 소년은 순수하게 물수제비에 몰두하는 중학생들을 보며 미소를 지은 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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