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족이라

by 신비로운별

수능이 치러진다는 것만으로 겨울이 다가왔음을 체감한 요즘,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모두 모였다.


가족인데 왜 모이지 못하냐고 묻는다면, 아빠는 '유채꽃 기러기'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직장을 구한 아빠는 반도 북방에 위치한 집에 거리상 오기 쉽지 않고, 직업 특성상 관광객이 많을수록 더욱 바빠진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하는 명절이 언제였는지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제 남동생마저 기러기가 됐는데, 유채꽃 향 가득한 제주도로 아빠와 함께 떠난 탓에 우리 가족은 모이기가 쉽지 않다.


이번엔 운 좋게도 아빠와 남동생이 함께 휴가를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에 두 사람이 집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휴가를 써도 너무 바쁘면 또다시 다음을 기약해야 할 확률이 있었고, 얼굴을 마주한 게 몇 년 전이라 어색함이 클 것 같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아빠와 동생이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아마 마지막으로 아빠를 봤던 게 4년 전쯤 현재 집으로 이사했을 때였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때도 이사를 마치고 바로 떠났던 아빠였는데, 계속 비밀번호가 잘못됐다는 도어록의 신호음을 듣고 나서야 아빠와 동생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사한 뒤로 도어록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옹벽 같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온 아빠와 동생의 모습은 많이 낯설었다. 늘 미용실 의자에 앉자마자 "스포츠머리"라고 외치던 아빠의 짧은 머리에는 중년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흰색빛이 감돌았다. 충격적인 건 동생이었는데, 나랑 비슷하게 마른 체형이었던 녀석은 통통, 아니 뚱뚱해진 몸으로 풍채를 드러냈다.


이런 변화 속 어색함까지 추가돼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그래도 변화가 없을 것 같았던 내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말이야 감흥이 없을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주인을 마주한 강아지처럼 반갑다는 비언어적 표현을 숨길 수 없는 미소로 드러내고 있었다(살찐 동생이 웃겼던 게 크긴 했을 거다).


마지막 외식은 언제일까


나는 임용고시를 약 일주일 남겨둔 상황이라 모두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5명의 가족이 함께했던 식사 시간만큼은 서늘했던 집에 볕이 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기러기는 다시 떠나야 했다. 길게 휴가를 낼 수 없어 간소하게 챙겨 온 짐을 다시 꾸리고 떠날 준비를 마친 두 사람. 그렇게 열기 어려웠던 도어록이었는데, 아빠와 동생이 집을 나설 때는 어찌 그렇게 쉽게 열리던지. 평소 같으면 집 안에서 배웅했을 엄마가 건물 밑까지 따라가는 걸 봤는데, 엄마도 나처럼 많이 반가웠고 아쉬웠던 모양이다.


서늘한 기운이 맴돌던 창문으로 본 아빠와 동생의 발걸음은 왠지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우리 가족이 함께한 기억에 고단한 두 사람의 뒷모습으로 책갈피를 꽂아 놓은 뒤, 공부하던 책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머릿속을 뒤집어 놓던 중세 국어는 온몸에 힘이 빠지며 더 복잡하게 보였고, 공부와는 반대로 좋게 느껴졌던 책 냄새는 코 끝이 찡해져 느낄 수 없었다.



이들이 떠나고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아빠가 집에 장기간 없었어도 엄마가 주춧돌 역할을 해주고 있었지만, 신체적, 기술적인 면 등은 그동안 내가 아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런 탓에 나는 어린 나이부터 '성숙한 어린이'가 꼬리표였다.


이제 어느덧 잘 적응하며 씩씩한 어른이 됐다 생각했는데, 언제일지 모를 기약과 함께 아빠가 떠나며 내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니 내면에서 일찍 죽어버린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지어졌던 미소는 아빠라는 든든한 울타리 속에서 성숙의 꼬리표를 내려놓으며 생긴 안정감이었을까.


어쩌면, 그동안 개인주의로 혼자만의 삶을 꿈꿨던 나는 가족이 그리웠던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