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놓쳤던, 놓아야 했던

영화 '만약에 우리'

by 신비로운별

※ 본 내용은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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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으로 가득하던 2000년대 어느 날, 고흥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은호(구교환)와 정원(문가영)은 나란히 좌석에 앉게 됐다.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사실 은호는 버스에 타기 전부터 홀린 듯 정원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가 목적지도 같고 심지어 옆자리에 앉게 되다니.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고 했던가. 예상치 못했던 우연과 함께 은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우연(?)이 더해져 두 사람의 접점은 늘어갔고, 그렇게 둘도 없는 사이가 된 두 사람.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게 된 두 사람은 저마다 삶의 목표가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그림 실력과 감성을 갖고 있던 컴공과 공대생 은호는 본인이 개발한 게임으로 100억 원을 벌고 싶어 했고, 정원은 장학금을 위해 사회복지학과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늘 마음속으로 본인만의 디자인이 담긴 건물을 짓는 건축가를 꿈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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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본인만의 앞길이 있던 두 사람이지만, 돈이라는 무거운 현실 앞에서 이들의 목표는 뒤바뀐 듯했다. 은호는 편입까지 준비하며 새 길을 개척해야 하는 정원을 위해, 정원은 건강이 안 좋아진 아버지를 챙기며 게임을 개발해야 하는 은호를 위해, 오히려 두 사람은 서로의 목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둘은 반대 방향으로 달리다 엇갈려버린 걸까. 그 후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과거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우연이 시작됐듯 달라진 상황에서 다시 한번 우연히 마주한 은호와 정원은 아름답던 시절을 떠올리며 괜스레 '만약에'를 덧붙여보는데, 만약에 그때 그랬다면 은호와 정원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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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했지만, 결국 현실에 부딪혀 깨져버린 연인의 이야기는 이제 영화에서 볼 때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사회의 뜨거운 맛을 본 남자가 흑화해 여자의 마음이 돌아선다는 점까지도 이전에 리뷰했던 일본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https://brunch.co.kr/@starsm0126/61)와 결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눈길이 갔던 건, 영화의 연출이었다. 은호가 개발한 게임 속 세계관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세상의 색을 되찾는데, 은호와 정원이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음에도 색을 되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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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별의 이유를 두고 비중을 나누자면 은호의 과실이 클 것이다.


고흥 소재 보육원에서 자라 서울로 상경해 기댈 곳 없던 정원에게 은호와 은호 아버지는 말 그대로 가족이었다. 그렇기에 정원은 은호 아버지의 치료 비용을 보태기 위해 노력했지만, 은호는 본인의 꿈을 내려놓으면서까지 도움이 되려고 하는 정원이 부담스럽고 미안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마음의 문을 서서히 닫은 건 은호가 아닌가. 손바닥만큼의 햇빛도 겨우 드는 고시원에서 살던 정원에게 집 안을 가득 비추는 햇살을 선물해 주던 은호였는데,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려도 선풍기 머리를 정원을 향해 돌려놓던 은호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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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은호와 정원의 연애가 아름다웠던 건,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믿고 의지했기 때문이었다. 각자의 꿈을 잠시 내려놓을 정도로 서로에게 헌신적이었던 두 사람이지만, 결국 이별은 서로를 너무 위했기 때문에 시작됐다.


은호는 게임 개발까지 미루고 입사해 상사의 폭언과 폭력을 견디면서도 생활비와 정원의 학원비를 벌려고 했고, 정원은 편입을 위해 돈도, 시간도 많이 투자해야 했던 상황에서 은호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돈을 벌어 보탬이 되려 했다.


당시 은호와 정원은 이런 서로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각자의 꿈을 뒤로하면서 사랑했다는 것과 동시에 이별마저도 서로를 위하다 그랬다는 것을 10년 후에서야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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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정원이 열차를 타고 떠나려 했던 상황이 은호의 가정처럼 달라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은호가 정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열차를 탔더라면 영원히 함께했을 거라는 정원의 말처럼 실제로 만남은 계속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원이 몸을 실은 열차는 단순히 은호와의 이별을 암시하는 매개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내게 햇빛도, 바람도 내어주지 않는 은호를 위해 달리다 지쳐버린 정원이가 이제 본인의 앞길로 향해 가겠다는 다짐이면서도 은호의 인생에서 본인을 놓아주는 것이라고 느꼈다.


만약 마음의 문을 닫고 열차에 탑승한 정원을 은호가 잡았다면, 10년 후 두 사람의 세상은 색을 되찾지 못했을 것 같다. 서로를 너무 위하고 사랑하다 각자의 색을 찾지 못하고 계속 엇갈렸을 두 사람이기에.


두 사람의 마지막에는 서러운 감정보다도 지난날에 대한 고마움만이 남았고,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색을 되찾은 것이 아닐까. 은호와 정원처럼 이별한 후에도 서로에 대한 비난 없이 오히려 고마웠다는 말로 매듭지을 수 있는 관계였다는 건 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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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같은 건 진작 잊어버렸다.
기억하는 건 같이 소원을 빌었다는 것, 우리가 있었다는 것.



'현실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역주행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차트 정상을 거머쥐고 있는 '만약에 우리'. 의외로 생각보다 현실에 이런 이별 양상이 많아서 그런 걸까.


사랑은 언제나 이상적인 것일까? 왜 항상 현실이라는 것이 사랑을 좌절시키는 걸까. 어쩌면 꿈과 목표만을 좇아야 하는 이상으로 가득한 현실이 정작 사랑이라는 현실을 놓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저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평생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사랑하고 싶은데.


그래서 저 명대사가 더욱 와닿았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건 함께 꿈을 이뤄가는 미래지향적인 것보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을 기억에 남겨놓는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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