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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룡 Oct 19. 2023

만족이 행복이라면, 얼마나 가지면 되는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오늘도 우리에게 행복을 위해, 만족을 위해 욕망을 채우라고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욕망 전차의 종착역은 어디일까요? 사실 종착역은 아무도 모릅니다. 과연 종착역이 있기는 할까요? 왜냐하면 설사 우리가 종착역이라고 하는 곳에 도착하였다 할지라도 만족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욕망이 샘솟을 거니까 말입니다. 참 신기하게도 우리의 욕망은 만족할 만큼 채워졌다 싶으면 스스로 그 크기가 커져버립니다. 어떻게 보면 욕망은 만족을 매우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본능적인 욕망이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하였을 뿐 아니라 오늘 보다 나은 우리의 내일을 열어주는 비전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욕망은 아주 옛날 사바나의 험난한 정글 속에서 살아남게 해주었고, 오늘날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사냥을 하고, 채집을 하고 농사를 경작하는 수고를 기꺼이 하는 것은 맛있게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어서입니다. 행복에 대한 본능적인 욕망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생각을 전략적으로 구현하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농업생산력의 증대, 즉 풍요는 우리의 욕망이 충분히 먹었는데도 계속 먹도록 부추겨 우리를 비만과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세상은 어려서부터 왕자 또는 공주를 꿈꾸며 살아가도록 알게 모르게 부추기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읽는 동화나 여러분이 읽고 있는 소설, 즐겨보는 드라마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기본적으로 대부분 권선징악이 바탕에 깔려 있지만 주인공이 온갖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결국은 백마 탄 왕자나 신데렐라가 되는 내용 아니던가요? 물론 여기엔 도덕을 기본으로 험난한 역경을 이겨내고 비전을 실현하는 교훈이 담겨있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왕자나 공주에 대한 환상을 우리 자신도 모르게 심어준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는 비전이 대재벌의 회장(돈과 권력이 있지만 많은 일과 스트레스에 쌓여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이 아니라 그렇게 든든한 후원자인 회장의 아들이나 딸을 꿈꾸며 살도록 부추기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무위도식하며 사는 꿈을 꾸라고 계속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의 3요소(만족, 충실, 가치) 중에 어느 것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는 엉터리 행복을 추구하는 욕망이라는 전차에 올라타서 막부가내로 밀어붙이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 즉 삶의 만족도가 소득 또는 풍요의 정도와 큰 관계가 없음이 이미 밝혀졌는데도 말입니다. 현대 진화심리학자들이 행복을 한마디로 표현한 “좋은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대비하여 설명하자면, “맛있는 음식”을 스스로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것(충실)이 아니라 가사도우미들이 다 차려 준 음식을 “좋은 사람과 함께”하기 위하여(가치)가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끼리끼리 먹고 즐기는 것(만족) 말입니다. 한마디로 남이야 어떻든 나만은 로또 당첨처럼 벼락 행운이 따라서 유한계급(Leisure Class)이 되어 무위도식하며 살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며 사는 것이지요. 문제의 첫째는 살아가는데 부족하지 않게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으면서도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배가 터지도록 먹으며, 명품을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율성”과 “소속감”중에서 “자율성”의 이기심만 부각되어 함께 행복하게 사는 공동선의 가치보다는 나만 잘살겠다는 무한경쟁의 적자생존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러한 만족과 삶의 가치를 충실한 삶을 통해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빠찬스나 요행에 편승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왕자나 공주처럼 무위도식하며 살고 싶은 것이지요. 세상에 사는 모두가 왕자나 공주가 되면 과연 “소는 누가 키울까요?” 


   이러한 문제에 함몰되어 있는 우리에게 자본주의의 세상은 설상가상으로 우리 인간의 주관적인 행복을 끊임없이 조작하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공동선의 좋은 삶을 위한 대안으로 그의 저서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How much is enough?)”에서 자본주의의 탐욕에 맞선 7가지 기본재(basic goods), 즉 충분의 7가지 조건인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를 제시하면서 사회가 이를 적정 수준으로 보장하자고 제안합니다. 기본적으로 행복은 소득에 비례하지 않는 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공동선의 좋은 삶을 위하여 우리 사회가 충분의 7가지 기본재를 적정 수준으로 보장해주는데 합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삶의 여유를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이제 그 이상의 욕망은 삶의 필수가 아닌 개인적인 선택 사항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욕망이라는 본능에 구속되지 않고 도덕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존엄한 인간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초석을 반듯하게 깔 수 있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 위 글 ‘얼마나 가지면 되는데?’와 관련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용은

  브런치북 “나뚜라”[https://brunch.co.kr/brunchbook/hyunso2]   

    17화 ‘3.2 가야할 길 : 존엄성_2’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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