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합니다.”라는 한마디 인사만으로도 서로의 관계를 훈훈하게 이어간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 이길래. 우리를 이렇게 훈훈하게 하지? 그런데 우리는 한편으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노래를 국민 유행가로 만든다. 오래전 많은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았던 노래다. 사랑이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고? 이건 또 뭐지? 그렇다면 한참 뒤에 유행한 김현식의 노래 “사랑했어요.”의 가사는 어떤지 한번 음미해보자.
김현식의 “사랑했어요.”
돌아서 눈 감으면 잊을까
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해
발길에 부딪치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이제와 생각하면 당신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찾아와
사랑은 기쁨보다 아픔인 것을
나에게 심어 주었죠.
사랑했어요. 그땐 몰랐지만
이 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했어요.
이젠 알아요. 사랑이 무언지
마음이 아프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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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우리 감성을 깊숙이 파고들어 슬프다 못해 아리다. 어디 “사랑했어요.”뿐 이겠는가. 내친김에 요즘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BTS의 “Fake Love”는 어떤지 한번 살펴보자.
BTS의 “Fake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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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사랑만으로 완벽하길
내 모든 약점들은 다 숨겨지길
이뤄지지 않는 꿈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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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ke Love”는 사랑이 완벽하길 바라면서 내 약점들이 숨겨지길 바란다. 그러면서 이루지 못할 공상 속을 헤매며 허상의 꽃을 키우고 있다. 그야말로 완벽한 사랑을 꿈꾸며 거짓의 슬픈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방법이야 어쨌든 옛날이건 지금이건 시대를 관통하며 우리가 좋아했고 좋아하고 있는 사랑에 대한 노래는 대부분 “사랑했어요.”처럼 슬프고 우리 가슴을 후벼 판다. 이쯤해서 근본적인 의문이 샘솟는다. 어라? 원래 사랑은 기쁨과 환희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하여 “눈물의 씨앗”이 되어 버렸을까? 아니다. 사랑을 기쁨과 환희로 노래하는 곳도 있다. 바로 교회, 성당 그리고 절에 가면 기쁨과 환희에 찬 사랑을 노래한다. 뭐지?
사랑에 대한 이 아이러니한 현상은 아마도 우리의 본성인 욕망이 바닥에 깔려 있어서 일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의 사랑(지극한 보살핌) 속에서 “소속감”을 형성하고 이타심을 형성해 왔다.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부터는 하느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에 의지해서 절대자가 나를 구원해 줄 거라는 믿음으로 삶의 고통을 견디며 살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본성인 욕망으로 받아들이는 사랑이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에 길들어져 있어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사랑을 토대로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이 해석한 세상으로 인식하며 산다. 한마디로 세상을 자신의 세계관으로 인식하고 생각하는 “일체유심조”의 “관념론”의 사유에 빠져서 “실재론”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 우리의 문제는 우리 앞에 우주가 있는 그대로의 보편타당한 우주가 아니라 저마다 자신의 우주를 품고 자신의 세계관으로 자기의 세계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보자면 우리 모두는 어려서부터 신데렐라와 같은 동화의 사회규율 권력에 길들여져 공주와 왕자의 꿈을 꾸며 이를 실현하고픈 욕망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공주와 왕자가 될 수는 없다. 아니 2차 세계대전후에 UN에서 선포한 세계인권선언 후의 우리의 세상에는 공주와 왕자가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저마다 “받는 것”에 길들어져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세계관으로 세상을 인식하게 되면 충돌과 투쟁은 필연이 된다. 지금 우리가 현재의 세상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중의 나 또는 누군가가 왕자와 공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존엄한 인간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어야만 한다. 왕자와 공주처럼 감정예측오류에 빠져서 모든 상대가 나를 돌보고 떠받들어 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엄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 존엄하게 대하여야 하는 것이다. 샤를르 드 푸코의 시 “나는 배웠다.”의 다음 구절처럼 말이다.
샤를르 드 푸코의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일 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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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과 관련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용은
브런치북 “나뚜라”[https://brunch.co.kr/brunchbook/hyunso2]
3. 사람, 가야할 길 : 존엄성[16화 ~ 20화]
4. 나뚜라 : 존엄성 실천하기[23화 ~ 27화]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