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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룡 Dec 18. 2023

친환경 수세미

  다사다난했던 2023년도 저물어가고 있다. 나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영광스러운(?) 정년을 맞이한다. 이제 젊은 학생들과 ‘전기 에너지’를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는 행복과도 이별해야할 때가 된 것이다. 지난 4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분에 넘치게 복을 누리며 살아왔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동안 살아 온 생각을 정리하여 “AI, 기후위기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 나뚜라”를 브런치북으로 발간하였다. 그리고 혹시라도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나뚜라’를 실천하며 살아가겠노라고 다짐도 하였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실행하지?’에서 멈춰 서서 망설이고 있다. 그저“군자는 뜻을 얻으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도(道)를 행하고, 그렇지 못하면 홀로 도를 행하는 것이다.”를 되뇌며 자기합리화의 늪에서 유유자적하고 있는 중이다.


      그림. 아내가 만든 친환경 삼베 수세미


   문득 친환경 삼베 실을 사다가 수세미를 한 땀 한 땀 뜨고 있는 아내가 눈에 띄었다. 아내는 미세 플라스틱이라는 말 한마디에 묵묵하게 친환경 수세미를 만들고 있다. 만드는 김에 많이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하루 온종일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 뜨개질을 하고 있다. 아내의 이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사회의 거대한 조직과 시스템 안에서 안주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불과 두 달 정도 지나면 나에게 이 알량한 명함이라는 뒷배도 조직과 시스템이라는 온실도 사라지고 없어질 터이다.   뜻을 얻지 못했다고 뜻을 얻을 때 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하나씩 스스로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지인, 이웃에 같이 하자고 보여주고 권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아내가 아프리카 난민 뉴스를 보며 세탁기 ‘헹굼’ 후 배수하는 물을 그냥 버리는 것이 너무 아깝다고 하며 화장실 변기 물로 이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소리를 흘려들은 적이 있다. 본격적으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그래도 내가 공돌이 아닌가?


   2050년이면 나 같은 사람들은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넜거나 요양원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지만, 우리 손자들의 시대가 될 텐데 기후위기를 극복한 밝은 세상을 물려줘야 하지 않겠나? 나부터 그리고 내 주변의 친구들부터 우리 스스로 바뀌어 보자고 앙탈(?)을 부려봐야겠다. 조직과 시스템이 다 갖추어진 상태에서 일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더구나 조직과 시스템이 다 갖추어질 때까지 막연하게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우물쭈물하다 지구는 임계점인 1.5도를 넘어 팔팔 끓어 버릴 테니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예뻐하는 손자들이 사는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조금 불편하더라도 실생활에서부터 하나씩 실천하고, 실천하자고 권해야겠다.


낙엽귀근(落葉歸根)! 

   나뭇잎은 떨어져 다시 뿌리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나뭇잎은 나무를 통해 번성하고 때가 되면 땅에 떨어져 뿌리의 거름이 되어 나무를 살찌우는 것처럼 만물은 근본에서 태어나 살다가 다시 근본으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로 불교의 윤회설, 노자의 도덕경 등 동양철학과 맞닿아 있다. 굳이 철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가을이 되면 낙엽이 뿌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문제는 단순하게 우리 눈으로 보아서 아는 낙엽귀근의 자연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나무가 자기가 키운 자기의 나뭇잎을 고집하지 않고 세상의 바람결에 따라 자연으로 날려 보내는 의미를 배우고 실천하자는 것이다. 굳이 노자의 생이불유 위이불시(生而不有 爲而不恃)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너무 풍요의 욕심에 집착하지 말고, 자연에 순리에 따르는 비움의 가치, 즉 낙엽귀근을 되새기는 연말이었으면 좋겠다.  

 

    

* 위 글의 내용은

  매거진 “강가에서”[https://brunch.co.kr/magazine/pobak21]의

    공감 2022 [https://brunch.co.kr/@starsrlee/97]와   

  브런치북 “나뚜라”[https://brunch.co.kr/brunchbook/hyunso2]   

    28화 ‘4.3 나뚜라_에너지’와 일부 관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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