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노자와 동양철학
2.3.5. 노자와 동양철학
우리는 축의 시대 성현들의 세계관과 그 흐름을 숨 가쁘게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서양의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으로 대표되는 예수와 기독교,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서양 철학 그리고 동양으로 건너와 붓다와 불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중국의 노자와 공자를 차례대로 만나 보도록 하자.
노자는 축의 시대 다른 성현들과 달리 출생과 사망은 물론 노자라는 성현의 실존 자체가 불분명할 정도로 중국의 제자백가 가운데 가장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그러다보니 노자에 관한 많은 설화가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노자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로 그의 어머니가 유성을 보고 임신하여 82년이 지나 아이를 낳았는데, 태어난 아이의 머리카락이 마치 노인처럼 하얗게 세어 있어 노자라고 이름 지었다는 설화가 있다. 이는 노자의 사상이 후에 도교 교리의 핵심 근간이 되면서 신격화 작업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노자에 대하여 파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문헌은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의 노자전(老子傳)이다.[참고 2.31] 여기서 사마천은 늙은 노자와 젊은 공자(孔子:BC 551~479)의 유명한 만남과 함곡관 관문의 수문장 윤회의 간청으로 노자가 도(道)와 덕(德)에 대하여 상편·하편으로 나누어 기술한 도덕경(道德經) 저술에 관한 일화를 언급하였다. 여기서 사마천의 〈사기〉는 BC 100년경에 쓰여 진 것으로 적어도 노자에 관한 이야기는 무려 500여년 이전의 일인데 이에 대하여 뚜렷한 문헌 제시도 없어 이 부분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993년 춘추전국시대의 분묘에서 〈노자〉 3편의 죽간본의 발굴은 적어도 노자 도덕경이 BC300년 이전에 작성된 것임을 역사적으로 증명해주는 획기적인 발굴이다.2.32 이를 종합해보면 도덕경은 기독교의 성경처럼 구전에 의해 전해 내려오다가 후대에 오늘날의 도덕경으로 정리되었음을 알 수 있고, 노자는 적어도 공자 보다는 앞선 BC600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중요한 것은 노자 생애의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노자의 생각과 세계관을 살펴보는 것이 아닐까? 지금부터 노자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사마천이 〈사기〉의 노자전에서 이야기한 늙은 노자와 젊은 공자의 만남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젊은 시절 공자가 노나라 군주의 명을 받아 주나라의 예법을 배우기 위하여 낙양을 방문했을 때 노자를 만났다. 공자는 공손한 태도로 노자에게 “예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노자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군자는 때를 만나면
수레를 몰고 거들먹거리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티끌처럼 누추하게 떠돌아
다니게 될 뿐입니다.
내가 듣기로 진짜 훌륭한 장사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물건은
깊이 감추어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덕이 있는 군자의 얼굴은
마치 어리석은 듯 보이게 됩니다.
당신은 교만과 욕심을 버리고,
있어 보이는 얼굴빛과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참고 2.5]
우리 같으면 화가 단단히 나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하고 노자와 논쟁을 하든지, 아니면 부끄러움에 방에 쳐 박혀 이불 킥을 해댔을 법도 한데, 노자를 만나고 태연하게 돌아온 공자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고 전해진다.
새는 자신이 능히 날 수 있음을 알고,
물고기는 자신이 능히 헤엄칠 수 있음을 알며,
짐승은 자신이 능히 달아날 수 있음을 안다.
하지만 달아나는 것은 망에 걸리고,
헤엄치는 것은 낚싯줄에 걸리며,
날아다니는 것은 화살에 맞는다.
용에 이르렀을 때 에야 비로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음을 이제까지 알지 못하였다.
오늘 노자를 보며 마치 용을 본 것만 같았다.[참고 2.5]
당시 노자와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 시대의 세상은 혼란스러웠고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성들의 삶은 극도로 궁핍해져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해서 선악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덕을 베푸는 문제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공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도리에 대하여 이미 깨달았고, 세상 사람들의 혼란스러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자가 이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이 세상 이치를 좀 안답시고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인위적으로 움직이는 순간,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 인위적인 조작으로 인해 세상에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 4대 성인의 한사람으로 추앙되고 있는 공자가 노자의 이러한 그릇에 감탄한 것이다. 아무튼 아직 노자와 공자의 생각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알아보지 않았지만, 이 두 성인의 짧은 대화만으로도 노자와 공자의 세계관이 다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공자는 군자로서 때를 만나 현실 세계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본질적 가치를 추구했다. 반면에 노자는 세상의 질서를 깨닫고 인간의 주관성을 탈피하여 세상의 객관성으로 스스로 동화해 나감으로서 세상의 질서가 자연스럽게 인간의 질서가 될 수 있도록 초월적 가치로 나아가고자 했다.
노자는 도덕경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도를 도라고 규정하는 순간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
名可名 非常名(명가명 비상명) 이름을 이름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항상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無名, 天地之始(무명, 천지지시) 이름이 없는 것이 바로 천지의 시작이라 하고,
有名, 萬物之母(유명, 만물지모) 이름이 있는 것은 바로 만물의 어머니라고 한다.
- 도덕경 상편 제1장중에서 - [참고 2.32]
노자는 도덕경의 처음 제1장에서 “도를 도라고 규정하는 순간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라고 선언해 버린다. ‘도(道)’가 무엇인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학교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마다 먼저 새로운 것에 대한 ‘정의(definition)’부터 받아들였던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소하다. ‘도’를 영원불멸한 어떤 것으로 정의내리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붓다가 아트만을 인정하지 않고 ‘제법무아’를 이야기한 것처럼 노자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달리 기본적으로 본질을 부정한다. 다만 붓다는 우리 일반사람들도 팔정도의 수행을 통해 다르마를 깨달으면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것에 비하여 노자는 나의 개인적인 주관에 따라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지 말고 우주의 질서이자 진리인 도의 흐름에 따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자의 세계관이요 인식론이다. 알쏭달쏭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도’를 설명하기 위하여 노자는 바로 우리가 알아들을 법한 ‘명’을 이야기 한다. ‘도’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존재하는 세상 뿐 아니라 존재하는 세상의 현상 너머의 세계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몇 마디 말로 표현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만지고 볼 수 있는 존재를 가지고 ‘명’을 설명함으로서 ‘도’를 이야기 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 컵을 예로 들어 보자. 이 컵이 도자기로 만들어 졌든 유리로 만들어 졌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주관적으로 이것을 물 컵이라 이름(名) 짓지(규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물 컵이라 규정한 물 컵은 사실 거기에 커피를 담으면 커피 잔이요, 꽃을 꽂으면 화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자는 어떤 컵을 물 컵이라 규정 해버림으로서 그 컵이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없애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20세기 현대 서양 철학자 미셀 푸코가 "본질이나 중심을 기반으로 형성된 철학에서는 그런 것들이 기준이 돼 결국 이 사회를 구분하고 배제하며 억압하는 권력으로 군림하게 된다."는 깨달음을 노자는 이미 2,600여 년 전에 통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를 천지의 시작이요, 이 우주의 진리이자 질서라고 선포하면서도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 너머의 세계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이름이 없다(무명)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어라? 이거 낯설지 않은 것이 어디서선가 살펴본 내용 같다. 맞다. 우리는 ‘2.1 우주의 탄생과 소멸’에서 우주의 탄생과정을 현대 물리학이 빅뱅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빅뱅이 일어나기 전에 이 우주는 아무것도(태양도, 지구도, 은하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데 빅뱅이 일어날 수는 없다. 형체(존재)는 없지만 무언가는 있었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구름이 스르르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듯이 원소들 간의 에너지의 흐름이 있었으며, 어느 순간 빅뱅이 일어나 우주가 탄생한 것이다. 이 탄생 이전까지를 포함한 우주의 질서와 진리가 바로 ‘도’이고, 우주가 탄생한 이후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 들이 ‘명’인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 제25장에서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도’의 거대한 순환, 즉 우주의 진리와 순환 질서까지 설파한다.
有物混成 先天之生(유물혼성 선천지생)
寂兮寥兮 獨立不改(적혜요혜 독립불개)
周行以不殆 可以爲天下母(주행이불태 가이위천하모)
吾不知其名 强字之曰道(오부지기명 강자지왈도)
强爲之名曰大(강위지명왈대)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모든 것은 서로 섞여 이루어지니, 이 우주 보다 먼저 있었다.
형체도 소리도 없지만, 변함없이 홀로 서 있다.
두루 미치나 멈추지 않는다. 세상의 어머니라 할 만하다.
나는 그 이름을 모르지만, 억지로 부르니 ‘도’라 하고
억지로 말하니 ‘크다’라고 한다.
큰 것은 흘러가는 것이고, 흘러가는 것은 널리 미치는 것이며, 널리 미치는 것은 되돌아오는 것이다.
- 도덕경 상편 제25장중에서 - [참고 2.5]
‘모든 것이 서로 섞여 이루어지니, 이 우주 보다 먼저 있었다.’ 마치 현대 물리학에서 우주 탄생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빅뱅이 일어나기 직전(우주 탄생 이전)의 텅 빈 우주를 노자는 2,600 년 전에 통찰한 것이다. 이렇게 끈임 없는 변화 속에서 탄생한 우주의 질서 즉 ‘도’는 멈춤 없이 변화하고 흘러가는데, 바로 ‘도’의 이러한 역동성이 온 우주에 널리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다보니 결국은 다시 되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노자 도덕경 제4장의 “道沖, 而用之或不盈(도충, 이용지혹불영)”과 연관되어 있다. ‘도’ 즉 매크로 한 우주 전체는 텅 비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아무리 꺼내어 사용해도 고갈됨이 없다는 뜻으로 ‘도’의 거대한 순환 작용을 의미한다. 이는 노자의 순환적 세계관도 ‘베다’의 순환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동양의 순환론적 세계관을 서양의 현대 물리학이 빅뱅과 블랙홀에 의해 우주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순환의 가능성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이다. 어쨌든 이러한 도의 순환작용이 이 세상에 영향을 미쳐 결국 “和其光 同其塵(화기광 동기진)”하게 된다고 노자는 이야기 한다. 이는 빛이 조화롭게 비추고, 티끌을 고르게 한다는 의미로 ‘화기광’은 마치 태양이 빛을 세상의 삼라만상 모두에게 비추는 것처럼 빛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비추어짐을 뜻하고, ‘동기진’은 마치 자동차의 보닛(bonnet) 위에 굴곡 없이 고르게 내려앉은 먼지처럼 차별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노자의 ‘도’ 즉 우주의 진리는 이 우주의 시작일 뿐 아니라 텅 비어 있는 것 같지만 아무리 꺼내어 써도 고갈되지 않고 끈임 없이 순환하며, 이를 통해 세상을 ‘화기광 동기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대승불교에서 ‘화광동진’의 ‘무차별’로 전화 되었고, 기독교에도 이들과 비슷한 ‘누구에게나 똑같이 태양과 비를 내려주신다.’는 성경 구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이 우주의 진리이자 질서를 관장하려면 그것이 ‘도’가 되었든, ‘다르마’가 되었든 하느님이 되었든 이 우주의 어떤 존재에게도 차별하지 않아야 된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 제5장에서 “天地不仁(천지불인)”을 이야기 했다. 왕필은 노자의 ‘천지불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천지는 스스로 그러함에 자신을 맡길 뿐이다. 그래서 함이 없고, 조작함이 없다. 그래서 만물은 스스로 서로 다스리며 질서를 유지한다. 그러기 때문에 인자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참고 2.32] 이어서 이렇게 부연 설명한다. “땅은 짐승을 위하여 풀을 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짐승은 풀을 먹는다. 또 사람을 위하여 강아지를 생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은 강아지를 잡아먹는다. 이와 같이 천지가 만물에 대하여 조작함이 없으면, 만물은 제각기 그 쓰임을 얻을 뿐이다. 그리되면 넉넉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라는 것은 자기만을 통하여 수립하게 되면 그것은 믿고 맡길만한 것이 못되는 것이다.”[참고 2.32] 노자는 ‘도’가 바로 우주의 시작이자 우주의 질서요 진리인데, 이를 누군가가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누군가를 위해 설계한 것이 아니라 원래 스스로 그러한 자연 그 자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도’는 끈임 없이 변화하고 흘러가면서 순환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삼라만상 어느 것도 특별하게 차별하지 않고, 천지가 만물에 대하여 인위적으로 조작함이 없기 때문에 만물은 각각 그 쓰임을 얻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도’를 추구한다는 것은 우주의 질서에 대하여 자기만을 위한 인위적인 조작을 하려고 애쓰지 말고 오히려 ‘無爲(무위)’로서 우주의 질서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노자는 지금까지 설명한 우주의 질서이자 진리인 ‘도’가 너무나 형이상학적이고 관념론적이어서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중을 위해 친절하게도 우리가 관찰하고 만질 수 있는 ‘물’을 예로 들어 ‘도’를 설명한다. 바로 제8장 ‘상선약수’이다.
上善若水(상선약수)
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리만물이부쟁)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
故幾於道(고기어도)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夫唯不爭, 故無尤(부유부쟁, 고무우)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살 때는 낮은 땅에 처하기를 잘하고, 마음 쓸 때는 그윽한 마음가짐을 잘 하고, 벗을 사귈 때는 어질기를 잘 하고, 말 할 때는 믿음직하기를 잘 하고, 다스릴 때는 질서 있게 하길 잘 하고, 일 할 때는 능력 있기를 잘 하고, 움직일 때는 바른 때를 타기를 잘 한다.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어라. - 도덕경 상편 제8장 - [참고 2.32]
노자가 ‘도’를 말할 때, ‘도’는 ‘이것이다‘라고 딱 규정지어서 말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대상을 예로 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물‘이다. 노자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물‘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물은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의 품성을 갖고 있어서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은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흘러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원하는 곳이 있다면 그를 위해 못 올라가는 곳이 없다. 식물의 모세관 작용을 통해 나무 꼭대기 까지 올라가 생명을 주고, 기화작용을 통해 하늘로 올라가 다시 비가 되어 내려오는 우주의 순환작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언가 딱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핵심은 ‘도’가 뭔지 잘 모르겠거든 ‘물’이 하는 일이 ‘도’에 가까우니 ‘물’을 보고 ‘도’를 깨우치라는 것으로 해석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처음부터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외치면서 내가 더 하늘에 가깝고, 외양이 더 수려하다고 뽐내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처럼 적자생존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무위도식하며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지 않은가? 노자는 말한다. 생명의 원천은 기골이 장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산봉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아래 깊은 계곡의 옹달샘에 있다고 말이다. ‘물’은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조용하게 만물이 이롭도록 도우면서도 적자생존의 경쟁을 하지 않는다. ‘물’은 바다라는 목표를 인위적으로 세우고 노력해서 바다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순리대로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거부하지 않고 흐르다 보면 어느새 바다에 도달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자의 도덕경을 가장 먼저 해석한 ‘解老(해로)’를 쓴 한비자는 이러한 ‘도’와 ‘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한마디 덧붙인다.
만물이 도를 얻어 죽을 수도 있고, 또 도를 얻어 살 수도 있다. 만사가 도를 얻어 패망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다. 도는 비유하건데 물과 같은 것이다. 물에 빠진 자가 물을 너무 많이 마시게 되면 곧 죽을 것이요, 심히 목마른 자가 적시에 알맞게 물을 마시면 곧 살아날 것이다. -한비자의 “解老”- [참고 2.32]
한비자는 ‘물’이 노자의 ‘도’에 가깝다는 것을 부연 설명하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깨달아 마치 득도한 것처럼 교만하게 처신하는 것에 대한 경고 또한 놓치지 않았다. 우주의 진리이자 질서인 ‘도’를 얻어도 죽을 수도 있고, 패망할 수 도 있다는 것을 ‘물’을 예로 들어 명쾌하게 설명한다. ‘물’이 생명의 원천인 것은 맞지만, 오용하게 되면 익사할 수 있듯이 ‘도’도 어설프게 깨달아서는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이러한 ’물‘이 바로 ’도 그 자체는 아니지만 도에 가깝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후대에 왕필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 붙였다.
道無水有, 故曰幾也(도무수유, 고왈기야)
도는 ‘무’이며, 수는 ‘유’이다. 그러므로 ‘가깝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참고 2.32]
우주의 진리이자 질서인 ‘도’는 우리가 직접 만지고, 볼 수 있는 형체가 있는 것이 아닌 ‘無自性(무자성)’으로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이어서 ‘무’라 하고 ‘물’은 그 행태가 ‘도’의 모습과 가까우면서 우리가 실제로 보고, 만질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이해할 수 있어 ‘유’라 한 것이다. 바로 이 ‘물’의 모습이 우주의 진리이자 질서인 ‘도’를 향한 교과서인 것이다.
노자가 도덕경 제1장에서 우주의 인식론 즉 세계관을 이야기하였다면, 제2장에서는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가치론을 이야기 한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위이불시)
功成而不居, 夫唯弗居, 是以不去(공성이불거, 부유불거, 시이불거)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추하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선한 것이 선하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선하지 않다.
고로 유와 무는 서로 생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며, 길고 짧음은 서로 겨루며,
높고 낮음은 서로 기울며, 음과 소리는 서로 어울리며,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그러므로 성인은 함이 없음의 일에 처하고, 말없이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만물이 스스로 자라는데 간섭하지 않고, 만들되 소유하지 않으며, 일하되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는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속에 머물지 않고, 오로지 그 속에 살지 않으니 오히려 영원히 살리로다.
- 도덕경 상편 제2장 - [참고 2.32]
노자는 ‘하늘아래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추하다.’라고 이야기 한다. 여기서 노자는 ‘美’의 상대어로 ‘惡’를 사용 했는데, 중국 고대어에서는 이를 ‘악할 악’이 아니라 ‘추할 오’로 읽는다. 왕필은 이에 대하여 “美(미)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나아가 즐기는 곳에 자리하는 것이요, 惡(오)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곳에 자리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참고 2.32] 이렇게 훌륭하고 친절한 설명을 듣고 다시 노자의 도덕경 제2장을 읽어도 도대체 논리적으로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고 있다. 아니 모두가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고 추하다니,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 이원론적 실제론의 세계관으로 서양식 교육을 받은 우리 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실제론은 세상을 바라 볼 때 어떤 존재가 그 것으로 존재하게 해주는 근거가 되는 그 존재의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본질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본질에 대한 ‘우선성’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그 본질을 갖고 있는 존재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기능하게 된다. 따라서 ‘본질’을 인정하게 되면 ‘가치론’을 벗어날 수 없게 되고, 이에 따라 어떤 것에 대하여 ‘좋다’ 혹은 ‘나쁘다’라는 주관적인 판단을 허용하게 된다. 결국은 미셀 푸코가 말한 것처럼 주관적인 판단이 기준이 돼 결국 이 사회를 구분하고 배제하며 억압하는 권력으로 군림하게 되어 ‘폭력과 분열‘로 이어지게 된다. 이를 우리가 외출할 때 마다 거울을 보며 나름 신경 쓰는 패션(fashion)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의 복식에서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일까? 패션에서 아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 패션에서 영원불멸하는 본질은 없다. 패션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 그 시대의 문화에 따라 계속 변해왔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베스트 드레서는 이 시대의 트랜드, 즉 유행에 맞게 잘 입었다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패션테러리스트의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패션테러리스트는 단지 트랜드를 쫓아가지 않았을 뿐인데 이에 가해지는 폭력이요, 낙인인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추하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따라하고 있는 패션은 조금만 지나면 유행이 지나버려 촌스럽다고 괄시받는 추한 것이 되어 버린다. ‘美’뿐 아니라 ‘善’도 마찬 가지이다. 노자는 세상을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의 가치론적 이분법으로 분절하지 않는다. 붓다처럼, 헤겔의 변증법 이후의 현대 서양 철학(포스트모더니즘)처럼 관념론이요, ‘어떤 것은 그 어떤 것과 관계되어 있는 다른 여러 것과의 상대적 관계로 되어 있다’는 시각인 관계론인 것이다.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이분법적으로 분절하는 것이 아니라 텅빈 우주에서 빅뱅이 일어나 우주가 탄생하고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우주가 소멸하는 것처럼 ‘유무상생’‘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인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우주의 질서, 자연의 질서가 ‘천지불인’하여 ‘화광동진’하는 것처럼 소위 ‘도’를 추구하는 사람은 이 우주에 어떠한 주관적 가치도 개입시키지 않고, 인위적인 어떠한 조작도 가하지 않는 ‘무위’를 추구하여 객관성·투명성·보편성을 확보한 다음 ‘생이불유’와 ‘위이불시’를 실천함으로서 ‘공성이불거’를 깨달을 때 비로소 ‘범아일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의 상편 ‘도경’에서 우주의 질서이자 진리에 대한 인식론과 가치론을 ‘도’를 통하여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하였다면, 하편 ‘덕경’에서는 우주의 질서인 ‘도’에 부합하는 인간의 내면상태인 ‘덕’이 어떻게 인간 개개인의 삶에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발현되고 이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노자는 하편 ‘덕경’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上德不德 是以有德(상덕부덕 시이유덕)
下德不失德 是以無德(하덕부실덕 시이무덕)
上德無爲而無以爲(상덕무위이무이위)
下德有之而有以爲(하덕유지이유이위)
上仁爲之而無以爲(상인위지이무이위)
上義爲之而有以爲(상의위지이유이위)
上禮爲之而莫之應 則攘臂而仍之(상예위지이막지응 즉양비이잉지)
높은 덕은 덕답게 보이지 않아 무릇 덕이 있고
낮은 덕은 덕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므로 무릇 덕이 없다 하겠다.
높은 덕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므로 억지로 함이 없고
낮은 덕은 하려고 애쓰므로 억지로 하게 된다.
높은 인은 하려고 애쓰나 억지로 하지 않고,
높은 의는 하려고 애쓰고 억지로 하게 된다.
높은 예는 하려고 애쓰고 아무도 응하지 않기에 팔 걷어붙이고 남에게 강요한다.
- 도덕경 하편 제38장중에서 - [참고 2.5]
노자는 “가장 높은 덕은 덕답게 보이지 않아 무릇 덕이 있고, 낮은 덕은 덕을 잃지 않으려 애쓰므로 무릇 덕이 없다.”라고 말한다. 노자의 말은 어렵다. ‘도경’을 ‘도가도 비상도’로 시작하더니, 이젠 덕이 없는 것처럼 처신하니 덕이 있고, 덕 있는 사람이란 명성을 잃지 않으려 하니 덕이 없단다. 도대체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노자는 ‘명가명 비상명’처럼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A는 B다 라고 한번도 명확하게 규정지어 이야기 한 적이 없다. 우주의 진리, 자연의 질서가 ‘도가도 비상도’이기 때문이다. 붓다의 말을 빌리면 ‘제법무아’이고, ‘제행무상’이어서 그렇게 설명할 수 가 없는 것이다. 노자는 규정짓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 설명한다.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무림의 고수처럼 굳이 내세우지 않아 평소 무술을 연마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공이 대단한 사람이 진정한 고수라고 말이다. 반면에 자신의 하찮은 무공을 과시하고 설쳐대는 사람은 진정한 고수가 아니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우주의 진리이자 질서인 ‘도’가 스스로 그러한 것처럼 ‘무위의 도’를 자아에 내면화하여 발현되는 ‘덕’이 바로 ‘범아일여’의 덕이요, 높은 덕 인 것이다. 마치 태양이 온 세상을 밝게 비추어 주듯이 특별하게 자신의 덕을 내세우려 하지 않고, 억지로 애써 노력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배어 나오는 덕이 진정 높은 덕이다. 반면에, 마치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없는 살림에 명품으로 덕지덕지 치장하고 다니는 사람처럼 자신의 덕을 침소봉대하고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덕은 낮은 덕인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덕은 ‘도’의 무위의 자연스러움이 발현된 덕이고, 낮은 덕은 자신을 돋보이기 위하여 애써서 열심히 노력하여 얻는 것이므로 인위적이고 의식적인 행위가 수반된다.
노자는 ‘낮은 덕’ 다음으로 공자가 유학에서 강조하는 인, 의, 예가 뒤 따른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노자의 이야기를 처음 시작할 때 공자가 노자에게 “예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는 일화를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군자는 때를 만나면 거들먹거리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누추하게 떠돌아다니게 될 뿐...”이라고 시작하는 일화 말이다. 공자의 군자는 속세에서 출세영달을 꿈꾸는 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인, 의, 예를 강조하였지만, 노자는 진정한 덕이 있는 군자의 모습으로 “속세에서의 교만과 욕심을 버리고, 있어 보이는 얼굴빛과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는 마음을 버려서 오히려 어리석은 듯 보이는 얼굴“을 이야기 한다. 한마디로 노자는 우주의 질서이자 진리인 ‘도’를 따르지 않는, 즉 ‘덕’이 없는 사회에서는 측은지심인 ‘인’을 중요시하여 우리 사람끼리 노력해서라도 서로 사랑하는 사회를 추구하고, 이러한 ‘인’이 없어 삭막해진 사회는 정의를 추구하는 ‘의’를 억지로라도 따르도록 하며, 정의마저도 혼탁해진 사회에서는 인위적으로라도 ‘인’, ‘의’를 실천하도록 하는 규범인 ‘예’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소위 선진사회라 칭 하려면 적어도 사람사이에 서로 배려하는 예절, 즉 공중도덕이 확립되어야 한다. 여기에 사회정의의 ‘의’가 더해지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인’이 충만해지면 자연스럽게 ‘덕’이 있는 사회가 되어, 우주의 진리이자 질서인 ‘도’를 깨닫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베다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범아일여’의 경지인 것이다. 다시 공자가 노자를 만난 일화로 돌아가서 노자로부터 ”교만과 욕심을 버려라.“라는 모욕적인 이야기를 듣고도 공자가 노자를 ”마치 용을 본 것과 같았다.“라고 높이 평가한 것은 당시 춘추전국시대에 끊임없는 전쟁, 약탈, 굶주림 등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진 세상을 인간의 본성인 ‘인의예지’의 함양을 통해 바꾸어 보려는 자신과는 달리 우주의 진리인 ‘도’를 먼저 깨달으라는 통찰력 때문 아니었을까?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이 다른 것이다. 노자가 우주의 진리이자 질서에 인위적인 조작 또는 노력의 부질없음을 통찰하고 내면의 세계인 ‘덕’이 자연스럽게 ‘도’의 경지에 이르도록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였다면, 공자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인’의 함양을 통하여 혼란한 세상에 적극적이고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바람직한 세상으로 바꾸어 보려는 현실적 가치를 추구한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노자의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론과 가치론 등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지금부터는 공자의 생각을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공자는 노자와 달리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있는 편이다. 공자는 극심한 혼란의 소용돌이에 있었던 춘추전국시대의 한 복판인 BC 551년에 나이 70세의 아버지 숙량홀과 16세의 어머니 안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의 어려운 시대상황에 설상가상으로 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아주 어렵게 자랐다. 공자는 이러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극심한 혼란에 허덕이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하여 고대 중국 삼황오제 전설상의 두 성군 요(堯)와 순(舜)의 도덕정치에 애착을 갖고 공부하였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천명은 장자상속으로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덕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주나라의 문화적 가치와 사회적 규범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공자는 수세기 동안 존속해온 제사·천제(天祭)·장례 등의 의식, 특히 주나라의 관제와 예법에 대하여 연구하였고, 이를 통해 안정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였다. 공자는 어느덧 ‘예’의 전문가가 되었고 30세에 노나라에 학교를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배우고자 오는 사람들은 귀족에서부터 평민까지 신분의 차별 없이 제자로 받아주었다. 이른바 유교에서는 가르치는데 차별이 없다는 유교무별(儒敎無別)이다. 이러한 공자의 교육관은 오늘날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훌륭한 것으로 그 명망이 널리 퍼져 그에게 배우려는 제자들이 전국각지에서 모여들었다. 5년 뒤 공자는 노나라에 일어난 내란을 피해 제나라로 갔는데, 거기서 제나라 경공을 만나게 된다. 이때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군군 신신 부부 자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참고 2.5]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왕에게 주어진 역할과 의무를 관리는 관리에게 주어진 역할과 의무를 다하고 일반 백성은 백성대로 저마다의 능력에 맞는 역할과 본분에 충실할 때 나라가 제대로 발전하고 사회가 평안해질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 각계각층의 개개인이 각자 부여받은 직분과 소명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세상에서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올바른 정치라는 것이다. 이에 경공은 공자를 높이 평가하고 자신을 보좌하게 하려하였지만, 이미 권력에 취해 권력을 쫓는 권모술수에 빠진 신하들은 공자가 눈에 가시였고, 결국은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공자는 뜻을 펼치지 못하였다. 그 이후 몇 번의 관직을 맡아 일할 기회를 얻었지만 자신의 뜻을 펼치기에는 현실 정치의 벽이 너무 높았다. 결국 공자는 관직을 버리고 자신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나라를 찾아 전국을 떠돌았다. 대 환란의 시기에 십여 년 이상을 관직도 없이 제자들을 데리고 다녔으니 당연히 어려운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춘추전국시대에 오로지 천하제패와 전쟁의 광기에 빠진 제후들에게 ‘예’에 기반 하여 ‘인’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려 했던 공자의 철학이 눈에 들어 올 리 만무하였다. 이쯤 되면 공자가 노자를 만났을 때 노자가 공자에게 일갈한 “군자는 때를 만나면 수레를 몰고 거들먹거리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티끌처럼 누추하게 떠돌아다니게 될 뿐입니다....”가 떠오른다. 또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정나라에 갔을 때의 일화도 있다. 어떤 사람이 자공에게 "당신 스승의 옷차림이 아주 궁색해 보여 마치 상갓집 개와 같구려."라고 비웃자, 자공이 화가나 씩씩거리면서 이를 공자에게 전하자, 공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잔잔하게 웃으면서 "그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이야기다. 비록 상갓집 개처럼 떠돌며 비웃음을 사는 신세이긴 하지만 세상의 평판에 흔들리지 않는 공자의 도량을 엿볼 수 있는 일화이기도 하다. 공자는 비록 때를 만나지 못해 이상을 찾아 누추하게 떠돌아다니기는 하였지만, 자기의 철학을 버리고 관직을 구걸하지 않았다. 실망하는 대신 후학을 양성하는데 몰두하였다. 어떻게 보면 공자가 때를 만나 관직에 올라 자신의 뜻을 펼쳤다면, 아마도 세계가 추앙하는 오늘날의 공자, 유가는 없지 않을까? 오히려 때를 만나지 못했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후학양성을 통해 펼침으로서 자신의 철학을 완성한 것이다. 이는 맹자에 와서 다음과 같이 잘 정리 된다.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거천하지광거 입천하지정위, 행천하지대도)
得志, 與民由之, 不得志獨行其道.(득지, 여민유지, 부득지독행기도)
거처할 땐 천하의 광거에 거하고, 뜻을 세울 땐 천하의 정위로 세우며, 천하의 대도를 행하라. 뜻을 얻으면 그 사람들과 더불어 뜻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혼자서 그 도를 실천하라. -맹자 상권-
맹자가 적어도 군자라면 일상의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고 뜻을 품을 때는 천하의 큰 뜻을 품고, 천하의 올바른 뜻을 세워서 ‘천하의 도’를 실천하는 것이 도리인데, 그 과정에서 만약 뜻을 얻게 되면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그 뜻을 이루도록 함께 노력해서 실천하는 것이고, 때가 아니어서 뜻을 얻지 못하더라도 세운 뜻을 포기하지 말고 묵묵하게 혼자서 ‘도’를 행하라는 가르침이다. 맹자의 이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공자가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제자를 비롯한 세상 사람들에게 솔선수범해서 보여준 군자로서의 모습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공자는 평생 자신의 인본주의 이상을 현실 정치 속에서 구현함으로서 전쟁과 굶주림으로 극도로 피폐해진 세상을 올바르게 바꿔 보고자 했으나, 역설적으로 현실 정치가 아닌 3천명이 넘는 후학들을 양성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뜻을 펼쳐나간 것이다. 공자는 BC 479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지만, 그의 생각은 긴 세월 동안 이어져 세계 4대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축의 시대의 성현으로도 모자라 예수, 붓다, 소크라테스와 함께 성인으로 숭상하는 공자의 사상인 ‘유학’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붓다는 자비를, 예수는 사랑을,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공자는 인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붓다와 예수는 극심한 혼란과 고통에서 허덕이는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불교와 기독교의 창시자이자 죽음 이후 현상 너머까지를 이야기하는 신이라면, 소크라테스와 공자는 인간이 현세에서 ‘덕’을 기본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진리를 설파하였다. 이런 면에서 보면 공자는 붓다와 예수 보다는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정의, 용기, 절제, 경건 등 인간의 덕을 설파한 소크라테스와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공자는 춘추시대의 극심한 혼란기에 사회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대 봉건적인 예(禮)를 기반으로 한 요(堯), 순(舜)의 도덕정치와 주나라의 관제와 예법의 질서를 인간의 기본 덕성인 인(仁)의 기초 위에 다시 세우려고 했다. 그렇다면 공자가 그렇게 중시하는 ‘인(仁)’은 과연 무엇인가? ‘인(仁)’은 인간의 기본 덕성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다운 인간이 되게 하는 본질적 품성이다.[참고 2.33] 이는 후에 공자의 생각이 ‘유학’으로 체계화 되면서 인간의 본성을 4단7정(四端七情)으로 정리하였다. 먼저 맹자는 인간의 착한 본성인 덕(德)에서 발로되어 나오는 마음을 4단(四端)이라 하였는데, 이는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의 네 가지 마음을 말한다. 여기서 측은지심은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 수오지심은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 사양지심은 타인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은 선악시비를 판별하는 마음이다. 이는 ≪맹자≫ 공손추편(公孫丑篇)에 나오는데, 맹자가 이 네 가지 마음을 4단(四端)이라고 한 이유는 단(端)이라 함은 인간의 선(善)함이 발생할 가능성을 가진 시작, 단초를 말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길을 지나다가 곤경에 빠진 사람을 보면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도 안타깝고 측은한 생각에 도와주려하는 마음이 떠올라 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맹자의 성선설의 근거이고, 인간이 수양을 통해 이 4단(四端)을 각각 잘 육성하면 4개의 최고의 덕인 인(仁)·의(義)·예(禮)·지(智)가 된다고 설파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최대한으로 수양한 사람은 자신의 성품을 안다. 자신의 성품을 안다는 것은 하늘을 아는 것과 같다." 따라서 맹자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고대의 전설적인 성군인 요·순(堯舜)과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칠정(七情)은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으로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을 말한다. 이는 ≪예기≫ 예운편(禮運篇)에서 비롯된 것으로 송대에 성리학이 성립되면서 사단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논의하게 되었다. 정작 성리학을 체계화한 주자는 사단과 칠정을 “사단은 이(理)의 발현이요, 칠정은 기(氣)의 발현이다(四端是理之發 七情是氣之發)”정도 이상으로 상세하게 논의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이를 받아들인 조선의 성리학에서 이황(이기이원론)과 기대승, 이이(이기일원론)를 중심으로 사단칠정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참고 2.34] 이황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設)’이든 기대승의 ‘이기겸발설(理氣兼發設)’이든 사단칠정의 논쟁은 뒤로 미루고 여기선 ‘유학’의 핵심인 인(仁)·의(義)·예(禮)·지(智)에 집중하기로 하자.
먼저 인(仁)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How should humans live?) 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이다. 인(仁)에 대하여 공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번지문인. 자왈 “애인.” 문지. 자왈 “지인.”)
樊遲未達.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번지미달. 자왈 “거직조저왕, 능사왕자직.”)
번지가 어짊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셨다. 앎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사람을 아는 것이다.” 하셨다. 번지가 그 내용을 통달하지 못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해서 부정한 사람의 자리에 두면, 부정한 자로 하여금 곧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논어 안연- [참고 2.35]
공자는 제자의 질문에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지(知)란 사람을 아는 마음이라고 답한다. 여기서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랑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그 마음을 의미한다. 공자는 인간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인간 개개인의 소속감과 자율성을 효율적으로 충족 시켜줄 수 있는 기본적인 공간을 가정으로 보았다. 따라서 공자에게 가정은 인간의 선한 덕성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가정은 모든 ‘인’의 발원지가 되어 인간사이의 기본적인 관계와 질서에 전형적인 모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인(仁)은 단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에 보답하는 효(孝)로 승화하고, 이는 사회질서로 확대되어 충(忠)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인이란 한 사람의 도덕적 완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개인이 수양을 통해 인을 이루는 과정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올바른 통치자가 나오고, 그 통치자가 모든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의 인을 모아 커다란 인(仁)을 이룩하도록 하는 것이 유교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렇게 되면 인(仁)을 바탕으로 사회 적재적소에 적합한 사람을 알게 되고(知人), 이에 따라 제대로 된 인재등용은 자연스럽게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의 세상이 이루어져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모두가 평화롭게 잘사는 세상을 위해 인간 스스로 어떻게 하면 이러한 인(仁)을 잘 가꾸고 육성할 뿐 아니라 실천할 수 있을까? 공자는 바람직한 인(仁)의 실천 규범을 “논어 위령공”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 하였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네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 - 논어 위령공 - [참고 2.9]
사람은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일, 즉 욕심이 나는 일을 이루고 가지려고 노력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 즉 욕심이 나지 않는 일은 어떻게든 회피하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일을 남에게 떠넘기려 하는 성향이 있다. 어떻게 보면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 인간은 수백만 년의 진화과정을 통해 계급사회를 만들고 무위도식하는 유한계급(leisure class)의 특혜를 누리기 위해 적자생존의 경쟁을 감행하였고 그 폐해로 춘추전국시대의 대혼란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외친다. “네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 공자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인‘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 개개인 모두가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이 규범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도(道)를 실현할 수 있다고 설파한 것이다. 공자는 “논어 옹야”에서 이러한 ‘인‘의 실천 규범을 잘 따라 도덕적 완성을 이룬 사람의 바람직한 전형을 다음과 같이 적극적으로 설명하였다.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부인자 기욕립이립인)
己欲達而達人 (기욕달이달인)
인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할 때 남부터 세워 주고
자기가 이루고자 할 때 남부터 이루게 한다. - 논어 옹야 - [참고 2.5]
공자는 인간은 누구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본성을 갖고 있어서, 내가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일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위 수양을 통해 인을 완성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당연히 남을 먼저 하게 해주는 ‘덕’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군자의 모습인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면, 이제 의(義), 즉 인(仁)을 기본으로 인간으로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가(How should the economy develop?)에 대한 공자의 가르침을 알아보자. 공자는 “논어 이인”에서 “군자회덕 소인회토(君子懷德 小人懷土)”라 하였다. 군자는 무슨 일을 하든지 덕을 생각하는데, 소인들은 오로지 땅 만을 생각한다는 말로, 세상을 살면서 소위 인이 있는 군자는 덕을 앞세워 일을 추진하는데, 소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앞세운다고 지적한 것이다. 공자는 이어서 이렇게 소인배처럼 혼자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탐욕이고, 이렇게 탐욕을 추구하면 다른 사람의 원망을 받고 적을 많이 만들게 된다고 가르친다. 이는 후에 맹자와 순자 등 제자들에 의해 선의후리(先義後利, think the justice before the profit)로 정리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추구가 목적인데, 리(利) 보다 의(義)를 앞세우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공자시대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광풍이 휩쓸고 있는 현대에도 리(利)만을 추구하는 기업 보다 선의후리(先義後利)의 기업에 박수를 보내고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기업은 사회의 것이니 사회에 기여해야한다는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영철학으로 많은 교훈을 남긴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일한 박사에게 우리는 경의를 표하고, 많은 기업들이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사회 공헌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어느 동네 빵집에서 빵을 사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아이에게 빵을 제공해 주었다는 미담 하나에 많은 사람들이 ‘돈줄을 내주자’며 주문과 격려금을 몰아주는 선의후리(先義後利) 문화를 현대에서도 훈훈하게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의(義)라는 것은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그저 인(仁)을 기본으로 선의후리(先義後利)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이에 대하여 수치스럽고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항상 군자회덕(君子懷德)해야 하고, 우리 모두가 서로 잘사는 세상을 위해 인의(仁義)를 잘 가꾸고 육성해야 하는데, 이는 교육을 통해 인간 개개인이 인의(仁義)를 이론적으로 알고 이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이유는 첫째,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고, 둘째, 진정한 인의(仁義)는 혼자 수신을 통해 가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에서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인간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How should we form the relationship?)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결국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즉 예(禮)의 실천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요(堯), 순(舜) 시대부터 주나라까지의 관제와 예법에 통달한 공자는 이러한 예(禮)를 통해 진정한 인의(仁義)를 실천할 수 있다고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안연문인. 자왈 “극기복례위인. 일일극기복례, 천하귀인언. 위인유기, 이유인호재?”)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안연왈 “청문기목.” 자왈 “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
안연이 인에 대하여 묻자, 공자왈 “이기심을 극복해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실천 하는 것이다. 하루 만이라도 자기를 극복하고 예를 회복한다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을 실천하는 것은 자기에 달린 것이지, 남에게 달린 것이겠는가?” 안연왈 “그 실천 항목은 무엇입니까?,” 공자왈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마라.” - 논어 안연 - [참고 2.35]
공자는 위와 같이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갑답게 살아가는 덕목으로 인의(仁義)를 매우 중시하였고, 이를 육성하는 실천 규범으로 예(禮)를 이야기 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욕심이 있기 때문에, 이를 평상시 사람을 대할 때마다 자기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예(禮)를 실천함으로서 인(仁)을 배양하고 육성하여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 몸에 베이고 쌓이게 되면 어느덧 인자(仁者), 즉 군자(君子)에 이를 수 있다고 공자는 설파한다. 여기서 군자는 자기 스스로 자기를 이기고 예(禮)를 실천하여 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자는 자기에게 달린 것이요, 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기준이지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각각의 개인이 매일매일 예(禮)를 실천하여 인의(仁義)를 가꾸고 군자(君子)의 삶을 지향하면 가정과 사회가 커다란 인(仁)을 이루어 나 보다는 상대를 배려하고 사랑하는(愛人) 바람직한 세상이 되고, 인의(仁義)를 바탕으로 사회 적재적소에 적합한 사람을 알게 되어(知人), 이에 따라 제대로 된 인재를 등용함으로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의 정치가 구현되어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가르침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와 현대에 이르기 까지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가치 기준으로 자리매김하여 정치, 경제, 사회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공자의 사상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How should humans live?)’에 집중되어 지극히 현세적이고, 실질적이어서 우리 현실의 문제인 국가 운영과 사회윤리에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의 ‘유학’은 불교, 기독교처럼 인간의 구원 그리고 죽음 이후를 제시하는 지극히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종교가 아니라, 현실적인 인간의 삶에서 개인의 수신(修身)과 사회 윤리와 이념에 대한 가르침인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이러한 생각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가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에만 국한되어 있어 인간을 둘러싸고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우주가 배제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즉, 인간끼리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에만 집중했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 즉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거시적 세계관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또 붓다, 노자와 달리 공자는 인간의 본질을 ‘인’, 이의 실천 규범을 ‘예’라 규정함으로서 현대 철학자 미셀 푸코의 본질을 기반으로 형성된 철학은 그것이 기준이 되어 결국 이 사회를 구분하고 배제하며 억압하는 권력으로 군림하게 된다는 말처럼 선한 의도와 달리 이 사회를 구분하고 차등화하여 억압하는 부정적 결과가 수반될 수 있는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자는 인(仁)을 애인(愛人), 앎(知)을 지인(知人)이라 규정하였다. 이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발현되는 것만이 진정한 인(仁)이 라는 것인데, 만약 스토커라면 어떨까? 상대가 원하지 않는 사랑을 내가 사랑한다고 해서 강요하는 스토커를 군자라 할 수 있을까? 이는 인(仁)이 아니라 폭력이자 억압이다. 또 지인(知人)은 다른 사람을 사회적 관념・가치관을 가지고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로 분리하고 구분하는 상태의 인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임금다운, 신하다운 각각의 직책에 걸 맞는 인식과 지식으로 사회질서 유지에는 도움이 되지만 뛰어난 능력을 가진 신하나 자식에게는 기성조직의 틀 속에 갇혀 그 능력을 사장시켜버리는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와 달리 노자는 “지인자지 자지자명(知人者智 自知者明), 다른 사람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울 뿐 이지만,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명철하다.”라고 하였다. 이는 객관적인 지(知)를 넘어 자기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는 주관적인 지(知)까지도 통합적으로 알아야 명철한 지혜라 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당시 타락한 소피스트들에게 목숨을 걸고 “너 자신을 알라.”고 일갈하는 것 같지 않은가? 붓다의 “제법무아, 제행무상”처럼 사람의 본분은 태생적으로 정해져 고착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임금이라도 자기가 능력이 모자라면 자기보다 능력 있는 신하에게 길을 열어 줄 수도 있는 역동적인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야 명철한 지혜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공자는 인의(仁義)를 가꾸고 육성하기 위하여 누구에게나 상대를 배려하는 보편적인 행위 원칙과 규범을 예(禮)라 하고 예(禮)에 맞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실천하라고 강조하였다. 굉장히 선하고 훌륭한 예(禮)의 규정이지만 어떤 회사에서 사장은 사장으로 대하고, 부장은 부장으로, 사원은 사원으로 대하는 것이 예(禮)이고 이것이 고착되어 있다면 그 회사는 조직의 질서는 잘 유지할 수 있겠지만 조직의 혁신과 변화는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자는 거시적 세계관을 제시하지 못하고, 인간의 본질을 인(仁)으로 규정함으로서 비록 사회와 국가의 유지와 관리에는 매우 유용한 사회윤리요 철학이 되었으나, 규정이 기준이 되어 그 당시 고착된 예(禮)를 따르느라 어떠한 사회적 변혁과 혁신도 꾀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물론 송대 철학자 주돈이(1017~1073)에 의해 도가의 교의와 〈주역 周易〉을 바탕으로 유교사상을 재구성하면서 〈태극도설 太極圖說〉을 통해 인간을 둘러싼 우주의 생성과 운행 질서를 보완하였고, 이후 주희(朱熹:1130~1200)가 이를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인간의 본성인 사단칠정이 이(理)와 기(氣)의 발현이라는 형이상학적 성리학으로 발전시켰으나 여전히 인(仁)과 예(禮)의 본질을 규정하는 한계는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결과로 공자를 따르는 중국,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구가 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소외되고, 이에 따라 그들 제국의 힘에 밀려 식민 지배를 받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참고 2.5]도 있음을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