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가 걸어온 길 : 생각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세상, 즉 우주는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이 우주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이고, 이러한 우리와 거대한 우주와는 어떤 관계와 세계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그 안에서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하여 숨 가쁘게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과학자들과 진화학자들의 연구 업적과 동서양의 철학자들 그리고 축의 시대의 성현들의 생각들을 비록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개괄적으로 알아보았다. 사실 우리가 철학이나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들이 사유한 전문적이고, 심오한 이야기를 쉽게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도대체 무슨 소린지 참 어렵다. 알아듣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묵묵하게 여기까지 걸어온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또한 우리가 철학이나 과학을 전공하지는 않을 것이니까 우리끼리 위안도 하면서 깊숙하고 심오한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 생각의 흐름에 대하여 한번 정리해보도록 하자.
먼저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우주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약 137억 년 전 빅뱅에 의해 우주가 탄생한 이후 점점 팽창하면서 지구가 생겨나고 생명이 출현하고, 어찌어찌 진화해서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으며, 앞으로 약 60억년 이후에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소멸될 것으로 예측되는 이야기들을 과학적 사실에 기반 하여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과학적 업적들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는 빅뱅이전의 우주에 대하여 정확하게 잘 모른다. 이는 어느 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발표한 우주 사진[그림 2.12]에 흥분하는 우리 인류의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림 2.12. NASA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포착한 우주 사진 [참고 2.37]
2022년 7월 11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천문학자들에게 'SMACS 0723'로 알려진 은하단의 수천개 은하를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포착한 우주 사진을 공개했다. 이 수천개 은하 중 일부는 130억년이 넘은 것이다. 이날 바이든 미 대통령은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우리가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무엇을 더 발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발표했다. 굳이 미 대통령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이제 우리가 빅뱅에 의해 우주가 탄생하는 시점에 생겨난 별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아주 멀고 오래된 미지의 우주 구조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 인간의 모습을 능가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창조되는 시대인 오늘날에도 아직 우리는 우주에 대하여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아주 먼 옛날에 빅뱅이 일어나 우리 우주가 탄생하고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관찰과 과학적 계산에 의해 사실이라고 알고 있지만, 우주 탄생 이전, 즉 빅뱅 이전의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느닷없이 빅뱅이 일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빅뱅 이전에 카오스 상태의 무언가가 있었고, 이들이 아주 높은 온도와 밀도로 빅뱅이 일어날 수 있는 초기 조건의 상태가 되어야만 빅뱅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의 탄생 이전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무’의 공간이 아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이전에도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온도가 올라가든 밀도가 높아지든 할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문제 때문에 1927년 르메르트가 빅뱅이론을 발표했을 때 과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오히려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믿는 기독교계열 종교인들에게는 이 빅뱅이론이 강한 거부감으로 다가오진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다윈의 진화론에 실망하고 있던 전 세계의 과반이 넘는 기독교계열 종교인들에게 이 빅뱅의 거대한 불빛은 성서 창세기의 “빛이 있으라.”의 종교적 세계관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이론으로 여기고 싶은 암묵적 동의가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신비에 쌓인 우주는 종교인들에게는 위대한 하느님의 천지창조를 믿는 경외의 대상이지만, 과학자들에게는 멈출 수 없는 도전과 탐구의 대상이다. 결국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을 파고들고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도 하면서 우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만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우주가 여러 다른 우주와 시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다중 우주’라는 거대 담론으로 다루면서 빅뱅의 초기 조건 문제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 다중우주의 담론이 천지창조론까지 반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하나가 아니고 우리 우주와 시공간으로 연결된 또 다른 우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을 뿐이지, 다중 우주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여전히 신비롭고 호기심 천국이어서 우리의 상상력이 마음대로 활개를 치고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본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다중우주와 시공간으로 연결되어 있고, 우주가 빅뱅에 의해 탄생했다가 블랙홀에 의해 소멸하는 형태로 순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에도 다중우주가 하느님의 왕국인 천국이고, 빅뱅이 바로 창세기의 “빛이 있으라.”라고 말하며 천지창조론을 믿는 것은 여전히 활짝 열려있다. 그러니 종교적인 영역은 그 영역 그대로 놓아두고, 그림 2.1에 보인 것과 같이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며 순환하는 우주의 아주 티끌만한 시간과 공간 속에 우리 인류가 살고 있다는 것만큼은 기억하도록 하자.
이제 우리 자신에 대해서 정리해 보도록 하자.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만 년 전에 침팬지로부터 분리되어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해왔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만물의 창조주를 넘보는 상황으로까지 세상을 변화 시키고 있어 우리 자신도 우리의 미래가 어디까지 가게 될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이에 우리가 지난 600만 년 동안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우리 인류의 ‘생각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사실 스티븐 핑커가 그의 저서 “How the mind works”에서 “우리의 정신은 우리 혈통이 자기 존재 기간의 99% 이상을 보낸 소규모 식량 채집 집단에 맞추어 적응되어 있다.”라고 한 말[참고 2.3]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우리 인류는 약 599만 년 동안 자신 보다 강한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매우 척박한 환경에서도 함께 힘을 합쳐 사냥하고, 함께 식량을 채집하며 부족사회를 이루어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통한 평등한 삶으로 살아남았다. 이것이 식량을 구하고, 전쟁을 수행하고, 자식을 나아 기르는데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우리 인류 존재 기간의 99%가 넘는 약 599만 년 동안을 부족사회의 형태를 유지하며 진화하고 살아남은 것이다. 이러한 자연선택의 결과로 신화, 의식, 상징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사회 집단화와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상부상조의 이타심 즉 덕(德)이 우리 인류의 뼛속 깊이 유전자로 남아 현대 인류에게 전승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인류가 ‘불과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뇌(brain)의 크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생각의 터전이 마련되고, 이에 따라 생각을 전략적으로 구현하기 시작한 신석기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약 1만 년 동안에 발생한 것이다. 비옥한 토지에서 도구를 사용한 우리 인류는 농업생산량이 증대하고 이것이 사유재산으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평등사회에서 계급사회로 전환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인구 증가에 따른 급속한 도시화・국가화로 이어지고,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사람간의 경쟁과 갈등은 더욱 증폭되어 폭발로 이어지게 되었다. 무위도식(無爲徒食)의 유한계급(Leisure Class)을 성취한 지배계급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 이들에게 착취당하는 피지배계급은 지배계급이 되기 위한 끊임없는 권력충돌이 일어나고 이것이 서로 죽고 죽이는 무자비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경쟁으로 우리 인류를 내 몰았다. 물론 이것이 우리 인류를 끊임없이 진화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현대의 번영을 누리는 만물의 영장이 되는 순기능도 있지만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부리고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칼춤을 추며,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여 기후위기를 자초하여 6번째 대멸종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류 존재기간의 겨우 1% 동안에 만들어 놓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우리 인류가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일까? 우리는 그 해답을 ‘축의 시대’의 성현들에게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따라 우리는 ‘축의 시대’의 성현, 세계 4대 성인인 예수, 소크라테스, 붓다, 공자를 중심으로 위대한 성현들의 생각과 그 이후의 철학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우리의 위대한 성현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치열한 적자생존의 경쟁, 무자비한 전쟁과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 갇힌 인류에게 존재 기간의 99% 동안에 뼛속 깊이 새겨 간직하고 있던 상부상조의 생각, 덕(德)을 소환하여, 공자는 ‘인(仁)’을 붓다는 ‘자비’를, 소크라테스는 ‘윤리’를 그리고 예수는 ‘사랑’을 제시하고 이를 체계화하여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야 될 규범으로 설파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의 ‘동물 행동 사례’에서 원숭이 개체군에서 수컷이 자기 혈통이 아닌 다른 수컷의 새끼를 죽이는 행태를 기본으로 한 캐나다의 ‘인간의 영아 살해에 관한 통계학적 연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에서 미취학 아동이 계부에게 맞아서 죽을 확률이 친부에 죽을 확률보다 120배 높다는 결과를 보였는데, 이는 윌리암스의 동물연구 사례결과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진화학자들은 이것을 적자생존의 무자비한 생존과 번식의 진화압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한다.[참고 2.3]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영아살인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캐나다에서 계부에 의한 영아살해 발생 비율은 백만분의 321.5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떤 본성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이러한 진화압을 거슬러 비도덕적 행동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것은 우리 인류 존재 기간의 99% 동안에 우리의 뼛속 깊이 새겨 간직하고 있던 덕(德)과 ‘축의 시대’의 성현들에 의해 이기심에 가려 묻혀있던 이 덕(德)을 재소환해서 체계화하여 인간으로서 지녀야할 규범으로 제시한 덕분이 아닐까? 그리고 Coleman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세계2차 대전 당시에 독일이 영국에 56일간의 융단폭격을 가한 블리츠(Blitz)동안 영국국민들이 극도의 공포 상황에서 오히려 이타주의, 동정심, 관대함 등 인간의 선함이 오히려 상승하고, 인간의 본성인 덕(德)이 소환된다는 사실이 갈 길을 잃은 현대의 어린양들에게 희망의 불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인 덕(德)이 ‘축의 시대’의 성현들의 공통적인 가르침이라면, 나와 우주와의 관계, 즉 우리 인간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달랐다. 붓다와 노자는 우주의 진리, 질서 속에서 나도 함께 순환한다는 범아일여의 일원론의 관념론인 반면에 예수와 소크라테스는 내가 있고 내 앞에 거대한 우주가 있다는 이원론의 실재론으로 서로 상반된 세계관을 보였다. 이러한 세계관에 따라 붓다, 노자, 공자와 같은 동양의 성현들은 우주의 진리와 질서 안에서 삶의 지혜를 추구한데 반하여, 예수, 소크라테스와 같은 서양의 성현들은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이 세상을 진리를 통하여 완전무결한 ‘이데아’의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였다. 이러한 이원론의 세계관은 세계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고, 나를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 이원화함으로써 우리 인간이 자연을 대상으로 인간을 위하여 탐구하고, 개발하고, 변형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이에 따라 서양은 자연의 물질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빠른 성장의 역사를 건설할 수 있었고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참고 2.5] 하지만 이러한 서양의 이원론은 인류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무분별하게 자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생태계 교란과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위기를 초래했고, 인류가 만든 자연의 고통이 인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 왔으며, 학문적으로도 세계를 나와 독립된 개체로 탐구하는 실재론은 근대에 이르러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한계와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인류가 존재한 기간의 단 1%도 채 되지 않는 약 1만 년 동안에 더 상세하게는 ‘축의 시대’로부터 현재까지 약 2,500년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일어난 일인 것이다.
결국 서양의 이원론은 나의 외부 세계는 내가 이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나의 내면세계가 해석한 세계라는 인식과정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칸트를 거쳐 헤겔에 이르러 관념론적 세계관으로 대전환하게 된다. 물론 예수의 기독교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관상기도를 통해 하느님이 나에게 임재 할 수 있다는 일원론적 사유로의 전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결국 현대의 서양철학도 나의 외부이든 내부이든 내가 인식하는 세계는 나의 존재와 함께 생성되고 나의 죽음과 동시에 소멸한다는 세계관, 즉 보는 자아와 보이는 세계가 나뉘지 않고 같은 근원이라는 붓다와 노자의 범아일여의 사상과 궁극적으로는 같은 세계관을 갖고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내가 나의 생각에 맞게 마음대로 바꾸고 파괴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의 한 부분임을 인식하고 세상의 진리 안에서 살아가도록 우리 스스로의 생각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마치 동화의 주인공처럼 먼 훗날 오래오래 잘 먹고 잘살기 위하여 지금의 팍팍하고 고통스런 삶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하느님의 나라에 가기 위해서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가르쳐준 ‘주의 기도’처럼 바로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사랑을, 붓다의 자비를, 공자의 인을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싸우지 않고,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처럼 살아가되, 물의 본질에 집착하여 미셀 푸코가 말한 것처럼 주관적인 판단이 기준이 돼 결국 이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배제하며 억압하는 권력으로 군림하게 되어 ‘폭력과 분열‘로 이어지는 우를 범하지 말고, ‘유무상생(有無相生)’의 관계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 관계성 안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하는 세상의 질서 안에 자연스럽게 머무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인류가 출현한 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슨 생각으로 살아왔고, 칼 세이건이 “우리 인간은 그저 우주의 먼지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 아마도 유일하게 의식과 자각을 갖게 된 우주의 일부이기도 하다.”[참고 2.2]라고 한 말처럼 우리는 이 우주의 만물의 영장이 되었으나 풍요와 번영을 누리는 것 이상으로 폭력과 전쟁의 공포, 그리고 기후위기에 의한 6번째 대멸종의 위협에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축의 시대’ 성현들의 가르침을 통해 이러한 혼란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성현들의 가르침을 교훈 삼아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모색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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