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와 공리주의
3.1.2.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자 일단 ‘이성’과 ‘욕망’에 대한 과제는 과제로 남겨두고 이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약 1,900년 정도를 훌쩍 뛰어 넘어 토마스 모어(1477~1535)의 유토피아(Utopia)에 대하여 알아 볼 차례이다. 이 유토피아는 네이버 지식백과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유토피아”를 중심으로 정리 하였다.[참고 3.5] 모어는 1516년에 그의 저서 “최선의 국가 형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에서 우리 모두가 꿈꾸고 있는 ‘행복한 세상’을 제시하였다. 모어는 이 행복한 세상을 유토피아(Utopia)라고 하였는데, 이는 'u(없다. or 좋다.)'와 'topia(장소)'를 합성하여 만든 신조어로 ‘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아주 좋은 세상’, 즉 모어가 꿈꾸는 모두가 행복한 ‘미래의 이상향’을 의미한다. 모어가 유토피아를 꿈꾸던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의 유럽은 오랜 기간 동안의 십자군 전쟁과 로마 교황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와 14세기 유럽인구의 60%를 감소시켰다는 페스트의 창궐 등의 극심한 혼란기를 거쳐, 상업의 발달로 인한 도시의 팽창과 농촌의 몰락, 그 농촌의 몰락으로 인한 중세 봉건사회 구조의 해체 등의 변화와 함께 유럽의 르네상스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였다. 세상은 점차 안정되고 풍요로워 졌으나, 이의 혜택은 극히 일부의 왕족과 귀족들만의 것이고,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으니, 모어가 이러한 반이성적이고 차별적인 세상에 대한 반동으로 원시부족사회의 우리 선조들이 공동생산 공동분배하며 살던 평등한 세상을 이상향으로 꿈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무리일까? 어쨌든 모어의 모두가 행복한 세상인 유토피아는 원칙적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의 ‘평등’을 추구한다. 이를 위하여 첫째, 공직자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아닌 그저 시스템적 관리를 위해 선거로 선출하는 임기제의 거버넌스를 채택하였고, 둘째, 모든 재화는 공동으로 관리함으로서 사유재산이 없어,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없는 공유제를 채택하였다. 이는 서로 상부상조하여 모두 함께 내 것 네 것 없이 가족처럼 화목하게 잘 살아보자 라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서 이와 관련한 친구의 이야기 하나가 떠올라 소개하고자 한다. 내 친구는 선박을 타고 전 세계를 누비던 기관사였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해외여행 경험이 전혀 없던 나로서는 휴가 때 마다 들려주는 그 친구의 바깥세상 이야기는 흥미진진하였다. 그 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소련이 붕괴되기 이전 어느 항구에서 친구가 목격한 일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그 친구가 탄 배가 물건을 하역하기 위하여 정박하고 있을 때, 소련의 부두 노동자들이 곡물을 하역 작업하는 행태를 보니,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대충 대충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업 중 부두 바닥에 흘린 곡물의 양이 적지 않았는데 이를 모아서 옮겨 싣지 않고 그대로 바다에 밀어서 버려 버리는 모습이 참 가관이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우리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며 의아해 했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같은 월급을 주지만, 일을 더 열심히 한다고 월급에 차등을 주는 것도 아니고 바닥에 버려진 곡물을 열심히 모아서 옮기는 수고를 했다고 수당을 더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사유재산이 없는 공산주의체제 하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자발적 의욕과 나에게 맡겨진 일을 나의 일처럼 생각하는 주인 의식 등의 동기 유발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위 하역 노동자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공유제는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고, 소속감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창의력과 자발적 의욕을 꺾어 버리고, 의타심을 조장하여 동료에게 할 일을 미루는 문제를 야기함으로서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모어도 이러한 공유제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였고, 이는 사회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뿌리 박혀있는 나태, 탐욕, 교만의 3대 악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노동을 기피하고, 무위도식의 원인이 되는 ‘나태’를 막기 위하여 ‘노동 의무제’를, 빈부 격차가 생겨 사회의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되는 ‘탐욕’을 없애기 위해 ‘공유제’를, 남과 비교하여 우위를 인정받고 싶은 명예 욕망의 원인이 되는 ‘교만’을 막기 위하여 모두가 같은 조건으로 평등하게 생활하도록 공동식사를 하고, 똑같은 의복에, 똑같은 주택에서 살도록 하였다. 정리하자면 모어의 유토피아는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비전으로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평등’과 ‘행복(쾌락)’을 사회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먼저 ‘평등’은 단순하게 생산·소유·분배·향유 등 물질적 조건의 평등만이 아니라 교육·학문·여가 등과 같은 정신적 조건의 평등이 동반되어야 공유제가 성공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모두가 평등하게 육체적・정신적 욕구가 충족될 때 느끼는 즐거움인 행복(쾌락)을 누리도록 해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모든 욕구가 다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이고 이성의 명령에 따라 욕구가 충족될 때 느끼는 즐거움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아! 여기서 또 우리는 ‘이성’을 만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모어 자신 보다 무려 200여년 뒤의 칸트에게도 여전히 숙제였던 ‘이성’ 말이다. 우리에게도 계속 과제가 될 테니 ‘이성’은 계속 염두에 두도록 하자.
모어의 꿈, 유토피아의 이상은 훌륭하였으나, 이를 실현하는 방법론에서 크게 다음 두 가지의 근본적인 오류를 갖고 있다. 첫째, 인간의 노동력과 생산력은 일정한 한계가 있어서 한 사회의 재화의 규모는 일정하다고 설정한 것, 둘째, 사회의 행복을 위하여 인간 개개인의 욕구와 수요를 억제하여 생산과 분배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첫째는 기술혁신에 의한 생산량 증대를 고려하지 못한 오류이고, 둘째는 후대의 칸트도 해결하지 못한 인간의 ‘이성’이 ‘욕구’를 충분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과대평가한 오류인 것이다. 이에 따라 모어의 꿈, 유토피아는 한 사회의 재화의 규모는 일정하기 때문에 다수가 만족하는 최선은 인간의 욕망 지수를 낮추어서 만족의 성취도를 끌어 올리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즉, 모어는 인간의 ‘이성’에 기대어 세속적 욕망을 억제함으로서 행복을 추구한 것이다. 어째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추구하는 일반 종교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러한 유토피아의 이상인 공유제는 공산주의의 핵심 이념으로 이어져 마침내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소련에 실제 적용되어졌다. 건국 당시 소련은 착취와 소외가 없는 진정한 평등과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이상적 국가로 기대되었으나, 이러한 기대는 스탈린의 독재체제에 의해 바로 사라져 버렸다. 왜냐하면 모어의 유토피아의 대전제는 ‘평등’이고, 이 ‘평등’은 물질적 조건의 평등만이 아니라 정신적 조건의 평등이 동반되어야만 공유제가 성공할 수 있는데, 스탈린의 공산주의는 거버넌스의 평등이 동반되지 않은 것이다. 소련의 공산주의는 일부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서 일부 물질적 조건의 평등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으나, 스탈린의 독재체제는 이전의 왕과 귀족이 가졌던 권력을 스탈린과 공산당으로 대체하여 더 강력한 권력을 독점함으로서 거버넌스의 평등에 실패한 것이다. 결국 소련의 공산주의는 모어의 유토피아를 실현한다는 희망과 기대 속에 출발한지 70여년 만에 독재의 디스토피아로 판명되면서 실패로 끝나 버렸다.
한편,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은 그의 저서 “신 아틀란티스(New Atlantis)”에서 인간의 불행은 빈곤에서 비롯되고, 이 빈곤은 생산력 부족에 의한 공급 부족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기술혁신에 의한 생산량 증대로 무제한의 공급이 가능하다면, 인간의 욕구를 충분하게 만족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행복이 욕망의 성취에 의한 만족도로 계량된다면, 베이컨의 신 아틀란티스는 만족도가 높아 행복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베이컨의 목표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풍요로운 사회의 실현이었다. 즉 베이컨은 인간의 모든 욕망(소유·지위·명예·권력 등)을 원하는 대로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행복한 사회를 구현 하고자 했다. 모어의 유토피아가 철저한 계획경제에 의하여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는 공유제 즉 공산주의 사회를 이상으로 삼았다면, 반면에 베이컨의 신 아틀란티스는 자유경제에 의하여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한 것이다. 19세기 유럽에서 바라본 새로운 대륙의 미국은 마치 베이컨의 신 아틀란티스가 구현된 나라처럼 실제로 자유와 풍요를 구가하는 나라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미국은 빈부 격차 뿐 아니라 인종차별 등의 각종 차별로 양극화가 심해졌으며, 이는 21세기로 들어서면서 더욱 심해져서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이지만 빈부격차 또한 극심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마이클 센델에 의하면 미국은 2006/2007년에 상위 1%의 부자가 미국 전체 부의 1/3을 소유하고, 그리고 상위 10%가 미국 전체 소득의 42%, 전체 부의 71% 소유하며, 하위 90%의 재산은 전체 부의 29%에 불과하여 이들의 재산의 총합이 상위 1%가 가진 재산 보다 적을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해져서 세계 최고의 경제 불평등의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이다.[참고 3.4]
여기서 우리는 모어의 ‘유토피아’와 베이컨의 ‘신 아틀란티스’의 꿈이 그들이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간에 각각 소련과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을 통해 구현한 결과 이 역사적 실험이 둘 다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모어의 유토피아처럼 개인의 욕구를 통제하고 평등을 위해 분배에 방점을 찍은 공산주의를 택한 소련은 평등은 일부 성과(귀족과 평민의 계급은 해방했으나 공산당이라는 또 다른 계급의 독재체제를 구축)를 얻었으나 빈곤으로 부터의 해방(자율적 근로의욕 저하 및 분배정의 실패)은 실패한 것이 그 이유이다. 둘째, 베이컨의 신 아틀란티스처럼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요구를 무제한 충족시키기 위해 자유경제에 방점을 찍은 자본주의를 택한 미국은 풍요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빈부격차 등의 양극화로 평등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실패한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여기서 우리가 이러한 두 가지 유토피아 실험의 실패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공유제이든 자본제이든 반드시 제대로 된 ‘이성’에 의한 정신적・도덕적 보완이 필수적이다. 즉 ‘이성’에 의한 보완 없이 사회 제도만으로 공유제를 추진하면 공산독재체제가 되고, 자본제를 추진하면 양극화의 신자유주의체제가 된다. 둘째, 평등을 위해 개인의 자율성을 억제하면 생산성 저하로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셋째, 풍요를 위해 개인의 자율성을 조장하면 무한 경쟁으로 함께 잘 사는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위 두 가지 유토피아 실험의 실패와 이를 통해 얻은 사실들로부터 우리가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교훈으로 삼아야할 것은 ‘풍요’와 ‘자유’, 그리고 ‘도덕’이 어느 하나 또는 두 가지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세 요소가 조화롭게 상호 유기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3.1.3.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정치・사회적으로 경제적 풍요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경제성장을 이루어 여유롭고 윤택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는데 모든 정책을 집중하고 노력해왔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가장 분명한 이유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기본적인 ‘욕구’가 바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이고, 이를 충족하면 더 나은 삶, 즉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개개인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다수의 행복을 추구함으로서 사회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할 필요성이 대두되게 된다. 이에 따라 제러미 벤담(1748~1832)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 功利主義)가 출현하게 되는데 이를 다음백과, “공리주의”를 중심으로 알아보자.[참고 3.6] 18~19세기 산업 혁명과 더불어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자본주의 경제 규모가 급속하게 확대되어 사회가 더욱 풍요로워짐에 따라 각자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이 뚜렷하게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하나의 사회 안에서 각각의 이기적인 개인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라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개인의 공리(功利)와 사회 전체의 공리(功利)를 조화시키기 위한 공리주의가 등장하였다. 따라서 벤담의 공리주의는 개인과 사회 전체의 공리(功利, utility)를 근간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 이 공리주의의 원리는 궁극적으로 행복은 우리 인생의 목적이요, 최고선(最高善)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부합하는 행복주의이고, 이러한 행복을 위해 시도하는 행위는 그 결과가 언제나 선(善)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그에 뒤따르는 결과들의 전체 가치로 환산하는 결과주의이며, 각 개인의 이기적 관점을 벗어나서 사회적 공리의 관점에 서야 한다는 모어의 생각과 부합하는 평등의 보편주의에 의하여 형성 된다. 이러한 행복, 결과, 보편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공리주의 정신에 따라 벤담은 사회에서 될수록 최대한 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리는 것이 더 좋기 때문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도덕과 입법의 토대로 제안하였고, 인간의 모든 쾌락(행복)은 같다는 가정 하에 쾌락(행복)의 양을 일곱 가지 기준(강도, 지속성, 확실성, 근접성, 생산성, 순수성, 범위)에 의하여 정량화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사회 전체의 최대 행복을 위한 전체 공리가 이를 위해 지불해야하는 공리(정책투자 비용과 소외되는 소수의 공리의 합)보다 더 클 때만 정책을 채택하고 추진하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과 모어의 평등사상으로 무장한 벤담의 공리주의는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이고 마치 새로운 유토피아를 실현 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은 인간의 인권과 존엄성으로 이를 반박한다. 샌델은 이를 위해 로마시대에 콜로세움에서 그리스도인과 죄인들을 사자 우리에 던져 넣고 시민들이 이를 스포츠 경기 관람하듯이 즐기도록 한 역사적 사실을 예로 들었다.[참고 3.4] 사자 우리에 던져지는 몇몇 사람들은 사지가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수많은 로마 시민들이 이를 보고 집단적으로 열광하고 쾌감(행복)을 느낀다면 사회 전체의 공리의 양이 훨씬 크기 때문에 벤담의 공리주의는 이런 반이성적・반도덕적 행위를 억제하기는커녕, 권장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벤담은 이 같은 게임이 사람들을 잔인하게 만들어 로마 거리에서 폭력이 난무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거나, 언젠가 자기들도 사자 우리에 던져질 수 있다는 공포의 확산으로 쾌감이 상쇄되어 사회 전체의 공리가 감소함으로서 정책적으로 이 게임을 금지 시키게 될 거라고 반박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 전체의 공리의 양 만을 계산하는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는 우리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아도 용인하는 모순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공리의 양만을 계산하여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를 보완하기 위하여, 이제 쾌감(행복)의 양뿐만 아니라 쾌감(행복)의 질적인 차이까지를 고려하는 질적 공리주의가 등장한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 라고 일갈하면서 같은 양의 쾌감(행복)이라도 질적인 차이가 있어 감각적・본능적 쾌감(행복)보다 정신적・이성적 쾌감(행복)이 질적으로 더 수준이 높은 쾌감(행복)이기 때문에, 인간다운 인간이라면 당연히 더 바람직하고 더 가치가 있는 높은 수준의 쾌감(행복)을 추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밀은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에서 간과한 개인의 권리를 철저하게 보장한다. 인간은 자율적 존재이기 때문에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유롭게 행동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의 권리 보장은 일시적으로 사회 전체의 공리를 감소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결국 인간의 행복이 극대화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밀의 이러한 질적 공리주의도 마이클 샌델은 설문조사의 사례를 들어 모순점을 지적한다. 샌델은 쾌감(행복)의 양뿐만 아니라 질(quality)적인 차이까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밀의 주장을 검토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참고 3.4] 먼저 그 당시 학생들이 좋아하는 세 가지 오락 프로그램(폭력이 난무하는 ‘레슬링 경기’, 세익스피어의 연극 ‘헴릿’, 만화영화 ‘심슨’)을 보여주고, 그런 다음 두 가지(이 세 가지 프로그램 중에서 1. 가장 쾌감(행복)을 많이 느끼는 것은?, 2. 가장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은?) 질문에 대답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설문의 결과는 1. 가장 쾌감(행복)을 많이 느끼는 것은 언제나 ‘심슨’이 절대적 1위를 차지하였고, 2. 가장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은 학생다수가 ‘헴릿’을 선택 하였다. 이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심슨’을 더 좋아하지만, ‘헴릿’을 질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쾌감(행복)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중에는 자신을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체면 때문에 ‘헴릿’을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밀의 주장대로라면, 민주 시민 교육을 충분하게 받은 대학생들에게서 나온 이 결과는 ‘심슨’이 ‘헴릿’ 보다 질적으로 더 우수하다고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는 모순에 빠져 버린다. 밀은 그저 울상을 지으면서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 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결과는 공리주의의 대 전제인 행복, 결과, 보편주의를 벗어나 버린 것이다. 샌델은 이에 대하여 ”욕구는 더 이상 무엇이 고상하고 저급한지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못 된다.“ 라고 말한다.[참고 3.4] 벤덤의 양적 공리주의와 밀의 질적 공리주의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행복, 결과, 보편주의의 원리에 더하여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이성’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성, 개성과 자율성이라는 도덕적 이상을 추구하여만 하는 것이다.
이제 벤담과 밀의 고전적 공리주의는 칸트의 ‘이성’의 도움을 받아 규칙 공리주의로 거듭나게 된다. 인생의 목적은 쾌감(행복)이고, 이것은 언제나 최고선(最高善)이기 때문에 행위의 결과도 선(善)할 거라는 대전제는 앞에서 기술한 반박들에 의해서 이미 무너져 버렸다. 이에 따라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인 행위의 결과를 우리가 완전무결하게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편적이고 도덕적으로 '최대의 행복'을 가져오는 행위의 규칙을 정하고, 이 규칙을 준수하여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자는 것이 고전적 공리주의를 보완한 현대의 규칙 공리주의이다. 이러한 규칙 공리주의는 행위의 규칙을 얼마나 보편적이고 도덕적으로 잘 설정하는가 하는 문제와 이를 잘 실천할 수 있게 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칸트의 ‘정언 명령’이 갖고 있는 도덕의 정언적 성격과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되, 이상주의적이고 엄격하여 현실적 호소력이 떨어지는 점을 고려하여 실천이 가능한 규칙을 정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공리주의가 사회 전체의 공리를 극대화하여 인간의 행복(쾌감)을 향상시키고 고통을 경감시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인간의 내면적 동기를 간과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 등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리주의는 대 전제가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아무리 개인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존중한다 하더라도 다수의 공리를 위해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에 기대어 일부 개인의 자율성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여전히 갖고 있다. 이제 우리의 행복에 대한 생각은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한 평등과 개인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자유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대립의 관계인가? 아니면 서로 조화롭게 통합할 수는 없는가? 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