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by 이성룡

이곳은 사시사철 꽃이 피고 집니다.

이름 모를 꽃이 참 많기도 합니다.

문자 그대로 야생화 천국이지요.

뿐만 아니라 나무도 참 종류 별로 많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뒹구는 낙엽에... 꽃잎에...

그 모습이 참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어떨 땐,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의 앞마당을 연상시킬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빗자루를 듭니다.

문득 난 지난 1년 9개월과는 다른 나를 봅니다.

그땐 빗자루가 아니라 꽃삽을 들었었지요.

왜냐고요?


나는 이사 전에 앞뒤 마당이 잔디로 가득 찬 그런 집에서 살았었습니다.

그땐 잔디에 듬성듬성 얼굴을 내미는 민들레와 전쟁을 했었지요.

빗자루를 들진 않았습니다.

잔디위로 굴러다니는 낙엽은 매우 자연스러운 풍경입니다.

물론 그땐 잔디 깎기가 중요 일과 중 하나였습니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잔디가 없습니다.

잔디 관리로 스트레스 받기 싫다는 거지요.

서양식 화단과 깨끗하게 보도블록으로 포장된 앞마당이 있지요.

뒷마당엔 수영장도 있고요.(이거 관리 장난 아닙니다.)

그래 이젠 빗자루가 주요 연장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하는 일이 이렇습니다.


오늘 아침 앞마당 낙엽을 쓸며 문득 어린 시절 나 살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땐 동네 골목 청소가 선행의 하나였는데.....

겨울 함박눈이 내리면 땀 뻘뻘 흘리며 치우곤 했는데...

까마득하게 그 시절을 잊고 살고 있더군요.

아마도 아파트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겠지요.


사실 아파트가 편리하다는 것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지요.

그러면서 우리는 전원생활을 동경하고, 잔디밭을 그리워하지요.

나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기를 꿈꾸었습니다.

사실 이 꿈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언젠가는 시골 어느 한적한 곳에 흙집 짓고 채소 일구며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는 자연과 함께 숨 쉬고 사는 것이....

와이키키 해변에 누워 망고 주스 마시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 애써 외면하며 살고 있을까?

자연의 삶 자체가 어느 누구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나는 인간이 이룩한 문명을 마음껏 누리면서 자연도 누리길 원합니다.

아프리카 어느 마을의 수도도 전기도 없는 자연을 원하지 않습니다.

기상이변으로 지진해일이 덮치고,

카타리나가 세계에서 제일 잘 났다는 미국의 한 도시를 뒤 흔들어도....

나는 자연에 우리가 만든 문명의 이기를 양보할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황사가 정말 싫고... 디젤 매연은 참기 어렵습니다.

근데 그건 내 잘못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정확히 용기가 없습니다.


내가 정말로 자연과 함께... 그들 품속에서 살고 싶다면....

과감하게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걸 일부 포기해야 한다는 걸압니다.

아니 내가 아닌 자연을 사랑해야 가능한 일일 겁니다.


이제 정확히 2개월 후면 그리운 내 나라로 돌아갑니다.

아마도 이곳의 자연 환경이 그리워지겠지요.

하지만 아파트에 살더라도.....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탈 수 는 없을지라도...

무언가 내 나름대로 자연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이 자연이 없으면 나도 없지 않겠습니까?


2005년 10. 23. 호주 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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