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별오름
오늘은 여유롭게 숙소 마당에서 이쁜각시가 차린 브런치를 먹었다. 오순도순 식사 중에 어제 유채꽃 만발한 도로를 드라이브하면서 감성에 푹 빠진 이쁜각시가 한 말이 생각났다. “전망 좋은 카페에서 차 한잔했으면 좋겠다. 근데 돈이 아까워. 그래서 나는 단체 모임 말고는 카페에 가본 적이 없어. 이런 내가 어떨 때는 화가나.”라고 무심하게 툭 던졌었다. 알뜰하게 살림하느라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아직도 7~80년대 3천불 시대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여행은 같이 많이 다녔어도 숲속 같은 자연을 주로 찾아다녔지 소위 문화 활동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오늘은 근사한 카페에 가서 커피도 한잔하고 다양한 빵(이쁜각시가 제빵에도 관심이 많다.)도 먹을 수 있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가고 싶은 곳에 데려다주겠다고 하니, 이쁜각시 혼자서 열심히 휴대폰을 뒤지더니 새별 오름과 그 옆에 있는 카페 새빌을 가고 싶단다. 일몰이 멋진 곳이란다. 사실 오름은 제주의 흔하디흔한 언덕 정도로 기억하고 있던 나는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지만, 내뱉은 말도 있으니 그냥 큰 기대 없이 출발하였다.
<사진> 정원에 차린 브런치
나중에 위키백과를 찾아 알아보니 오름은 큰 화산의 주 분화구 등성이에 생기는 작은 화산으로, 주 분화구가 분출을 끝낸 뒤 화산 기저에 있는 마그마가 약한 지반을 뚫고 나와 주변에서 분출되어 생성된 측화산(側火山) 또는 기생화산(寄生火山)이란다. 제주에는 약 384개의 오름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처럼 복수의 측화산이 한 산에 기생하는 식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일이란다. 이렇게 지질학적으로 상당히 의미가 있는 오름을 그저 육지의 뒷동산 정도로 생각했던 나의 무지를 탓할 수 밖에.... 새별 오름에 도착하니 이건 또 뭐야? 오름 한 가운데 등판에 들불축제라 새겨놓았다. 그리고 안내판을 보니 여기서 들풀축제를 한단다. 제주의 들풀축제의 유래는 제주 중산간 초지에서 목축하는 목동들이 육지의 쥐불놀이처럼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늦겨울에서 경칩에 이르는 기간에 목초지에 불 놓기를 하던 목축문화를 발전시킨 것이란다. 제주들불축제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올해로 22회 째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축제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그런데 문득 “아니 왜 하필 지질학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오름에서 불놀이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별 오름은 별로 높지는 않은데 상당히 가파르다. 가쁜 숨 내쉬느라 이런저런 생각할 틈을 내주지 않는다. 오름을 한 바퀴 돌고 주위를 둘러보니 오름 옆 낮은 언덕에 전망 좋은 카페가 눈에 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있다는 카페 새빌 이다. 원래 그린 리조트 호텔을 리모델링해서 카페로 만들었다. 호텔이라 하기에는 낡고 조그마한 건물을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요즘 카페 스타일로 바꾸었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리모델링을 이렇게도 하는구나.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웬만한 도시 근교에는 하나쯤 있을법한 별 특이할 것 없는 이 카페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비결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이랄까 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안에 들어서니 벌써 많은 사람이 꽉 들어 차 있다. 일몰이 좋다니까 전망 좋은 곳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이미 나에게 틈을 내줄 곳은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잔뜩 흐려 일몰 볼 일이 없을 것 같은데도 이미 앉아 있는 사람들이나 혹시 끼어 앉을 틈은 없나 기웃거리는 내가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별로 내키진 않지만, 한쪽 빈자리에 앉아 이쁜각시가 주문해온 커피와 가르쳐줘도 잊어먹는 빵들을 놓고, 마치 매일 이렇게 사는 것처럼 마음껏 거들먹거리는데, 이쁜각시가 한마디 한다. 주문하려고 줄 서 있는데, 뒤에 있는 모녀에게 중년 남성이 다가와 “세상에 여기 카페라테가 얼만지 알아? 7,000원이야, 7,000원. 기가 막혀”라고 하자 딸이 황급하게 “ 아빠 조용히 좀 해”하고 말을 가로막았단다. 내 생각하고 똑같구먼 하면서 무엇이 중년 남성과 딸의 생각을 다르게 했을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사진> 새별오름과 카페 새빌
대체 뭐지? 쥐불놀이에 애써 의미를 붙여 지질학적 의미가 있는 오름에다 해마다 불 지르는 들불 축제는 뭐고, 다 쓰러져 가는 낡고 조그만 호텔을 카페로 개조해서 일몰이 장관인 카페로 만드는 힘은 무엇이며, 이에 환호하며 쫓아다니는 나 같은 사람들은 또 뭐지? 이것은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것과는 분명하게 다르다. 아마도 “생각의 차원”이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인간의 생각은 무엇이고, 생각은 어떻게 발달해 왔으며, 이에 따라 어떻게 세상이 변해왔는지에 대한 생각에 이르자 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노자 인문학”의 책 내용이 떠올랐다.
“노자 인문학”에서 최교수는 사람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작동하여 사람의 방식으로 자연에 변화를 가하는 것,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결과를 ‘문화’라 하고, 그 문화로 인해 이루어진 형태를 ‘문명’이라 정의하였다. 결국, 우리 인간 생각의 발달과 변화가 지금의 이 문화, 현대 문명을 이룩했고, 또 새로운 문화, 문명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문명을 이루기까지 우리 생각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체제유지와 욕망, 이 두 가지에 기반하여 발달하고 변화해 왔다고 생각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체제유지 측면에서 보면 우리 인간이 구축한 종법제도, 봉건제도 심지어는 민주주의까지 기득권을 가진 지배그룹이 자신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생각의 구체적인 구현이었다. 이는 공자가 이야기한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논어 〈자로〉”에서 구체화 된다. 따라서 사회가 발달할수록 권력의 무게중심이 중심(소수)에서 주변(다수)으로, 귀족에서 평민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하여 명실상부(名實相符)가 아닌 명실상치(名實相馳)가 일어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중심(소수)을 주변(다수)이 공격하는 현상이 끊임없이 발생하게 되고 이의 결과에 따라 또 다른 문명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둘째로, 인간의 욕망 측면에서 보면 사유재산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차별이 생기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체제가 생기고 결국은 오늘날의 자본주의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는 개개인의 자율의지에 기반한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문제는 이 욕망이 통제되지 않고 무한히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름에서 들불 축제를 하고 그 옆에 자리한 카페 문화를 보며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많은 생각을 하긴 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재의 우리 문명이 앞으로도 자손만대 지속가능하고, 이 자연과 함께 상생하려면 개개인의 욕망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우리의 생각이 변화해야 하는 건 확실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