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유감

용화반점을 찾아서

by 별사탕


동인천 중앙시장 골목


‘봄밤’ 감독과의 gv가 미림극장에서 3시부터 있는 토요일이다. 다른 볼일을 보느라 아침부터 서둘러 3시가 되기에는 두 시간이나 공백이 생겼다. 뭘 먹을까, 혼자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마땅히 갈 데가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부평역에서 전철을 타서 동인천 역에 내린 나는 가야 할 방향을 잃은 채로 그 자리에 그만 우뚝 서 버리고 말았다. 이럴 땐 영락없이 배터리가 나가 작동불가한 상태의 AI다. 좀 인간적으로 말하면, 마치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이 몸속에 들어온 느낌이 된다. 순간, 갑자기 용화반점이 떠오르고, 똔똔똔똔... 줌 아웃. 나는 몸을 틀어 용화반점으로 방향을 잡았다. 생각해보니 거의 7, 8년만이었다.


용화반점 가는 길은 동인천역 북광장으로 나와 오른쪽 중앙시장의 한복거리를 뚫고 나가야 한다. 골목 끝에 다다르면 길을 건너기 위해 지하도로 내려가야한다. 지하 통로는 공방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그렇게 건너간 건너편 골목에는 헌책방들이 줄지어 있고, 헌책방을 구경하며 골목을 좀 더 올라가면 성냥박물관이 나온다. '인천에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하던 그 성냥공장이 맞다. 이렇게 동인천은 옛날 것들로 넘쳐나 볼거리가 많다.

책방거리 앞쪽으로 도로 위를 지나는 고가도로 덕분에 그 아래로 그늘이 만들어져 일요일이면 전문 고물상들이 모여 벼룩시장도 열린다. 고가 밑으로 횡단 보도가 있고, 보도를 건너 주택가 안쪽 골목 초입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보면 용화반점이라고 흰색바탕에 빨간색 한자를 세로로 써놓은 간판이 보인다. 용화반점.


반점 앞에 당도한 나는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헛웃음만 연신 터져나왔다. 홀이었던 가게 내부에 대기자들이 지렁이줄을 서고 있었던 것!


한시간 기다려야 한대.


아이손을 잡고 앞에선 애엄마가 자기 남편에게 하는 말이다.

분명 7, 8년 전에 왔을 땐 파리날리고 있던 집이었다. 그리고 맛도 그냥 그랬다. 어찌 생각하면 일부러 먹으러 오진 않겠다 싶은 집이었다. (미확인 추측: 당시 얼핏 듣기에 주인이 물려주려는 걸 아들이 받아 장사를 하네 마네 하는 문제로) 가족 구성원으로 운영하는 중식당이 웬지 장사하지 않는 집 같은 분위기를 풍겼었다.


무슨 짜장면 한 그릇 먹자고 저렇게 줄을 서야 할꼬? 노인 같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동인천 역 앞에는 막국수집도 있고 함흥냉면 집도 있고 순대국집은 더 많다.

어딜 가나 낯선 곳에 혼자 뚝 떨어지면, 나는 늘 중국집을 찾아 들어간다. 낯선 곳에서는 친숙한 음식을 찾게 마련이니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사람들은 왜 줄을 서서 버티며 저 집에서 꼭 먹고 말겠다는 심사인 걸까? 그야말로 성지순례라는 기분과 같은 심정일까,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고 싶지 않은 오기의 발동일까, 아니면 나 여기와서 먹어봤다는 맛부심, 행락부심을 가지고 촬영 컷을 계정에 올리고 싶어서일까?

그거 해서 뭐하려고? 이런 것도 자기만족을 위한다는 말이 통할까? 그게 뭐라고? 이네들은 내 눈에는 목숨 바쳐 불로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보인다.

멸치나 꽁치 정어리 같은 작은 생선은 서로가 주는 신호에 따라 방향을 일제히 움직이며 수백 마리 수천 마리가 마치 하나의 몸체인양 행동한다. 뭉쳐 큰 덩어리일 때 더 오래 생존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보여주는 맛집 ‘나레비’도 그렇게 보인다. 군중심리에 민감한 이유.


대중의 심리를 분석할 때 풍선이론이라는 게 있다. 어떤 새로운 장소를 찾아낸 최초 발견자가 소문을 내면 주변의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든다. 시간이 흐르고 그 아지트가 더 이상 그들만의 아지트가 아니라고 판단한 첫번째 그룹이 다른 아지트를 찾아 떠난다. 새로운 아지트가 다시 공유지가 되는 순간 또 다시 최초그룹이 새 아지트를 찾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그룹들을 풍선1, 풍선2, 풍선3으로 부른다면 풍선1과 풍선3 이후의 풍선그룹들은 서로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 이게 현대 사회의 계층 혹은 계층의식의 발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들 그룹들은 움직일 때마다 다른 풍선을 밀어내든지,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갈 뿐이다. 그래서 서로 섞일 일은 추호도 없다. 평범한 보통사람의 생활공간과 삼성회장의 생활공간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이 둘은 서로의 공간을 공유할 일이 절대 없는, 계층의 분리를 확연히 체감할 수 있는 모델을 제공한다.


그냥 ‘먹을 일’을, 먹으러 ‘다닐 일’로 바꾼 세대가 있다. 그것을 시작한 1세대를 포함해서 이제 모든 세대가 다 그렇다. 신성했던 한 끼의 종교가 흥미진진한 예능으로 전과해버렸다.

세상이 바뀌면서 동네는 이방인들로 들끓고, 골목 안은 젊은이들의 줄서기로 낯선 풍경을 이룬다.


동네사람도 한끼 먹고 싶다. 그런 담박한 마음뿐인지라, 골목 안 풍경에 입에서는 절로 넋두리가 나온다. 햇살 따가운 삼복 여름 뙤약볕, 불볕 아래 다 벗겨진 알머리통을 벌겋게 달구며 왔던 길을 다시 돌아 걸어 내려가는 발길이 허기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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