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부엉이에 대한 분석
관련문장: 헤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면 날기 시작한다.'
인물 정리
아폴론의 까마귀 이야기
1. 까마귀1의 이야기:
아폴론의 까마귀가 아폴론에게 그의 애인 코로니스가 결혼했다는 얘기를 전하기 위해 날아가던 중 친구를 만나 충고를 듣게 된다. 미네르바(아테나)가 에리크토니오스라는 아이를 바구니에 넣어 케크롭스 왕의 세딸에게 맡기면서 절대 상자를 열어보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했으나 막내딸이 열어 보았다. 이걸 까마귀가 미네르바에게 일러바쳤다. 미네르바는 일러바친 까마귀를 내쫒고 그 자리를 올빼미에게 맡겼다. 미네르바는 모든 새들에게 가볍게 입을 놀리다가는 까마귀처럼 된다는 교훈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그러니 너도 아폴론에게 가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폴론의 까마귀는 명에 따른 것이라 괜찮다고 하였다. 그러자 까마귀1은 원래 자신은 공주였는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자신을 겁탈하려고 할 때 미네르바가 자신을 까마귀로 만들어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이다. 그런 자신도 입을 잘못 놀려 올빼미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비밀을 이야기했다.
신들은 믿을 수 없다. 나는 순결을 지키기위해 새가 되었는데, 저 올빼미는 사실 레스보스 섬의 공주 '뉘티메네'였다. 뉘티메네는 아버지와 몸을 섞어 그 벌로 낮에는 다니지 못하고 밤에만 돌아다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런 올빼미에게 자리를 빼았겼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느냐는 하소연을 했다.
까마귀1의 조언에 대해 아폴론의 까마귀는 자기가 코로니스에게 머리를 얻어맞아 분하고 억울해 아폴론에게 알려야한다고 했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코로니스의 불륜을 전해들은 아폴론은 활을 쏘아 코로니스를 맞혔다. 화살을 맞은 코로니스는 두명의 생명이 죽어간다고 외치며 죽었다. 놀란 아폴론은 뱃속의 아기(아스클레피오스)를 꺼내 켄타우로스의 현자인 케이론(오케아니스와 크로노스의 자식, 헤라클레스에게 히드라의 피가 묻은 독화살을 맞고 너무나 고통스러워 죽지 않는 불사신의 몸이었던 그가 제우스에게 제발 자신을 죽여달라고 간청했고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운명과 바꾸어 죽게했다. 죽어서 궁수자리 별이 되었다.)에게 맡겼고 케이론은 아이에게 의술을 전수했다. 그 아이가 자라 죽은자를 살려내니 죽음의 신 하데스가 제우스에게 하소연하였고 이를 들은 제우스가 번개를 쳐 아스클레피오스를 죽였다.
아폴론은 까마귀에게 코로니스의 정부였던 이스키스의 검은 피부를 씌웠고 그때부터 까마귀의 깃털은 까맣게 변했다.
2. 이야기의 분석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결과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결과는 '까마귀의 깃털색은 까맣다'이다. 다음으로 까맣게 된 사연, 즉 이유가 나와야 한다. 인과에 따른 서사의 연결구조다. 결과는 현실이고, 원인은 탐구의 과정이다. 이유가 결과에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을 우리는 이야기라고 한다.
이걸 좀더 분석해보면, 이유가 바로 나오지 않고, 이유의 이유, 즉 전제 조건을 제시한다. 이 전제조건들을 현대서사에서는 복선이라고 부른다. 그리스 로마신화, 특히 로마의 오비디우스(변신이야기)의 모든 이야기 모티프들은 인과의 연속으로 연결되어 있다. 원인이 원인으로써 작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을 전제라고 해두다. 논리학에서 당연전제를 정언명제라고 하는 것처럼 이야기에도 당연히 깔아두어야할 전제들이 나온다.
전제1. 아폴론과 코로니스가 떨어져 있는 거리는 아주 멀다.
전제2. 아폴론은 명궁수였다
전제1과 2는 결국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데 원인과 정합성을 이룬다.
결과: 코로니스를 죽일 것이다.
모든 이야기들에 공통된 구성 요소들이다. 원인과 전제들이 완벽하게 수미쌍관되는 구조는 지금도 허리우드영화의 결말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런 인과적 구성은 매우 전통적이고 클래식한 작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비디우스는 완벽한 인과구조를 보여주는 전범이다.
그래서, 설화나 속담 같은 이야기들(인간이 만들어내는 픽션)은 단지 생활상에서 생각해낼 수있는 근거(이유, 궁금증, 숨겨진 사연)들을 밝히기 위한 고대인들의 단순하고 재미있는(재치있는) 발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질문: 까마귀는 왜 까만 색인가?(다른 새들과 차별화된 존재감 발견)
전제1: 까마귀는 까만색이다.
전제2(조건): 원래는 흰색이었다
전제3(기능): 모든 까마귀는 감시기능을 한다. 까만색은 밤에 눈에 띄지 않고, 그래서 밤의 일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인과적 개연성)
만들어진 전제가 앞뒤 맥락이 맞아 떨어지면, 비로소 제목이 만들어진다.
3. 제목의 탄생
제목: 흰 까마귀가 검은 까마귀가 된 사연(어떠한 고자질도 칭찬받지 못한다: 교훈)
전개1: 까마귀1의 이야기(전언)
1. 까마귀1의 비밀: 원래 공주였으나 포세이돈의 겁탈을 피하고자 아테나의 도움으로 까마귀가 되었다.
2. 올빼미의 비밀: 원래 레스보스(레즈비언의 유래지) 섬의 공주 뉘티메네였다. 아버지를 유혹해 성관계를 했다.
전개2: 고자질 때문에 까마귀의 감시기능이 박탈된다.
전개2: 까마귀2(아폴론의 까마귀)의 이야기(현실)
1. 평소 까마귀는 아폴론에게 거짓말(거짓 보고)을 자주 한다.
1. 까마귀1로부터 교훈을 들었음에도 반복적 행위(고자질)를 한다.
2. 까마귀의 고자질로 아폴론이 코로니스를 죽인다.->사생아가 탄생한다(그의 운명까지 포함하여 모든 이야기가 비극이 된다.)
전개가 이야기의 전부를 차지한다. 이제 이것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남감해진다. 전통적인 소설의 구성단계로 보면 위기로 이야기가 상승곡선을 타야하지만, 신화 구조에는 위기나 절정이 없다. 대신에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야한다.
4. 파생
1.죽은 코로니스의 배에서 아들 아스클레오피스가 태어난다.
2.불사의 의술을 배운 아스클레오피스가 사람들을 살려낸다.->세상의 질서가 무너진다.->죽음의 신 하데스가 노한다.->제우스가 번개를 쳐 아스클레오피스를 죽인다. (제우스는 자신의 손자를 죽인 것이다.)
-> 말도 안 되는 일(천륜, 인륜에 배반하는 일)은 인과관계에 의해 벌어진다.
5. 대답
1. 아폴론은 까마귀2의 흰 깃털을 까만색으로 변하게 한다.
2. 올빼미가 까마귀의 자리에 있지만, 올빼미는 까마귀와는 다르게 근본이 부정한 존재다.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면 이야기는 끝난다. 오비디우스의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계속 이어질 수있는 이유가 인과의 연결고리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구성방식과 같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만들고, 원인을 찾아 들어가서 원인의 원인을 또 찾아가는 형국이 된다. 그것은 마치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벽에 비친 내 얼굴이 거울속으로 끝없이 연속되어 보이는 것과 같다.
옛사람들은 인간을 하나의 이야기로 보았다. 그래서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나타낸다.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는다는 것이 교류가 되며, 서로를 나타내고 서로를 알 수있는 통로가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길손을 집에 들이는 이유도 그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그의 이야기는 그가 데리고 온 인간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세상에대한 견문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 세상 소식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은 결국 사람을 통해서이니, 사람을 알게된 것과 같은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 알수있는 사실은, 세상의 모든 일(대상, 사건)은 중의적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야간에 다니며 낮에 안 보이는는 것을 본다는 특징(검은 까마귀가 밤에 다니며 눈에 띄지 않고 대상을 감시한다는 태생적 기능과 유사하나, 까마귀의 현재가 그렇다는 것이고 이야기 속의 까마귀가 흰색으로 등장하는 것은 현실과 관계없는 이야기다. 즉, 원인을 만들기 위해 꾸며낸 말이 앞뒤 관계의 모순을 만든 셈이다.)을 활용한 이야기 소재다. 그러나 그의 진짜 속성은 금기를 어긴 존재다. 어둠을 본다는 것은 그런 것을 보는 행위를 넘어서 그런 일을 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래서 근친상간이 내화로 등장한다.
원래 헤겔이 사용한 올빼미는 사건의 전말을 알수있게 해주는 시점을 말한다. 즉 시간이 지나면 그 일의 전모를 알수있는 때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황혼이 되면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원인들이 속속들이 밝혀진다. 그러면 결과를 알 필요도 없이 어둠에 묻혀있던 모든 일들이 확연히 떠오르게 된다. 올빼미가 밤에 눈을 뜨는 것처럼, 세상의 진리, 진실, 사실들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이다. 이것이 이야기의 사명이다.
-서양신화들은 또한 별자리의 기원을 말하기도 한다. 그게 별이 되었든, 존재 혹은 현상이 되었던 한국문학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모두 묶어 연기설화라고 부른다. 서양신화와 한국 연기설화가 다른 점은 서양신화의 경우 그 인과의 고리가 끊임없이 이어져 몇개의 이야기들이 중첩된 구조를 가지고 있고, 한국의 연기설화는 인과가 단일하다는 것이다. 마치 이것은 세상만물이 끊임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 서영과 한가지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동양정신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서양의 철학적 가치관과 배치된다. 그런데 과학의 발달에 연관지어 잘 생각해보면, 정확한 이해라고 할 수있다. 만물에 적용되는 공통법칙을 찾아 증명하는 것이 과학이 하는 일이라면 과학이 미미했던 시절에 세상을 가장 합리적으로 이해한 방식이 아닌가 싶다. 반면 동양에서는 한 가지 본질을 파고 들어 그것을 만물에 적용했으니, 과학과는 맞지 않았고, 경험적 체계보다는 철학적 깊이 쪽으로 발전하여 정신의 기조를 형성하는 본질적 개념들에 충실한 삶을 전개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선험적 정신적 가치관이 뿌리내린 동양과, 만물에 적용되는 경험적 체계를 현상에 적용한 서양의 사상이 결과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 것은 바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그 결과물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