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전 도가

by 별사탕

정갈하게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체구가 작은 노인이 임최수 집의 문지방을 넘어 들어왔다. 임최수의 부인이 일어서자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손님을 맞았다. 노인은 선 채로 임최수의 부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의 어지를 받들어 왔사옵니다. 어의 황백린이라 하옵니다."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노인은 임최수의 앞에 앉아 그를 향해 바짝 몸을 끌어당겨 소매를 걷어 팔을 살피고, 이내 손목의 맥을 짚었다. 피가 배어난 무명겹을 가볍게 눌러 다리 상태를 살펴보았다.


"속단하고, 골쇄한 것을 보해야 할 터이니, 그 전에 어혈을 빼야겠습니다. 군불을 때서 땀이 등을 적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여, 대황을 자시게 할 터이니 혈변을 받아낼 대야를 준비해주셔야 합니다. 그 다음은 지룡탕을 준비해 올 터이니 그 물을 음용케 하소서."


백목전 난장 상인들이 마련한 안가였다.


"그리고 사람들을 모두 물리시고, 부인만이 영감의 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문 밖에는 금줄을 치도록 하여 잡인의 출입을 금하소서."


노인을 에워싸고 있던 장사치들이 쉬쉬하며 문지방을 넘어 청마루 아래로 내려갔다. 그날부터 임최수의 방은 잠긴 채 그 부인 유씨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유씨 부인은 부지런히 약을 달이고 대소변을 받아냈다. 술도가에 들러 소주를 한말씩 받아왔다. 볕에 말린 무명에 소주를 적셔 임최수의 몸에 들러붙은 피떡을 닦아냈다.


"차도가 좀 있지라?"


나씨 성을 가진 백목전 장사치였다. 그의 일행이 시구문으로 임시종의 시신을 빼내 왔던 것이다. 임최수는 적막한 전옥의 짚 위에 모로 누워 밤새 숨을 몰아쉬었고, 그때마다 옆 옥방의 이도철 역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몸에서 새 나오는 신음을 앓았다. 신끄는 소리가 들리며 어둠 속에서 나졸이 하나 나타나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술들 한잔씩들 허우."


나졸은 소매에서 고깃점을 싼 헝겊뭉치를 풀어냈다. 그리고 손에는 옥병이 하나 들려 있었다. 임최수는 알았다. 저 옥병이 어디에 놓여 있었던 병인지 한눈에 보았던 것이다. 사정전 집무실 문갑 속에 서 있던 병이었다. 청의 조정에서 가져온 조선에 없는 물건이었다.

그러면서 병을 옥 문살 안으로 밀어 넣었고, 주둥이 채로 삼킨 술 끝에 고기를 싼 헝겊뭉치가 들어왔다. 그렇게 술병이 옥문살을 오가는 사이 임최수는 정신이 몽롱해지며 뭐라고 말을 해 볼 틈도 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다음날 죄인이 죽었다는 말이 났다. 평리원의 옥지기나 감찰은 판관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처분만을 기다렸다. 판관들 역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평결을 내리기 전에 죄수가 먼저 죽어버린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사형언도를 내리고, 교형을 했다는 뜻으로 줄을 목에 매어놓고 시신을 찾아가라고 통보하면 누구도 모를 것이오."


그렇게 일사천리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라고 재판부는 서기에게 통보했고, 어찌 알았는지 북촌 언덕에 있는 임최수의 집으로 먼저 달려와 주었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빼내온 임최수의 몸을 만지며 부인 유씨는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훌쩍거리기만 했다.


"좀 기다려 보씨요, 깨날텡게..."


나 씨의 말을 듣고도 한나절이 지나 임최수가 용트림하듯 신음을 뱉어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눈을 껌벅거리다가 이내 온몸으로 통증을 느끼는 듯 목을 비틀었다.


"니얄은 양의가 올틴디..."


노란 수염을 기른 키 큰 서양인이 나타난 것은 다음날 오후 점심을 먹고 벽에 붙어 졸음에 겨워하던 때였다. 덜컹거리듯 문이 흔들렸고, 곧 나 씨의 얼굴이 밖에 서있었다. 그의 뒤편으로 초가의 처마 위로 목이 쑥 올라가서 보이지 않는 키 큰 사람이 서양옷차림으로 가방을 손에 들고 서 있는 게 보였다.

나 씨가 길잡이가 되어 제중당에서부터 백목전거리까지 서양의사를 모시고 온 것이었다. 듣자 하니 황제의 어의이기도 했다. 황제께서 친히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이런 성은을 입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유 씨 부인은 궁을 바라보고 두 손을 모았다.

그렇게 어의는 그 시간에 어김없이 나타났다. 환부를 알코올로 씻어내고, 요오드 용액으로 소독했다.


"방이 너무 뜨겁소, 당분간 불을 반만 때시오. 이 알약을 매일 아침 식후 30분마다 먹이고, 이건 저녁약이고, 이건 자기 전에 자시게 하시오."


어의는 닦아낸 환부를 헤집어 노란 덩어리를 긁어내고 장독을 소독하고 씻어냈다. 그리고 틀어진 뼈를 맞추듯 환자의 몸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어깨와 골반을 눌렀다. 심하게 파열된 무릎은 깨진 뼈가 어서 붙기를 바랄 뿐이었다.


"죽지는 않을 것이오만, 그렇다고 성치도 못할 것이오."


이듬해 김홍집 내각은 나라를 쇄신한다고 일본식 제도를 도입했다. 그 첫 번째가 상투를 잘라내는 것이었다. 임최수는 부인 유 씨에게 가위를 가지고 오게 했다. 머리 꼭대기에 묶어놓은 뭉터기 상투를 밑동에서부터 싹둑 잘라버렸다. 유 씨가 놀라 그 자리에 엎드렸다.


"놀라지 마시오 부인, 이제 난 새로 난 것이라 믿소."


임최수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는 절대 몸이 먼저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맑고 곧은 정신만큼이나 올곧은 군관의 몸이었다. 임최수는 병석에 누워 관보를 뒤적거렸고, 어의가 가져온 서양책을 펼쳤다. 거기에서 민권이라는 말을 배웠고, 백성이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의 법률과 제도가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세상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도 깨달았다. 조선과 중국, 일본, 미개한 남양의 종족들, 북방의 오랑캐. 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땅의 반대편 어딘가 다른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우선 눈앞에 있는 이 서양사람이 자신을 치료하는 걸 보면 의원이 고치지 못하는 병을 척척 고쳐내는 이 사람들의 세상이 알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도 이 사람의 나라라고 하는 아메리카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매일 서양인 어의가 임최수를 찾아왔다. 6개월이 지나자 임최수는 일어나 앉아 웃었다. 손아귀에 힘이 쥐어졌고, 목을 똑바로 가누고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난장을 맞을 때 잘못 맞은 데가 아직도 쑤시고 뻐근했다. 완전히 서서 걷기에는 아직 부족했지만, 부인 유 씨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아 퇴청에 나가 앉아 있기도 했다. 다시 여섯 달 지나자 밤이 되면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진호를 규탄했다. 자신도 도성 안에서 얼굴을 들 수 없었던지, 전라도지사 제수를 받고 삼남에 내려가고 도성 안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거사를 같이 했던 훈련대 동지들로 임최수의 작은 방은 북적였다. 그때마다 부인 유 씨는 작은 쪽방에 앉아 음식을 들여보냈고 술을 들여보냈다.


"우릴 잡으려고 혈안인가 보오."

"왜 안 그렇겠나? 우상범이가 몇을 불고 풀리났다 카더마. 그놈은 춘생문 담을 넘자마자 이진호한테 붙은 놈인기라. 내 이 눈깔로 똑땍이 안 봤나?"


주동자 둘은 사형, 종신 유배가 셋, 징역 10년이 하나, 장 100대에 3년 징역이 넷이었다. 천주쟁이들과 동학도당들의 옥사가 이어진 이래로 큰 옥사였다.

안부를 묻고 성토를 하는 나날들이 길어졌다. 그러는 사이 김홍집 내각은 황무지 개간권을 달라고 내각에 청원을 내고 각처에 사무종사원을 선발한다는 방문도 곳곳에 붙이기 시작했다. 한성에 관보 붙은 벽보장에서 모집문을 떼온 사람이 땅을 치며 한탄했다.


"인자 이놈들이 이리 시작하는 게 아니오? 처음엔 황무지겠지만 종당엔 멀쩡한 땅도 불하해 가져갈 테니 이를 어쩌면 좋겠소?"


임최수는 그의 말이 백번 맞는 말인 듯싶었다. 철도 부설권을 가지고 있던 미국인에게 그 권리를 양도받은 일인의 회사가 결국 인천 가는 철도를 놓고 말았다. 일본이 조선에서 첫 철도 사업에 손을 댔고, 인천 우각현에 부려진 물자들은 속절없이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은 더욱 굶주리게 되었고 물자부족은 물론이고 쌀값은 물론 각종 곡식의 값이 뛰기 시작했다. 거기에 경부선까지 완공된다면 불을 보듯 뻔히 눈뜨고 조선땅의 물자가 바다 건너 일본땅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그저 쳐다보고 있어야 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면 조선땅은 일인들의 손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황제께서 아라사관으로 피신하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내각 또한 다시 구성되었다. 그야말로 나라가 이리 뒤집히고 저리 뒤집히는 형국이 반복되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의 생활은 쭉정이처럼 말라비틀어져 갔다. 농사를 지어도 수확물을 가져갈 수 없는 이상한 배분이 적용되었다. 지주의 몫을 제하고 도지를 제하고, 각종 나랏세를 물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은 굳은 살과 갈라진 손등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적수공권의 신세였다. 경상북도와 강원도에 사는 농사꾼들이 솥단지를 떼서 짊어졌다.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 함경도 이북 간도 땅으로 넘어갔다. 그나마 뱃삯이라도 충당이 되는 사람들은 일본으로 건어갔고 그들은 허드레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세월을 네 해나 보냈지만 임최수의 왼쪽 다리는 비틀어진 상태로 굳었고 바로 펴지지 않아 불구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얼추 몸이 추슬러졌다고 생각한 임최수는 부인 유 씨를 불렀다.


"천택이는 어디 갔소?"

"간난이 안고 나가 장에 돌아다니고 있을 겝니다."


이제 막 두 돌 된 아이는 제법 소리를 질러가며 온 동네 골목을 아장거리며 돌아다녔다.


"내 말 잘 들으시오. 내 이번 거사에 연루되어 돌아오지 않으면, 노량진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종착지까지 가시오. 거기가 우각현이오. 다시 거기서 제물포라는 물가를 찾아가시오. 거기에 가서 아메리카로 가는 배를 수소문하시오. 갈 수 있는 배가 있을 것이오. 그 배를 꼭 타야 하오. 그래야 부인도 천택이도 살 수 있소. 그 길이 우리 목숨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오."


임최수는 속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유 씨 부인은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어찌 그리 무서운 말씀을...!"

"조정에 헌신하는 것은 나 하나로 선을 그으려 하오. 작금의 현실은 내가 다시 전옥서에 갇혀 비명에 가더라도, 이 아이에게만은 천형 같은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소. "


그리고 가죽 첩을 하나 내밀었다.


"잘 간수하시오. 배를 탈 때 필요한 물건들이오. 궁내부 종친들에게 부탁해서 만든 것이오."


유씨 부인은 가죽첩을 열어 반절로 접힌 종이를 펼쳤다. 오른 쪽은 한자, 왼쪽은 영어로 된 문서였다. 황제의 도장인 듯 붉은 도장이 날짜 옆에 찍혀 있고, 수결한 글자가 낙관처럼 붉었다. 유씨부인은 만감이 교차하며 황망했다. 대주 영감은 지금 생을 놓았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지아비가 가고자하는 길이었다.


"부인이 손에 든 것은 집조라는 것이오. 거기에 동반 일인이라고 부기했으니 천택이까지 잘 부탁하오. 그리고 반대 편에 들어 있는 걸 빼 보시오. 거기에는 아메리카에서 만들어준 허가서가 있소. 이 모든 증명들이 하나라도 빠지면 승선하지 못할 것이오. 그러니 생명처럼 잘 간수해야 할 것이오."


바닥에 떨어지는 눈물을 애써 못 본 척하며 임최수는 굽어진 다리로 일어섰다. 그 길로 사람들을 다시 조직했다. 보안회라는 이름을 내걸고 일본과 그 앞잡이 내각이 하는 짓을 철저히 막고 조선의 이권을 빼앗기지 않게 하는 결사의 취지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전라도에서 올라온 나간에게 통문을 붙여 돌리게 했다. 훈련대 각 아문과 시전 상인, 각 도가의 접장들을 주축으로 했다. 이번엔 유수 가문의 식솔들은 빼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괜히 양반님네들한테 통문이 넘어갔다가는 이진호 같은 놈이 생겨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주려 본 자만이 주린 자의 심정을 알 수 있는 법이었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백목전이 늘어선 골목 안에 몰려온 장사치들이 늘어서서 임최수 쪽을 바라보았다.


"뭐하노, 여! 여다 상을 몇 개 쌓아 올리라. 그래야 저게까지 잘 안보이겠나?"


사람들의 머리에 가려 무리들 너머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운집했다. 아침나절부터 좁은 골목을 사람들이 가득 매웠고, 골목 밖에도 지나갈 틈이 없을 정도의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어떻게 흰옷 입은 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임최수는 이것이야말로 조선사람들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생존을 건 운집, 이 민족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할 때를 동물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아니면 이들이 일어설 때 목숨이 떨어지는 것인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임최수는 교자상을 두 개 차려 놓고 그 위로 포개 올린 자개 단상 위로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올라갔다. 조선백성들의 정치적 결사를 일본은 내각을 내세워 법으로 막고 있었다. 보안회는 정치적 활동을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행위를 합법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생존권 투쟁이라는 주장을 경무국에 제출했다. 그 뚜렷한 싸움의 대상이 바로 정부의 황무지 개관권에 대한 불하 건이었다. 말을 탄 기마병들이 큰길의 좌우를 막아섰다. 그리고 소총을 든 헌병대 군인들이 길을 열며 인파를 헤치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막고 해산시키기 위한 포진으로 보였다.

군중들을 향해 임최수는 있는 대로 소리쳤다.


"이것은 대체 누구의 땅이란 말이오? 황상폐하의 참변이 있은지 십년이 되어가오. 그동안 이 나라 백성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이오. 왜군의 발에 밟히고, 동리가 불타며 살는 백성들이 불타죽었소. 왜 닭쳐다보듯하오, 댁들은 소란 말이오? 가만 있지 마시오. 이 땅은 대체 누구의 땅인가! 있어보오, 농사지을 땅도 죄다 빼앗길 테니. 그러니, 모두 함께 외치시오. 땅은 농민에게! 우리가 일군다! 한 뙈기 땅도 빼앗지 마라! 개관권을 주지 마라!"


순식간에 사람들은 우하는 소리와 함께 몰려 나갔다. 골목을 나선 흥분한 군중들이 큰길에서 한 방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종루를 지나 육전 거리로 나서자 멀리 건너편으로 경운궁이 보였다. 파천후 황제가 거처를 옮긴 것이었다. 사람들은 경운궁 앞으로 몰려들어갔다. 길 양쪽에 섰던 장사치들이 진열한 상품들을 모두 걷어버렸고, 시전에 포목을 둘러 문을 아예 닫아 버렸다. 그들도 모두 대열에 합세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몰려든 군중의 뒤를 임최수는 절룩이는 발을 끌고 뒤따랐다.

군중들은 경운궁 안에 계신 황제를 향해 소리쳤다.


"황제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저마다 흙바닥에 엎드려 앉아 통성으로 곡을 하기 시작했다. 뒤 따르던 사람들의 대다수는 경운궁 담을 끼고돌아 의정부가 있는 서소문 쪽 골목으로 올라갔다. 광화문 앞에 있던 집무소들이 모두 서소문길로 옮겨 왔기 때문이었다.


"개관권을 거두어 주시오! 황무지는 농민에게 개간토록 하시오. 조선사람에게 땅을 주시오. 일인들과의 계약을 파기하시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임최수가 소리쳤던 요구를 되풀이해서 외쳐댔다. 뒤이어 도착한 사람들이 상을 펼치고 단을 쌓았다. 멀리서 말을 탄 헌병이 허리에 찬 칼을 뽑아 세워 들었다. 여차하면 달려들 기세였다.

임최수는 지팡이를 짚고 절룩이며 다시 단상 위로 올랐다.


"여러분, 이 땅은 누구의 땅입니까?"


사람들의 입에서 '조선사람 땅이지! 암은!' 하는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일본이 하는 짓을 보십시오. 철도를 깔고 우리 곡식과 물자를 헐값에 빼돌리고 있어요. 우린 눈뜨고 가만히 도둑질당하고 있습니다. 황무지를 주고 나면 그다음은 또 무얼 가져가겠나요? 이 조선 땅 전부를 먹으려고 덤벼델건데, 그걸 그냥 두고 볼 셈인가!"


사람들이 불같이 길길이 날뛰며 주먹을 쥐고 하늘을 찔렀다. 정본당의 각료들이 창문에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집무소의 문은 굳게 잠겼고, 마당을 오가던 사령들도 건물 안으로 사라지고 텅 비어 있었다.

그때 총성이 들렸고, 말의 울음이 들렸다. 사방에서 말발굽소리가 군중을 향해 짓쳐들었다. 사람들은 놀라 좌우로 뛰어 달아났고, 달아나는 사람들의 등을 기마병들이 칼등으로 후려쳤다. 쓰러진 사람들에게 달려든 헌병들이 포승으로 묶어 끌었다. 철저히 계산된 체포였다. 미리 점찍어둔 주요 인사들을 기마병이 달려가 칼등으로 내려치는 것이 체포의 신호였던 것이다.

급히 단상에서 내려온 임최수도 그렇게 붙잡혔다. 다시 평리원에 잡혀온 임최수는, 평리원 전옥서에서 이상한 젊은이를 한 명 발견했다. 황제 폐위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성고를 받은 청년은 시종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진지하고 삼엄한 죄수들을 상대했다. 그는 놀랍게도 옥중 선생노릇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글을 가르쳤다. 그리고 밤이 되자 조용히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를 따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 젊은 지도자 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아침이 밝아오면 다들 그 청년 앞에 나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고 그들은 알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리기를 한참, 아멘으로 끝나는 그것을 기도라 했고, 서로 그렇게 모여 회합하는 것을 예배라고 불렀다. 낮에는 글을 가르쳤고, 그 앞에서는 귀천이 없었다. 그리고 밤에는 종이에 글을 썼다.

고통스럽게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전옥서의 영창으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고단한 숨소리가 적막한 공기를 타고 흘렀다. 임최수는 벽에 기대 서로 얼키설키 누운 어깨와 달히 사이로 자신의 다리를 뻗었다. 다 펴지지 않는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책읽는 소리가 옥방을 잠자는 깨우듯 담을 넘어들렸다. 맑고 단아한 소리였다. 소년의 글읽는 소리가 담장을 넘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 소리에 화답하는 피리소리가 들릴만했다.


"옆방에 누가 있소?"


글읽는 소리가 멈추고 신끄는 소리가 들렸다. 임최수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우수현 사는 우남이라 하오."

"젊은이가 성현의 행보를 보이시는구료"

"과찬이옵니다. 잠시 구차한 지경을 당하는거지요."

"나는 동양이라 하오."


순간 옥의 적막이 두사람을 휘감았다. 잠시후 우남이 옥문살을 붙잡고 고개를 바깥으로 붙이며 입을 열었다.


"동양이라면 을미년에 교수당한 그 동양 영감이시란 말씀이오?"


임최수는 입술을 모아 쉬하는 소리를 냈다. 그역시 옥문살 쪽으로 기었다. 문살을 붙잡고 얼굴을 옆방 쪽으로 바짝 당겨 몸을 기울였다.


"그렇소, 성은을 입어 여태 살고 있소이다."

"영감, 어찌 이런 변고가!"

"청년은 뉘신가? 이런 데서 성현의 도를 행하시니..."

"전 전하의 일가지요. 왕실의 내종 꼴이지요."


임최수는 놀랐다. 황제의 일가에 이런 인물이 있었던가 싶었다. 종친부에 올라있는 명부를 들여다 본 적이 있었다. 직계와 방계를 막론하고 장성한 인물들은 요긴하지 못했고, 어린 아이들은 아직 그 뜻을 모르는 세대들이었다.


"그런데 어찌 폐하를 모해하는 일에 관여를 하셨소?"

"모해는 모해가 만드는 법이오."


임최수가 듣기에 우남은 즉답을 피하면서 자신의 의중을 정확히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보였다.


"역모를 도모했으니 형을 면치 못할 터, 형장의 이슬이 될 것은 나나 우남이나 매일반이겠소."


임최수는 자신의 회생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고백했다. 그 뒤에는 성은의 보살핌이 있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역시 모두 성은의 덕이었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청년은 살아 나갈 방도를 버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자신은 신분이 밝혀지는대로 형이 집행될 것을 알았다. 이번에는 살아나가지 못할 자신을 예감했다.

을미년 때의 처참했던 광경들과 춘생문 거사의 실패를 겪으면서 황제 폐하의 시름을 함께 한 시종의 이야기를 찬찬히 전했다. 청년은 조용히 귀를 열고 옥문살에 몸을 의지한채 꼼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각이 뒤집어졌고, 다시 파천이 일어났다. 그러는 사이 나라의 귀틀은 흐지부지 바르지 못한 모양으로 흘러갔다. 젊은이들이 깨어나야한다. 종친의 각성이 있어야한다. 임최수는 자신의 마지막 당부나 되는 것처럼 청년에게 하소연 하듯 나라의 형편과 황제의 건강을 염려했다. 두 사람은 새벽닭이 세번 울 때까지 잠못들고 깨어있었다.


"모두가 잠든 때 깨어있는 자가 되어야 하오."


다음 날, 재판정이 술렁거렸다. 그리고 서기에게 기록부를 가져오라 명하고 을미년의 재판 기록을 뒤졌다. 분명 임최수는 교형을 받고 시신을 가족이 인수해 갔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죽은 ㅂ줄 알았던 사체가 되살아난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잡혀들어와 재판을 받고 있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판결은 미루어졌다. 그러는 사이 옥에 있던 청년이 사람들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기도했다. 그리고 이마에 엄지로 십자를 그어주었다. 그런 예식을 받은 사람들은 얼굴이 온화해졌고 그런 얼굴로 형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임최수는 자신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 식솔들은 아메리카에 보낼 것이오. 우남이 나가서 큰일을 한다면 바다밖, 경계 밖에 나간 조선 백성들을 돌봐 주시오."


임최수는 청년이 남들에게 하는 것처럼 자신의 이마에도 십자를 그어줄 것을 부탁했다.


"제가 아직 세례를 줄만큼의 영은 있지 않으나 하느님께서 이런 상황에서는 익히 용서하실 것입니다."


다음 날, 사형이 확정되고 이틀 후 자신 역시 그 청년 앞에 무릎을 꿇어 이마에 십자를 받고 교수대로 나갔다. 교수대가 있는 마당에 몰려선 사람들의 탄식이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포승줄에 묶인 팔을 뒤로 한 채 그는 얼굴에 씌운 두건 안에서 하얀빛을 보았다. 그리고 깜깜한 어둠 아래로 떨어지듯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갔다.

임최수에게 세례를 주고, 그가 목매달려 생을 하직하던 시각, 옥 문에 꿇어앉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있던 청년은 당년 스물세 살이 된 양녕대군의 16대손, 이승만이었다. 그는 황제의 고조 항렬에 있는 황실의 직계 종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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