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 부인은 남편 임최수의 시신을 묻었다.
경기도 광주, 이곳은 그들이 조선 조정의 반을 살았던 세거지였다. 운구가 밤새 달려 실촌면 유사리에 당도한 것은 다음날 점심이 지나서였다. 달구지에 실린 임최수는 다시 교수되어 실려 나왔다. 이렇게 기막힌 사연이 있을까, 한번 죽은 사람을 두 번 장사 지내야 하는 부인의 마음은 처절하고 비통했다.
유사리는 나가기도 좋고 숨기에도 좋은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조상들은 좋은 때를 만나면 물길을 따라 임금에게 나아갔고, 시절이 나쁘면 강을 거슬러 깊은 골짜기로 숨었다. 세거지의 임씨 일가들은 이제 숨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죄명은 과거에도 역모였고, 지금도 역모였다. 사흘 전부터 유씨부인은 광주로 돌아와 가산을 정리했다. 집과 농토를 친정 오빠에게 부탁했다. 남편의 문중 사람들도 나서기를 꺼렸고 일부는 세거지 광주를 아예 떠나기도 했다. 예부터 삼족을 멸한다는 역모였다. 사람들은 더 깊은 산골로 숨어 들어갔다.
"장사만 치르고 빨리 뜨거라. 동학으로 죽은 동지들이 수십만이다. 우리가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던 데는 시종의 힘이 컸다. 이제 그 명줄도 떨어졌으니, 어떻게 죽임을 당할지 모를 일이야. 하물며 개관권을 들고일어난 것은 왜놈들을 정면으로 반대한 것이야."
친정아버지의 당부였다. 유 씨부인의 부친 또한 동학 때 광주의 교도를 끌고 전쟁을 이끌었던 유학자 접주였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미 한번 경험이 있었던 분이었다.
"지금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야 할 때다. 이런 본향은 원래 촌로가 지키는 법이고."
곰방대 연기가 맵게 타올랐다.
"길게 볼 것 있나, 삼일장으로 하세."
그렇게 사흘이었다. 임최수와 함께 했던 훈련대 동지들, 시종원 사령, 궁내부 종친의 하인들이 다음날부터 속속 당도했다. 왕실의 친위대 복장으로 갈아입은 일단의 병졸들이 칼을 빼들고 얼굴 위로 들어 올려 고인의 가는 길을 영접했다.
임최수의 부친 임종구는 대문밖을 벗어나는 일체의 곡을 금지했다.
"이제 우리 집안도 여기서 끝인가 보다."
임종구는 운구가 나가는 대문을 바라보며 맥없이 주저앉았다. 백성들이 소나무껍데기를 벗겨 먹은 지 여러 해였다. 흉년에 늦장마가 지는가 하면, 어떤 해는 가뭄까지 겹쳐 모든 작물의 수확이 반토막이 났다. 그나마 곳간에 있던 곡식들마저 다 풀어 인근 작인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기름진 땅을 가졌다는 광주도 그런 형편이었다. 나라 곳간이 텅 빈 것도 누구 탓할 일도 아니었다. 모두 억척스런 세월에 굳어진 척박한 심사들이었다. 무언가 더 큰 것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육감적으로 어렴풋한 옛날이 잊힌 기억처럼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건 악몽과도 같아서, 떠올라서는 안 되는 기억들이었다.
저녁 무렵엔 제복을 입은 경무관이 순사를 끌고 나타났고, 서양식 예복을 갖춰 입은 일인도 한 명 방문하여 수발인지 통역인지 모를 새부리모양의 모자를 눌러쓴 남자를 한 명 대동하고 한쪽 방에 앉아 있었다.
선산 마루에 겨울해가 오붓하게 내려 쪼이는 오목한 자리를 잡아 묘가 들어섰다. 낡은 초가 같은 겨울 잡초들이 빛을 바랜 채 땅밑으로 바짝 끌려들어 가 있었다. 비석을 세우고 석등을 묻었다. 왼쪽에 석상은 그가 생전에 무인임을 드러냈다. 자그마한 상석이 조촐해 보이기까지 했다.
백목전에서부터 낯익은 얼굴들이 많았다. 그중에 나씨의 얼굴도 눈에 들어왔고, 그가 유씨 부인에게 와서 집안의 아범처럼 사람들의 안부를 전했다. 이번에도 역시 남편의 시신을 수습해서 광주까지 달구지에 실어왔던 사람이었다.
그가 견마 잡은 나귀를 타고 유 씨 부인은 유서리의 산길을 내려갔다. 매서운 강바람이 기슭을 훑어 올랐다. 겨울 억새의 행렬이 일제히 바람에 누웠다. 유씨부인은 날리는 장옷 자락 안으로 감싸 안은 아들의 얼굴을 조바위로 덮었다. 허리춤 안에는 동여맨 가죽첩이 몸에 바짝 붙어 있었다. 유일한 살 길이었다.
"제물포에서 현해환(玄海丸)이라는 배를 타야 한다고 했는디, 장기(長崎)로 가서 거기에서 서양배로 갈아탄다고 했습죠."
"동학도는 귀천이 없습니다. 습죠는 그만 두시지요."
그 길로 나씨는 입을 닫았다. 사실 나씨 역시 군졸 출신으로 임최수와는 한솥밥을 먹다시피 서로의 생활을 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명하복의 위계관계였다. 장교와 병졸의 관계이니 이전 시대로 따지면 양반 상놈의 사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좋아져서 군관과 병졸이지 엄격히 하자면 종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걸 동학에서 구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바랐던 것이다. 머릿속에서는 습득이 잘 됐지만 현실에선 영 몸에 익지 않았던 것이다.
꼬박 하루를 타고 걸었다. 그렇게 해서 귀실 나루에 당도하니 해거름이 강물 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사공이 보이지 않았다.
나루목에 나귀를 묶고 나씨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저 쪽 귀틀집이 보입니다. 사공을 불러옵쇼..."
나씨는 스스로 찔끔하여 뒷말을 흐렸다. 동학도는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는 상전의 말이 귓속에서 맴돌았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짚을 얹은 나무집 마당으로 들어선 나씨는 사공을 불렀다.
"해가 져서 넘어갈 수 없지요. 저 배는 강건너만 댕기는 배요."
"아니, 그라문, 강줄기를 타고 노량진으로 갈라믄 우째야 쓴다요?"
"그야, 나룻배를 타면 되지요만, 지금 시간이..."
사공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림없다는 듯 먼 산을 바라보았다.
"묵을 곳이 없으면 저 바깥채에서 잠은 잘 수 있소만!"
"잘 곳이 문제가 아닝게, 넘어 노량진으로 가얀당게..."
"아, 글세. 일이 다 끝났다고 허지 않소!"
"저개 저 배가 달랑거림서 서 있는디 왜 못간담요?"
"여보시오, 길손양반, 나도 살아야 허지 않겠소. 그 먼델 데려주고 나는 어찌 돌아오라고 허는 소리요? 돌아올 강길은 그믐밤 물길이란 걸 몰라 한단 말이요?"
나씨는 아차 하는 심정으로 난감했다. 다른 방도가 없어보였다.
"배삯을 두 배를 줄 터이니 편도로만 갑시다. 필요하면 그 쪽 잠자리도 내 봐 주리다."
멀리서 유씨가 나귀 옆에서 잠든 아이를 안고 서서 낭창한 목소리로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길고 음울한 유씨의 목소리는 강안을 유장히 흘러 울음처럼 강바람 속으로 섞여들었다.
집 안에서 사공의 아내가 몸을 드러내며 사공을 불렀다.
"급하신 일인가 보오. 여의치 않으면 해뜨거든 돌아오소. 나간 길에 광나루 장도 좀 보고 오시구랴."
사공은 혀를 차며 아내를 쳐다보고 방안의 풍경을 일별했다. 미련이 많이 남는 떫은 표정을 감추지 못한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마루에 던져둔 짧은 곰방대를 허리춤에 찔러넣었다.
"갈테면 서두릅시다. 물길 잡기 전에 해가 떨어질 수 있으니까..."
나룻배는 두 척이었다. 땅위로 반쯤 올려 놓은 작은 행선 한 척이 꼬리를 흔 들리며 나루마루 한쪽에 묶인 것이 보였다. 그리고 잔교 끝에 뗏목선이 하나 평평하게 물위에 떠 있었다. 나씨가 나귀를 풀어 잔교를 넘어 뗏목 위에 올라섰다. 유씨부인은 계단 돌을 밟고 똇목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나귀 뒤에 매단 짐보따리를 풀어 뗏목 위에 젖지 않도록 나무를 쌓아올린 단 위에 부려놓았다.
배를 풀어낸 사공이 길다란 노를 들어 물 속으로 찔러 넣자 천천히 땅이 움직이듯 뗏목이 움직였다.
"바닥에 앉으셔도 됩니다. 큰 구비가 없을 터이니 젖을 일도 없을 겝니다."
나귀가 잠시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균형을 잡고 바로 섰고, 나씨는 유씨부인이 안고 있는 아이를 받겠다고 부인 앞으로 두 팔을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짧고 단호한 음성이 낮았다. 유씨 부인은 짐을 부려놓은 자리 앞에 앉아 등을 기댔다. 뗏목 위로 상자처럼 짜 올려 원래 실어갈 물건들을 넣어두도록 만든 용도였다. 뗏목은 흔들거리며 강 안의 중심쪽으로 나아갔다.
"올 때는 혼자 힘으로 못 옵니다. 강이란 게 흐르는 방향이 있어서... 그래서 출발할 때 뗏군들이 서넛 모여 함께 일을 합니다. 오늘 혼자 떴으니 노량진에서 사람을 구해봐야겠지요. 하구쪽으로 흘러가는 물길을 타고 뗏목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구요. 강의 흐름을 잘 타면 힘들이지 않고 노량진까지는 반나절이지만, 되돌아올 땐 2, 3일은 족히 걸린다오. 그만큼 물길을 거스르는 건 힘이 드는 일이오."
섣달의 그믐이었다. 해가 떨어지면서 물 흐르는 소리가 고즈넉했다. 그것은 고단한 유씨부인을 곤한 잠에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장가처럼 천천히 흔들리는 몸은 고른 숨을 쉬게 만들었고, 아이의 숨 또한 잦아 들어 마음에 편안한 기분이 들도록 했다. 다만 모진 강바람이 이들을 세차게 훑어갔다. 유씨부인은 장옷을 더욱 여며 바람단속을 했다. 어린 천택이 고뿔이라도 걸리는 날이면 이 긴 여로가 더 고단해질 수 있을 터였다.
잠이 들었을까, 잠시 정신을 잃었을까, 복잡한 머리 속이 희미해지는가 싶은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강바람을 집어 삼켰다.
"저기 보시오, 저... 저기..."
"오... 오..."
사공과 나씨 모두 떠나온 강안 쪽을 바라보며 놀란 눈으로 턱을 떨어트린 채 서 있는게 보였다. 유씨 부인은 그들이 동시에 바라보는 쪽을 쳐다 보았다. 유씨 부인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둠 속, 먼 산속 어딘가에서 불꽃이 일고 있었다.
"저긴 유수리인데..."
유씨부인은 알았다. 나주 임씨의 세거지, 자신이 낮에 내려왔던 그 골짜기 기슭의 동네였다. 시아버지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제 우리 집안도 여기서 끝인가 보다.'
그리고 친정 아버지의 말도 떠올랐다.
'지금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야할 때다. 장사만 치르고 빨리 뜨거라.'
유씨 부인은 곤하게 자는 천택을 한 쪽으로 내려놓고 화광이 너울대는 유수리를 향해 엎드렸다. 알 수 없는 울음이 눈에서 뚝뚝 떨어졌다. 뗏목 아래로 강물이 출렁거리며 눈물을 받아 떠내려갔다. 유씨부인은 속울음을 삼키며 백번이고 천번이고 외쳐댔다.
'죄인 떠나갑니다. 살아만 계시오소서.. 살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