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

by 별사탕

"저기, 화톳불이 보이는 데가 광나루요."


배가 두물을 돌아들자 강물이 도도해지며 유속이 빨라졌다.


"이제부터 바람을 가를 것이오. 잘 붙드시오, 길손도 게 앉으시우."


나씨는 뗏목의 한가운데 정좌하고 앉아 사공이 저어나가는 배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밤이었다. 두물머리를 돌아들자 과연 물살이 빨라지며 배는 젓지 않아도 앞으로 죽죽 나아갔다. 사공은 노를 강물에 꽂아 두고 한번씩 자맥질하듯 노를 담갔다가 꺼내는 일을 했다. 배가 돌지 않도록 하고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는 일이라고 했다. 차가운 산 줄기가 긴 그림자처럼 사방을 둘러쌌다.

유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일행은 광나루를 멀리 바라보며 거룻배가 그득 들어서 있는 송파나루를 지나, 노량진 물가에 도착했다. 거룻배들, 덩치가 큰 판옥 형태를 한 관선이 몇 척 떠 있었다. 잔교를 따라 뗏목이 들어가자 나귀가 코울음을 울었다.


언덕 위 기와를 얹은 초소의 초롱이 움직이며 외치는 소리가 아래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물가에 누군가? 어디서 오는 벌선(筏船)인가?"

"수청서 내려오는 길이지라. 김서방이랑게."


잔교에 올라 배를 묶는 사이 나씨가 나귀를 몰아 뭍으로 올렸다. 다시 배로 올라온 사공이 유씨부인 뒤에 있던 보따리를 들어 나귀 등에 다시 메어 주었다. 유씨부인은 칭얼대는 천택이를 안아 올리며 잔교에 올라 뭍으로 걸어 나갔다. 흙을 밟고 바로 서자 이내 장옷을 뒤집어쓰고 얼굴만 새초롬히 끄집어냈다.


언덕 위로 사람들의 소리가 제법 웅성거렸다. 삼경이 가까워 올 시간이었다. 삐하는 호각 소리가 어둠을 뚫고 사방으로 달아났다. 유씨부인은 섬찟 놀란 듯 고개를 추슬렀다. 언덕 위에서 일인들의 말소리가 날카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숫자를 세는 것 같았고, 자심의 이름을 크게 외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군홧발 소리가 일제히 울리며 꽤 많은 숫자의 군인들이 발을 맞춰 땅을 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따금 말의 콧김소리가 힘차게 들리기도 했다.


"아라사를 이겼다고 기고만장이오."


연초에 아라사배들이 산동에서 제물포 앞바다에서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일본의 기습에 맥없이 침몰하고 말았다. 그 전해에는 청나라의 북양함대를 격파했다. 일본은 그야말로 조선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모든 나루와 포구가 일본군에 의해 장악되었다. 물을 건너 바깥 경계로 넘어가는 출입을 일본 군대가 관리하기 시작했다. 해상 통로는 외국군대가 들어오기 가장 취약한 구조여서 철저한 봉쇄와 감시가 필요한 지역이었다. 이제 일본에게 적이 될만한 국사는 미국뿐이었다. 미국이 조선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언젠가는 이 땅에 진주할 군대를 보내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셔먼호때부터 시작해서 신미년에 들어와 한껏 노략질하고 퇴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통상을 맺고 수교를 했다. 그러나 미국은 조약을 통해 약속한 겉보기와는 달리 일본의 뒷배를 봐주는 일련의 행보를 걷고 있는 중이었다. 미국이 일본을 묵인하고 돌아선다면 조선은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무아지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그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막고 또 막았던 것이었다.


나씨가 나귀를 부려 언덕 위로 올라갔고, 그 뒤를 따라 유씨 부인이 천택을 안고 걸어 올라갔다. 그 뒤를 돌아선 사공은 다시 잔교에 묶은 동아줄을 풀어내고 정박할 수 있는 기슭을 찾아 물가를 돌았다.


"게 누구라 하오?"


나졸이 초롱을 추켜 올리며 일행을 탐문했다.


"서종에서 온 박서방이지라. 요긴 우리 아씨랑게."

"무슨 일로 심야를 틈타 배를 타셨소?"


나졸은 반가에서 연분이 나 도망 나온 자들이거나, 죄를 짓고 도피 중인 자들이 아닌지 의심해서 하는 질문이었다.


"나리가 도성 안에서 객사허씨는 바람에 시구문까지 가야 할 참이지라."

"저런, 황망하겠구려."


나씨는 자신의 행적을 되돌려 이야기했다.


"북촌 황대감 댁으로 가는 길이올씨."

"살펴 가시우."


나졸은 다시 초롱을 걸고 문을 닫고 초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길 위에는 한 줄로 늘어선 초가들이 보였다. 버젓한 문도 없이 열린 사림 한쪽에 파랗고 붉은 초롱이 걸렸고, 어떤 집은 불이 켜졌고, 어떤 집은 꺼진 채 바람에 흔들리며 대롱거렸다. 불이 켜진 집이 그나마 잠을 청할 자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나씨는 나귀의 고삐를 잡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깜깜한 나루터 너머 평지에는 뾰족한 천막들이 사방으로 십여동이 자리 잡았고, 각 천막 앞에는 일본군의 신식 총이 집총 되어 도열해 놓았다. 역시 총을 어깨에 맨 일본군이 쪽 저쪽 어둠 속을 돌며 사방을 감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사공은 보이지 않았다.


"백목전 행수가 근처에 집이 있습죠. 거처는 그짝으로 허씨고, 약조가 되어 있지라."

"사공의 삯은 어찌하오? 그 사람의 숙소와 끼니는 또 어쩌고요."

"함께 가든지, 글찮으면 여그 주막을 알아봐야겠습죠."


주막이 있는 저쪽 언덕 아래에서 하얀 그림자가 하나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짤따란 곰방대를 꺼내 벌써 한 모금 몹시 빨았는지 허연 연기가 입가에서 퍼져 나왔다.


"우린 묵을 데가 있소만, 사공은 어쩌케 허려오?"

"나 역시 이 주막거리 어딘가 몸 뉠 데는 있소이다."

"뱃삯을 일러주씨오."

"사람이 서이, 말이 한 필, 짐이 한 보 되니 짐은 빼고 칠 전 오 푼만 주시우."


유씨 부인은 보따리에 손을 넣어 손에 잡히는 만큼의 엽전을 꺼냈다. 여기 든 돈은 조선에서 다 써야 한다. 아메리카로 가서는 모두 쓸모없을 것이라는 것을 유씨부인은 알았다.


"아휴, 이렇게!"


사공은 손사래를 쳤다.


"내 언제 또 예 올지 모를 일이니, 잊지 말아 주시오. 임최수영감..."


유씨 부인은 목이 메었다.


"그리고 유수리에 들러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상한 분이 있으면 돌봐주시오."


사공은 돌아서는 유씨부인 일행의 뒤에 허리를 숙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돌아갈 일이 남았고, 뜻하지 않은 유수리의 불길도 궁금했다. 그리고 밤을 틈타 저렇듯 황망히 떠나가는 저분은 누구인지도 알고 싶었다.


"내일 오전 참에는 배를 대고 있을게요. 나무집이나 실고 내려올 걸 서두르는 바람에 빈배가 왔소이다. 놋꾼들도 구해봐야겠고, 날 밝으면 소일거리가 제법이오. 살펴들 가십시오."


어둠 속을 걸어가는 나귀의 방울소리를 따라 걸었다. 주막거리를 벗어나 안쪽으로 들어가자 넓은 공터 한쪽으로 기와집들이 몰려있는 집채들이 나타났다. 그중 가운데 집 대문에 이르러 나씨가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며 행랑채문이 열리는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대문의 안쪽 문이 젖혀지며 기침소리와 함께 사람 기척이 났다.


"뉘시오?"

"안채에 이를 틈이 없소, 임시종 나으리 댁이지라."


대문이 열리며 행랑아범이 나타나 나귀의 고삐를 건네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모시라는 명을 받자왔습니다."


제법 중문까지 갖춘 양반의 집이었다. 중문의 샛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사랑채에 밝혀놓은 등이 갓 속에서 아롱거렸다.


"이리로."


아범이 끄는 대로 사랑 대청을 돌아 뒤채로 넘어가니 안 쪽에 작은 방이 별도로 하나 있었다.


"아씨가 쓰시던 방입니다요."


아범이 허리춤에서 갑을 하나 꺼내 열고 그 안에서 개비 하나를 꺼내 불을 그었다. 방안이 손바닥 안에서부터 환하게 밝아졌다. 못 보던 물건이었다. 아랫목에 놓인 남포유리를 벗겨내고 심지에 불을 붙이자 방 안이 환해지면서 온기마저 도는듯했다.

유씨부인은 아까부터 칭얼대던 천택을 깔려있던 요 위에 뉘었다. 이불을 덮어주고 나씨를 돌아보았다.


"애쓰셨습니다. 고단하실텐데 쉬시지요."


유씨부인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씨나 아범이 놀라 연신 굽신대며 방에서 물러나 마루 아래에 섰다.


"편히 쉬시고 날이 밝거든 다시 오겠습니다."


자신을 수행했던 나씨가 행랑으로 내려가자 아늑하고 고요한 방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수틀이 구석에 세워져 있고, 작은 좌안이 그 옆에 나란히 보였다. 벽에는 장옷이 걸렸고, 사방탁자가 하나 옷장이 하나 그리고 이불가지를 넣을 수 있는 작은 벽장문이 하얗게 도배되어 정갈했다. 때탄 곳은 오로지 맨질거리는 자수틀과 좌안의 상판뿐이었다. 방주인의 품성을 알 수 있었다.

내일은 기차를 타야 하고 제물포로 찾아가야 한다. 거기서 현해환이라는 배를 물색해야 할 것이다. 유씨부인은 가물거리는 정신을 붙잡고 내일의 동선을 떠올렸다. 보따리에서 옷가지를 꺼내 환복할 틈도 없이 천택을 안고 까무룩히 잠이 들었다. 3일간의 장례, 어제부터 한숨도 자지 못 하고 선산에 묻히는 영감을 보았다.

쉰이 넘어가기전에 후사를 보아야한다고 문중이 권고했다. 딸자식들만 줄줄이 나았으니 임최수 자신이 조상앞에 면목이 서지 않았다. 사방으로 씨를 볼 처자를 수소문했다. 갑오년에 충청도에서 난을 피한 세력들이 강건너 남종리에 터를 잡았던 유씨가에서 사람을 보냈다. 용케 동학 접주에게 연결이 되었고, 빈천을 따지지 않는 동학교주의 유지대로 임씨 가문도 그러하였다. 유씨가에서도 딸자식이라도 살려내려면 집에서 먼 곳으로 보내야했다. 그러던 게 고작 강건너였다. 타지에서 보낼 데라고는 또 다른 타지였겠지만, 가차이 두고 보고싶은 부모의 마음이 앞섰음이었다.

다행히 아들을 낳았고, 천택이라 이름지은 자식이 돌을 맞았던 해, 사위는 빠르게 정치에 휘말려 그 중심에 섰다. 황제가 그 인품을 알아보았다는 두터운 신임 덕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었다. 동학년의 불길은 왜인들에 의해 조여 오고, 조정은 황후를 잃었다. 황제는 여기 저기 자리를 잡지 못하고 거처를 옮겼다. 정세의 위태로움은 일본의 득세에 있었다. 정확하고 치밀하게 일본은 반대 세력의 목을 치며 들어왔다.

그렇게 탄압받은 접주들이 사방으로 달아났다. 그것은 마치 잡히면 죽는다는 다급한 마음의 발로였다. 유씨 부인의 집안도 그렇게 보은에서 밀리고 밀려 땅길로 물길로 남한강과 북한강의 만나는 이곳 남종까지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기침하셨사옵니까?"


문창호가 부윰하게 빛이 들고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일어나 앉아 칭얼대는 천택에게 젖을 물린 유씨 부인은 급히 옷매무새를 여몄다. 갑자기 젖을 뺏긴 천택이 바둥대며 울음을 터트리릴 듯했다. 얼른 다시 안고 흔들었다.


"무슨 일인가요?"

"안방마님 문안이옵니다."


행수의 부인이 손님의 안부차 방문앞에 온 것이었다. 유씨부인은 천택을 안고 문을 열었다. 정갈하고 강단있는 얼굴이 마당 가운데 서 있었고 좌우로 나씨와 간밤의 아범이 대동해 있었다. 유씨부인은 마루로 나서며 머리를 숙였다.


"안으로 드시지요."


행수의 부인은 고무신을 벗고 마루로 올라 방으로 들어섰다. 천택을 뉘었던 요만 아랫목 쪽에 덩그러니 있는 잠자리가 이미 정돈된 방이었다.


"누추한 방입니다. 딸자식이 출가전에 쓰던 방이라 그나마 군불을 때고 기다렸습니다."

"황송하옵니다.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말씀을 편히 하시지요. 한낫 장사치의 아낙인 걸요."

"사람이 귀천이 있나요? 사람이 하늘이고 하늘이 사람인 걸요."


생전에 시종어른을 먼발치에서 뵌적이 있었다고 했다. 장안의 포복을 대는 행수로 여기 저기 요충지에 객사를 가지고 있었다. 객사를 통해 사람을 모으고 소식을 전했다. 전국으로 나가는 통문도 이런 물길을 통해 나갔다. 노량진은 삼남은 물론이고 강북, 강원까지 이어지는 한양의 천안삼거리였다.


"화차라는 것이 생겼다지요?"

"예, 바로 요 위에 역사가 있고 거기서 표를 끊어 타면 인천 우각리라는 곳에 갈 수 있습니다. 그걸 타시게요?"

"예, 그렇습니다. 아무 때나 탈 수 있는 차인가요?"

"오전에 두 참, 오후에 두 참 나가는 시간이 있습지요. 지금 바로 나갈 시간이 되었답니다. 근방에 그 울려 퍼지는 소리가 우렁차서 아침잠이 있는 사람들은 잠을 못잘 지경이니까요."

"그리고 또 언제가 나갈 참인가요?"

"진시가 될 것입니다. 10시지요."


정갈한 아침상이 올라왔다. 웅어조림을 가운데 두고, 전복초, 명란젓, 동그랗게 말린 보쌈 김치가 찬으로 얼랐고, 장국 옆에 흰쌀밥이 윤이 나며 반들거렸다. 극진한 상이었다. 겸상을 하자는 유씨부인의 제안에 마지 못해 작은 소반에 밥과 국을 따로 떠왔다. 그걸 올린 상 옆에 두고 두 사람은 밥술을 뜨기 시작했다.


"을미년이 되면 나라가 결단이 날게랍니다."

"영감께서 그렇게 앞서 가신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 일겝니다."

"우리도 애국단을 만들어야지요. 아녀자라고 솥뚜껑만 들었다 놨다 할 시국이 아닌 줄 압니다."


강씨라는 행수의 아내는 40이 넘어 보였지만 피부가 매끈하고 얼굴에 살 한점 여유가 없는 강마른 체질이었다. 전국의 장사치를 관리하는 행수의 부인 답게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 밝았다. 반면에 유씨부인은 임최수의 집에 시집이라고 와서 아들을 낳을 때까지 바깥 출입을 금했고, 천택을 낳고 나서는 더더욱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물정에 어두웠다. 다만 지아비가 죽은 것이 하늘이 무너진 것같은 고통으로 다가왔고, 앞으로 자식을 데리고 살 길이 막막하여 사방이 깜깜해지며 수렁에 빠진 듯해서 헤어나지 못할 슬픔에 빠져 있었다. 다만 시어른이 시킨 일과, 그리고 임최수 생전에 자신에게 당부했던 일을 막힘 없이 행할 뿐이었다.

그렇게 저렇게 두 사람은 상호 안부를 묻고 작별을 고했다. 강씨의 가솔들이 화차가 있는 노량진 역 마당에 몰려 서서 유씨 부인을 환송했다. 역 주변은 표를 파는 매표소와 그에 달린 대합실이 한 채 양철지붕에 널판을 가로대어 집채를 만든 양식풍의 건물이었다. 볼만한 풍경은 기차의 좌우로 늘어선 전송하는 사람들이었다.

기차가 꽤액하는 고함을 질러대자, 사람들은 늘 그런다는 듯 놀라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검은 연기가 지붕의 굴뚝을 통해 시커멓게 뿜어져 나왔다. 차부가 창으로 얼굴을 내밀며 소리쳤다.


"슈파츠!(출발!)"

"요시!(좋아!)"

"오라이!(all right!)"


일인 기관사의 신호에 따라 역무원이 깃발을 들고 나와 붉은 색과 초록색을 번갈아 흔들어 대며 길게 호각을 불어댔다. 배웅하는 사람들이 기차로부터 물러서기를 기다렸고,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이 미처 기차에서 멀어지지 않고 있는 모습에 제복을 입은 역무원은 사정없이 급박하고 불규칙한 호각을 볼어제꼈다.

녹색기가 올라가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커먼 연기가 차창밖으로 흘러지날때마다 검은 그을음이 얼굴에 와닿고 흰옷입은 사람들의 무명을 검게 흑칠한다는 걸 경험한 사람들이 빠르게 창문을 닫았다.

차간 안에는 서양식 옷차림으에 둥근 모자를 머리모양에 맞게 쓴 여자들도 눈에 뜨였고, 모두 간결하고 말끔한 양복을 빼입은 신사들로 가득했다. 개중에는 검은 연미족 차림에 영국 신사같은 높은 모자를 쓰고 콧수염을 양옆으로 길게 기른 어른도 보였다. 나씨가 일등석이라며 끊어준 기차칸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3등칸으로 넘어갔다. 유씨부인은 바깥 세상은 아직 신분에 따라 자리를 나눠놓고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친으로부터 귀아프게 들었던 말, 사람에 귀천은 없는 것이니라,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다 똑같은 생명으로 낸 것이지 인간세상이 그러한 것처럼 귀천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니라, 그렇게 세상과 생각은 반대였다.


"이 화차가 우각현에 간다지요?"


유씨부인은 앞에 앉은 양식 복장을 한 여자에게 물었다.


"그렇지요. 우각현을 지나 제물포가 종점이긴 하지만요."

"우각현 다음에도 역이 있습니까? 마지막 종점이 아니고요?"

"그래요, 그 너머에 역이 하나 더 생겨서 지금은 그게 종점이 되었죠."

"그럼 제물포 포구로 가자면 어디서 내려야?"

"제물포에서 내려서 그 바로 앞바다가 제물포에요."


제물포역이 생긴 지가 수년차라는 말이었다. 그나마 한 시름 덜은 듯했다. 우각현에서 내려 제물포를 또 찾아가야한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다행히 역 앞바다가 포구라고 하니 일이 훨씬 수월해진 셈이었다.

기차는 살곶이를 지나자 넒은 들판이 펼쳐졌다. 오류동에 정거한 기차는 화통을 식힐 물을 채웠다. 그리고 소사를 거쳐 부평에 이르렀고, 그 때마다 사람들은 내렸고 내린 만큼 더 올라 탔다. 염전이 평야에 펼쳐지면서 바다가 가까워 온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았다. 축현역이 우각현이었다. 여기서 한 정거장 더가면 목적지 제물포였다.

두 시간이 채 못 되어 기차는 제물포역에 도착했다. 나씨가 화물칸에 실은 나귀를 찾아 유씨부인이 내리는 일등칸 앞으로 서둘러 옮겨왔다. 길게 줄을 서서 개찰구에 다시 표를 주었고 불용처리한 기차표를 돌려받은 승객들이 역사 밖으로 꾸역꾸역 밀려나갔다. 사방이 집과 사람들로 넘쳐났던 노량진과는 달리 제물포역에는 마중 나온 사람들과 손님을 맞이하러나간 객사의 사환 아이들로 붐볐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오?"


유씨부인은 난감했다. 가라고 한 제물포에는 당도했지만 이제부터 배를 찾아야 하고 승선권을 주어서 그 배를 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아메리카라는 곳에 당도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국 만리 타국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밀려왔다.


"팔도 어델가도 행수들의 객사가 있지라."


나씨는 사발 통문을 돌릴 때, 제물포 박경안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리고 인근 행수들의 이름, 서명식, 김근동, 곽한상, 명순길 이런 이름들이었다. 그 첫번째 앞에 써있던 이름이 제물포 박경안이었다.


뒤에서 연거푸 일인들의 고함이 들렸다.


"깃뿌, 깃뿌!(切符!)"

"나니, 고레 나니?(이게 뭔가?)"


그리고 줄을 세우는 '나란데, 나란데' 하는 소리가 쉼없이 들렸고, 날카로운 그 소리들 아래로 조선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침울하게 아래로 깔렸다. 나귀에 올라탄 유씨 부인은 아들을 보듬었다.


"여기선 장옷 쓰개를 안 하셔도 될 터인디. 청인 일인들이 많아 소문날 일도, 흉볼 사람도 없지라. 말도 못알아 묵는 서양인들도 떼로 몰려 다니니 신경쓸 일도 없을 것이고."


지겟꾼 하나가 보따리를 지겠다고 다가왔다.


"뭐 짐될 거 져 드리겠수다."


하며, 행색을 살핀다. 상투를 대충 올려 묶은 맨 머리를 꼬깃한 무명천으로 둘러맸다. 망건도 없는 무지렁이였다. 허리춤에서 행색에 걸맞지 않게 청라 담배 쌈지가 덜렁거렸다.


"여기 박경안이라고, 포목 행수어른 객사를 찾아가네만!"

"왜, 묵을 데를 찾소? 보아하니 마님 모신 게 썩 내켜가는 길 같진 않게 보이오만!"


지겟꾼의 말투가 짧아졌다.


"이놈, 어디다 대고 오만이야 오만이!"


나씨가 군관답게 호통을 쳤다. 지겟꾼은 나귀를 한바퀴 휘 돌아보며 나귀 발밑으로 자빠지는 시늉을 했다. 돌부리에 걸렸음이라.


"에쿠, 이놈의 돌막! 저 쪽으로 가보슈, 그 쪽이 청국조계 쪽이우. 포목 객사는 이 언덕길을 휘돌아 나가면 왜인들 조계가 나올 것이오. 그 계단을 타고 오르시우. 커다란 양식 건물이 있는 길을 따라 산길을 가시우. 그러면 산밑에 포목전 집채 하나 보일거우다. 그 집이오."


가는 길은 자세히 알려주었다. 나씨는 짚세기 뒤축을 너덜거리며 총총히 사라지는 지겟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에끼놈, 하는 소리와 함께 흙바닥에 침을 퇙하고 뱉어주었다.

나씨가 다시 잡은 견마, 나귀를 타고 앉은 유씨부인과 천택, 이 셋이 보여주는 행색은 이국의 일풍경인듯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청국조계의 붉고 푸른 패루를 지나 골목 안길을 돌아 일본인들의 조계지가 있는 곳으로 넘어갔고, 그러는 사이 산위에서 둥근 모자를 쓰고 양식 복장을 한 서양인들이 삼삼오오 아래로 내려오며 일행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에도 색다른 풍경이었는지 나귀행차가 가까이 다가오자 서로들 모자를 벗어 목례를 해왔다. 알 수 없는 서양말들이 무성했고, 일부는 유씨부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인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웃었다.

유씨부인은 아무래도 장옷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쓰개를 다시 목뒤로부터 뒤집어 썼다. 그 때였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첩지가 없어졌습니다."

"뭐라고라? 무신 첩지가?"

"여태 지니고 있던 허리춤의 첩지가 사라졌단 말이오."


유씨 부인는 허둥대며 한 손으로 천택을 안고 또 한 손으로 허리 여기 저기를 뒤적거렸지만, 이미 몸에서 떨어져 나간 물건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