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녀

by 별사탕

양주골 살던 강실분은 조상들이 심마니로 대를 이어오던 집안의 자손으로, 조부가 어려서부터 착실히 궁내의원이었던 이재 황선생의 집에 기숙하며 한양과 양주를 오가며 약재 심부름을 했다. 머리가 명민하고 사람이 진득하여 이재 선생댁에 눌러앉게 되었다. 이재 선생이 집필한 각종 약방을 읽었고, 바로 옆에서 약방문을 처방하여 치료하는 것을 견학하였다. 격물로써 치지에 도달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되짚어 알게 된 것이었다. 이후로 자신의 집안에서 대대로 운영하던 약초상의 약재를 선생의 약방에 공급하는 일을 전담한 것은 그가 이재 선생의 수련의 중 남과 달리 신뢰받을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는 것을 말했다.

조부가 약관의 나이가 되어 세거지 별비면으로 돌아와 일가를 이루었다. 그것이 양주골 별비면 약방의 시작이었다. 그 자손, 그 자손의 자손이 대대로 약방을 꾸려왔고, 이재 선생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이후부터 어의의 후계라는 소문은 인근 고을로 퍼져 일대 양반 세가들 가운데서 명망을 얻고 재산을 축적하는 데도 한 몫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부 강득실은 말년에 마재말로 돌아온 다산을 알현하고 종두를 배워 인근 마을에 시술함으로써 그 명성이 더욱 자자해졌다. 더구나 스승 이재 선생이나, 광주의 명의로 세거했던 반남 박씨 가문의 의술 시행에 감화받은 조부는 가난한 자들에게서 일절 보수를 받지 않았으므로, 그의 약방 마당에는 늘 아픈 사람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그런 집에서 강씨는 자랐다. 그 아버지가 동학년 고부에 내려가 고부 관곡창고를 격파하고 황토현으로 달려가 농민군 사상자와 질환 부상자를 돌보다가 아수라장이 된 우금치에서 일본군의 신식총에 맞아 절명하고 말았다. 동학은 그 길로 산천을 따라 숨어 들어가 버렸고, 관군과 세작의 눈을 피해 떠돌며 포교했던 대접주 또한 원주 송골에서 체포되어 교수당한 지 6년이 지나고 있었다. 강씨의 조상들은 좁게는 세거지 양주고을에서, 넓게는 낮은 땅의 백성들에게 헌신하였다.

물상 객주를 하던 천씨 집안은 조선 팔도에 발길 닿지 않는 곳이 없는 유통 상인이었다. 지방의 산물들을 여기서 저기로 옮겨주는 일이었다. 그러자면 운송 수단과 사람이 필요했다. 나귀를 가진 사람, 배를 가진 사람, 그리고 튼튼한 다리를 가진 사람을 끌어모아, 길을 텄다. 가장 빨리 거기에 갈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일의 관건이었다. 물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이동시켜 주고, 교환에서 오는 이문을 남겼고, 서로에게 신의를 얻었다. 그러면서 양주의 강씨 집안 사람들에게도 신임을 얻어 약재를 심마니들로부터 사들이는 지방 약재 도부를 만들어 팔도에 흩어진 약재를 신속하게 약방들끼리 유통시키는 일을 시작했다. 심마니들과 접촉한다거나 약재상과 거래를 터는 일에 조부 강득실의 도움이 컸다. 거기에 전문적인 약재 거간꾼이 끼어들기도 했다. 그들이 하나둘 모여 연 시장이 전국의 약령시로 커지게 되었다.

천대운은 나이 열여덟이 되어 네 살 많은 강실분의 집으로 장가들었다. 조부 때부터 쌓아온 신망의 결과였다. 그런 가운데 천대운은 선조들이 이루어 놓은 권세를 믿고 시장통 왈짜들과 어울려 호기를 부리며 성장했다. 그가 돌아다닌 장터는 마포 양주 광주 군산과 같이 객주선을 타면 한 나절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점들이었다. 하나같이 커다란 장터였다. 사람들 속에서, 특히 장터의 사람들 속에서 잔 뼈가 굵은 천대운은 건달패거리에서부터 검계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성명을 할 정도로 행실이 좋지 못했다. 부모를 잘 만나 호사를 누려 파락호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불초자는 족히 되고도 남았다.

나루는 사람들을 불러 모을 때도 유효했고, 들어가 숨을 때도 효과적이었다. 동학년에는 관군에 붙어 동학군을 진압하는 데도 한몫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물가로 몸을 사려 객주선을 타고 도주했고, 보부 상길을 따라 산골을 찾아들어가 봇짐막에서도 눈을 붙였다. 천대운 역시 관의 동원령이 내리자 그들을 이끌고 관군에 붙었다. 관에서 보부상단을 때려잡으면 전국의 유통망이 하루아침에 무용지물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에 물상 객주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장가를 들고나서 천대운은 한량기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물길을 따라 객주를 돌아다니다 보면 나가 잘 일이 다반사였고, 집으로 돌아올 일은 웬만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생기지 않았다. 나이 사십이 다 되어 가도 자식이 없는 이유가 그런 데 있었다. 전국 물길마다 배를 대는 나루에는 그가 잠을 자고 돌아 나올 수 있는 기방이나 첩의 집을 만들어 두었다. 불같은 성격, 호방한 기질은 거침없이 세상을 향해 나갔다. 그런 중에 동학이 일어났던 10년 전, 그의 나이 스물여덟 때 보부상을 이끌고 관군을 도운 일은 두고두고 후회막급한 처신이었다. 하지만 객주 상단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자책반 수긍반이 되어 자충수에 빠진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처음부터 천대운이 관군의 편에 섰던 것은 아니었다. 동학군의 보급을 담당하기에 보부상의 다리만한 것이 없었다. 물자와 양식을 져나르며, 여기저기서 들었던 이야기들은 관군이나 동학군에게 모두 요긴한 정보였다. 농민군의 편에서 그들의 편의를 보아주던 일들이 양호초토사가 개입하면서 상군이라는 말이 돌았고, 팔도 장터에서 걷어들이면 보부상단의 운영금을 농민군에 들어간 상인들이 납세를 거부함으로써 서로 난감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싸움의 현장에서 각종 불상사가 터졌다. 정보가 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농민군의 할거지가 관군에게 노출되었고, 전투에서 패퇴한 농민군 잔병들이 숨어 들어간 마을의 집집을 쑤셔대며 농민군을 색출하고 고문에 앞장선 것이 보부들이었다. 민심이 돌기 시작하면서 상단의 반수들이 도반수에게 모였고, 그들이 조정을 통해 초토사 홍계훈을 만났고, 이후 상단은 관군에게 밀착하며 밀지를 패랭이 속에 감추고 팔도를 넘나들었다.

그렇게 동학년에 밖으로 돌아치던 차에 천객주의 눈에 길녀가 들어왔다. 길녀는 천 객주의 아낙 강씨가 양주에서부터 데리고 온 몸종이었다. 대대로 첩을 두지 않았던 강씨의 선조들은 하인 관리에서도 깨끗했다. 그들과 피를 섞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길녀의 피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리에서 대대로 살아온 양반 몰락가의 후손으로 조실 부모하여 의지 가지 없던 아이였다. 마을을 돌보던 강의원 집안에서 어려서부터 거두어 키운 아이였다.


"아씨들, 침소에 드실 때이옵니다."


길녀는 강씨의 여식들 잠자리를 보아주고 돌아서 안방마님께 문안 올렸다. 고단한 하루였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며 요를 깔고 자리에 누웠다. 사랑채에는 아직 호롱의 불이 밝아 있었다. 안에 들어갔던 판수가 아직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유씨부인의 말대로 광에 가두어 놓았던 지겟꾼에게 저녁을 먹이고, 행랑채에 방한 칸을 내어주고 자게 했다. 낮부터 들락거린 그 많던 사람들, 밤이 되자 횃불을 밝혔던 마당에서 문초했던 유씨 부인의 똑바르고 자애로왔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잔상으로 떠올랐다. 바른 눈빛과 어딘지 모를 행동거지의 기품이 느껴졌던 무게감이었다.

사랑의 문이 열리고 판수의 발이 마루를 밟을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댓돌에 내려 미투리를 꿰신고 마당을 질러 나가는 인기척이 마당을 가로질렀다. 문 닫히는 소리가 탁하고 들렸다. 회랑 마루를 따라 남폿불불이 움직였다.

길녀는 치마저고리를 벗어 횃대에 걸고 반닫이 위의 두툼한 솜이불을 내려 폈다. 가슴을 조였던 끈을 풀었다. 솜버선으로 갈아 신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사지에 힘을 다해 몸을 뻗었다가 힘을 풀었다. 온몸 여기저기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시원한 것 같기도 했다. 아직 몸이 완전히 돌아온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문밖이 환해지며 소리가 들렸다.


"나다!"


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자물쇠를 고리에서 빼냈다. 소리 없이 문이 열리며 천대운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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