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밍

한국독립영회의 아쉬움

by 별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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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극영화

제작사 오카피필름

감독 이승재

출연 김철윤(성현 역) 박서윤(미정 역) 김예지(민영 역) 손준영(감독 역)

등급 15세이상관람가

상영시간 101분

개봉 2026-02-04


영화 길(La Strada)에서 젤소미나가 부르는 노래는 구전되어 다른 마을의 빨래하는 아낙의 노래로 불려 진다. 음율만 있는 허밍이다. 1957년 10월 극장에서 상영된지 70년이 되어가지만, 그 노래는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젤소미나의 애절한 감정으로 기억된다.


이승재의 '허밍'에는 세 사람의 허밍이 나온다. 불의의 사고로 죽은 미정의 허밍, 미정의 대사를 모방하려는 민영의 허밍, 그리고 미정을 다시 찾고 싶은 성현의 허밍이다.

허밍은 감정에 따라 읊어지는 음률이다. 가장 단순하게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인 셈이다. 한 사람의 감정이 허밍이라는 신호가 되어 발신된다. 발신된 신호는 주파수를 타고 수신자에게 날아간다. 수신자의 주파수와 일치하면 발신과 수신은 완성된다. 그러나, 발신은 했지만 수신이 늦어지면서 비극이 발생한다. 성격모순에서 오는 비극이다.

특정한 감정을 발신한 미정의 신호를 시간차를 두고 성현이 수신하기 시작하면서 성현의 내면적 갈등이 표출된다. 하지만 미정은 죽고 없다. 이렇게 모든 비극은 이전의 시간으로 회복 불가한 상황이 전개되면서 발생한다.

'길'에서 젤소미나를 더 불쌍하게 만들고 관객으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고 울게 만드는 이유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녀가 남긴 '허밍'이 젤소미나의 영혼처럼 관객의 기억 속을 떠돌기 때문이다. 노랫가락, 허밍이 기억의 잔영을 떠오르게 하는 매개의 기능을 한다. 그래서 티 없이 맑은 젤소미나의 얼굴은 더욱 애절해진다.


미정의 허밍-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촬영 현장에 들어온, 아마도 미정은 재능 때문이 아니라 집안의 형편 때문에 배우의 길로 들어선 듯하다. 수해가 나서 반지하라는 주거환경 속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영화판에서 사라진 인물이다. 그런 그녀의 사정을 음향 기사인 성현이 우연히 마이크를 통해 엿듣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내는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담은 허밍을 듣게 된다.

민영의 허밍-민영은 사운드가 빠진 영화 원본을 보고 후시녹음을 위해 들어온 배우다. 그녀는 미정의 허밍을 모방하여 소리를 입혀야 한다. 악보 없이 기억에만 남아 있는, 소리의 원작자가 있고 그 소리를 상황 판단만으로 유추 해석해내야 한다. 그 과정에 녹음실 장비의 기계적 결함까지 발생한다.

성현의 허밍-유일하게 미정의 허밍을 기억하고 있는 자이다. 민영을 통해 재현된 허밍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자신이 헤드폰을 쓰고 기억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허밍을 해본다. 미정의 허밍에 최대한 가깝게 가보려고 하는 애절함이 그의 허밍에 스민다. 원본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려는 애절함이 묻어난다.

미정이 있었던 공간 지하와 성현이 있는, 곧 철거될 이곳 스튜디오의 상황은 다르지 않다. 도시로부터 소외된 공간에 사는 어쩌면 주류로부터 소외된 사람이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 동질감은 도시에 감춰진 긴 연대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 나가야 한다는 간절함이 이 영화의 바탕에 깔린다. 그것은 미정과 성현이 주고받는 수신-발신이 실패한 관계를 넘어서서 공간의 분리와 확장이 가져오는 사회구성의 영역으로까지 나아간다.

자,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과연 영화적 표현이 뜻한 바대로 잘 되었을까? 마지막 성현의 허밍이 관객의 가슴 속을 파고들었을까? 젤소미나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가요제에 참가한 무명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청중이 따라 부를 만한 허밍을 만들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독립영화는 더욱더 기초를 다져야 한다.

한번 만든 것을 자꾸 고치는 이유는 스스로 곱씹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되고, 더 나은 표현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살릴 것인가, 살려낸 것들이 바라 보아야 할 방향은 어느 쪽인가, 이야기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몸통과 팔다리를 잘 구분해야 하지 않았을까, 조명과 카메라 각은? 배우의 동선과 미장센은? 한번 만든 영화를 고치고 다듬어 가는 생각 끝에 결국 다시 촬영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아,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이지만 여러 곳곳이 한계에 부딪힌 느낌, 이런 것들이 한국독립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무언가를 쉬지 않고 계속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로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그 역량들을 정제해서 치고 나갈 때다. 철학적 고민을 거친 영화는 표현을 통해 완성된다. 혹은 좋은 표현은 철학적 사고를 유발한다.


차승원과 유지태를 섞어 놓은 감독은, 그래서 환영같은 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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