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계절

out of season

by 별사탕

장르 멜로, 로맨스

감독 스테판 브리제

출연 기욤 카네 (마티유 역) 알바 로르와커 (알리스 역)

시간 116분

상영등급 15세 이상관람가

개봉 2026/01/28



'있다, 없다'를 두고 분분히 의견이 갈리는 것에 '신'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이 만들어 내는 '사랑'도 거기에 속한다. 하나는 인간 밖에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고, 하나는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어떤 은유나 상징을 배제한, 그저 외관상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리조트 영상과 오프닝 크레디트를 번갈아 편집하여 단절감을 준다.(화면을 사운드로 확연히 구분한다.) 끊어졌던 기억처럼 영화는 이어지고, 삶 또한 단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단속적으로 이어진다.' 말처럼 삶이 커다란 모순이라는 것을.


마티유와 알리스

마티유는 유명 영화배우다. 그는 연극에 도전하지만, 스스로 자신감을 잃고 거액의 위약금까지 물며 연극무대를 포기한다. 그로 인해 자신감을 잃었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의심하면서 자존감까지 흔들리는 위기의 상황에 봉착한다. 그래서 찾은 것이 선상 리조트, 휴양과 휴식 프로그램이 마련된, 은퇴자들이 주로 찾는 럭셔리한 휴양시설이다.

무료한 중에 로비에서 전달받은 쪽지 속의 전화번호,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알리스의 번호, 알리스는 그의 첫사랑이었다. 15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마티유는 알리스로부터 사라졌다. 마티유가 닥친 지금의 현실은 15년 전 알리스와 헤어진 상황과 닮아 있다. 연극으로부터 도망친 것과 알리스로부터 도망친 것.


두 번의 사랑, 두 번의 헤어짐

'세상엔 너 같은 사람과 나 같은 사람 두 부류가 있어.' 알리스가 마티유에게 자신의 내면을 고백하는 말이다. 가슴속에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하고 사는 사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알리스다. 반면에 자신의 감정대로 표현하며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 마티유다.

알리스는 피아노강사가 되었고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의사 남편과 딸을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마티유는 자신의 내면을 역할이라는 수단을 통해 표현하고 사는 배우가 되었다.

알리스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은 그녀의 어머니다. 78세에 자신이 레즈비언이었다는 걸 커밍아웃하고 황혼에 사랑하는 파트너를 만난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를 통해 알리스는 자신의 사랑을 확신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 사랑을 찾는 것이라는 생의 본질을 깨닫는다. 그 증거가 알리스에게는 어머니인 것. 그녀에게 사랑이 삶의 본질이라는 걸 깨닫는다.

가졌다가 버리고 떠나간 마티유를 비난하는 것은 남성의 생물학적 특성일 을 비난하는 것과 같다. 마티유(남성)는 자신의 생물학적 특성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영화의 흐름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그것은 마치 '남자라서 미안하다'로 들리기도 한다.

알리스의 삶 내부로 스며들어가며 마티유와 예전의 감정을 교류하게 되고 다시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결말은 둘 다 이미 알고 있다, 각자의 현실로부터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번엔 '완전한 이별'을 원한다.


회자정리의 결말, 사랑

어떤 하나의 감정이 한쪽의 성에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혹은 두 쪽에 다 있지만 그 표현방식이 다르다면. 그것이 때로는 이쪽에선 사랑이라고 부르고 저쪽에선 소유나 정복이라고 부르고 있다면, 그 둘은 공존할 수 있을까? 야만의 감정이 정복과 소유라면, 인류의 감정을 사랑과 박애라고 일단 부르자. 이것이 남자와 여자가 영원히 조화로울 수 없는 절대 조건이다.

'철 지난 사랑'(out of season)은 그래서 깨달음을 준다. '제 철 사랑'(in season)이 진짜였다는 걸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었건 사랑한 두 사람이 헤어지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여자의 가슴에 남은 사랑은 아픔이겠지만 남자의 가슴엔 그리움이다. 아픔은 다시 겪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그리움은 다시 보고 싶은 감정이다. 그래서 알리사는 단호하게 마티유에게 '완전한 이별'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쪽은 이미 끝났고, 한쪽은 이제 시작하는 것. 인생의 모든 모순은 여기서 시작된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