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멘탈 밸류

가족이라는 유산

by 별사탕

장르 드라마

국가 노르웨이

개봉 2026-02-18

감독 요아킴 트리에

출연 레나테 레인스베(노라) 스텔란 스카스가드(구스타프) 잉가 입스도테 릴리오스(아그네스) 레이첼 켐프(엘 패닝)

개봉 2026-02-18

시간 135분



가족의 물리적 외형은 ‘집(house)’이다. 시간적 연대기와 공간으로써의 집. 결국 시간과 공간의 교직으로 가족의 좌표가 그려지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범한 서사다.


내레이터(노라)는 자신의 고조부가 애초 건축한 집에서 살고 있다. 이 집에서는 그간 많은 일들이 발생했고 그 사건들이 집을 가득 채운 모습이 생생한 집(가족)의 모습이라고 상정한다. 고조부의 손녀(카린)가 닥친 시대는 2차 세계대전 시절, 그녀는 나치에 저항한 이유로 감옥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전쟁 후 그 후유증으로 자살한다. 노라의 할머니였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전설 같은 시절이 지나고 노라에게 현실로 다가온 '자신과 부모'의 이야기는, 연대기가 지배하던 시간의 연결고리를 끊어 버렸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두 자매는 버려진 신세가 되어 버린 것. 집이라는 공간에 가득 찼던 이야기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집을 버렸고 가족을 버렸던 빈 공백기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랜만에 사람들이 집안에 가득 찬다. 거기에는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도 와 있었다. 묵었던 아버지와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 돌입한 것. 동시에 텅 비었던 공백을 메꿔나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흔한 이야기다. 가족 간의 갈등이 첨예화될 것이고, 그것의 난맥상을 보일 것이며, 결국 가족의 모습이 어떤 것으로 남든 영화는 결말을 보여 줄 것이다. 그 과정으로 사용되는, 갈등을 풀어나갈 기술적 도구가 영화제작이라는 장치다. 노라의 아버지, 구스타프가 세계적으로 이름난 영화감독이었던 것이다.


시나리오를 들고 온 아버지에게서 노라는 그가 제작할 영화의 주연을 맡아줄 것을 제안받는다. 노라는 거절하며 본격적으로 아버지와 대립한다. 어린 남매를 버리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세계를 전전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다. 그런 구스타프에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묘한 재능이 있다. 노라가 거절한 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 허리우드 스타 레이첼 켐프를 기용한 것.


시나리오 리딩 작업을 하던 레이첼은 그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자살한 구스타프의 어머니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한 후, 자신의 부적합성을 이유로 배역을 거절한다.


구스타프는 여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스타일의 감독이다. 가정에서의 역할도 그렇다. 딸들과의 대립, 그것은 지금까지 남매에게 없었던 가부장 세력의 등장을 의미한다. 남자 없는 세계에서 살았던 노라에게 남자가 등장한 것이다.


부모 세대의 세습적 유물은 물리적 공간으로써의 ‘집’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살아왔던 가치관의 세계, 물려받을 감정적 세계(sentimental value)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영화는 강변하고 있다. 종교든, 피부색이든, 남녀의 문제든 간에 모두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할 곳이 이 땅 위에서라면, 그것의 최소단위인 ‘집’은 가장 기초적인 조화의 단위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어느 한쪽에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려는 자의 덕성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보여 주는 장면들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산발적으로 퍼져 나간다는 점은 큰 울림을 주기보다 장면에 집착하는 작은 울림을 자아낸다는 점에서 아쉬운 전개로 보인다.

현실와 가상(스크린)이 겹치는 장면, 아버지와 딸들의 유전적 전이를 처리한 이중노출 장면은 현실과 가상 세계의 중첩,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을 중첩시키는 효과를 준다. 그럼으로써 모든 것이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어 강한 현실성을 띠게 만든다. 노라의 무대공포증과 우울증을 극복하는 계기가 가족이며 그 해결 방식이 영화 - 연극무대를 떠나 영화 세트장을 받아들인 데서 온다는 점이 새롭다. 정신은 적절한 그릇에 담길 때 아름답다고 했던가.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