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수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한 줄의 문장으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날의 일을 정혜가 몇 번을 물었지만,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혜가 미리 현지의 사정을 좀 알아봐야겠다고 애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갔을 때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그 일을 감추고 자시고 할 일은 처음부터 없었다.
출강하고 있던 대학들도 성적처리 입력을 마치고, 기말 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학생들과 연락을 주고받던 메신저를 통해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메시지가 하나 떴고, 가끔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무시했다. 그렇게 대꾸하지 않고 있으면 상대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용건을 말하거나, 아니면 이후 잠적해 버리고 소식이 끊기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메시지의 일종이라 생각했다.
"프로필 봤어요, 지역도 근처인 것 같은데, 카페에서 잠깐 볼까요?"
꽤 구체적으로 나에게 접근해 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일단 학생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찔러보기식의 스팸 홍보도 아니었다. 마침 일을 마무리했고, 이제 시간상 자유로웠다. 내일부터 작품 구상을 좀 하면서, 어디 가서 쉬었다 올까 하던 차였다.
"누구신가요?"
나는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상대에게 내키지 않았지만, 호기심은 일었다.
"저도 선생님이 누군지 몰라요."
오늘 이후의 시간이 심심하긴 했지만, 누군지도 모를 사람을 만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중앙동 회관 아시죠? 그 극장 건물 2층에 작은 카페가 있어요. 6시에 봬요."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답신을 하지 않았다. 일어나 창밖을 쳐다봤다. 내가 있는 5층까지 플라타너스 나무가 자랄 대로 자랐고, 비탈을 따라 숲이 우거진 속에서 울어대는 매미 소리로 귀청이 따가웠다. 열린 창문으로 한 줄 바람이 스치듯 들어왔고, 나는 에어컨을 끄고 가방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연구실을 한번 휘 둘러보고, 한 달 동안 몇 번을 나와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를 탔다가 바로 내려버렸다. 차 안에 있던 복사열이 사방에서 끼쳐오며, 열사와 같은 온도가 온몸을 싸안았기 때문이었다. 유난히 따가운 햇살이 차량 지붕에 내려와 부딪쳐 반짝거렸다. 어디 가서 시원한 생맥주나 한 잔 했으면 싶은 태양의 자리 밑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3시 반이었다. 아직 아무도 퇴근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교수라는 직업이 여러모로 편리한 면이 있었다. 사회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온전히 자신이 스스로 관리할 수 있다는 면에서 여유로운 직종이었다. 기업처럼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거나, 공직자처럼 관계에 구속되어 부서 동향을 살필 필요도 없었다. 내 뜻대로, 내 생각이 가치의 기준이고 내 말이 나가야 할 방향이었다.
박사과정 때부터 여러 대학을 전전하며 보따리를 풀었다 묶었다 한 시절이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그래도 모교와 인근대학에 일주일에 전공 하나씩 나간다 하더라도 그만큼 수월했다. 더욱이 연구실을 혼자서 쓸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조만간 연구교수 제도가 정착이 된다면, 그야말로 내게 맞는 천상의 보직일 것 같았다.
엔진소리 위로 차량 안에 틀어놓은 에어컨소리가 요란해졌다. 연식이 좀 됐다 싶게 타고 다녔다. 정혜차를 바꾸면 나도 바꿀 참이었다. 둘 다 1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잠시 복사열을 송풍으로 내보내고 출발할 셈이었다. 가방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잠시 건물 외벽의 그늘로 들어갔다.
"교수님, 어디? 퇴근하세요?"
학생처에 근무하는 성혜가 문을 열고 나오며 친근하게 인사를 했다.
"응, 오늘부터 방학이라..."
선혜가 힐끗 올려다보며, 담배 피우는 내 모습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멀리 보이는 본관 건물을 응시했다.
"저 본관에 일 있어, 올라가요."
그러냐고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그 짧은 순간에 성혜가 보여준 행동양식은 많은 걸 시사한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성혜는 내가 내려오는 것을 사무실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계속 바깥을 보면서 나가야 할 타이밍을 붙들고 있다. 내가 그늘을 찾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성혜도 일어섰다. 그리고, 무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오늘은 방학 첫날이다. 정혜가 집에 없다는 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힐끗 나에게 시선을 던져두는 것, 그 찰나가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특이점이 될 수도 있을 테다. 그냥 잘 들어가라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다는 행선지를 나에게 알려준다. 그건, 일종의 예고와도 같다. 너에게 시간을 맞출 수도 있다는 암시.
쟤를 불러 집으로 데려갈까 생각해 보았다. 이제 쟤도 10살짜리 애가 있다고 생각하니, 유부녀였고, 누군가의 환경 속에 속한 애가 되어 버린 것, 나를 관리하는 주인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큰 격차, 허물없던 시절에 아무 때나 불러 세울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나갔고,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잡했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이 모든 걸 변하게 했다. 무엇보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관계에서 오는 이질성이었다. 그 속에 시간이 개입하고 있었던 것, 서로에게 야자 하던 그 시절의 그들이었다.
손가락으로 불씨를 털어버리고 남아 있는 꼭다리를 현관 입구에 놓인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차로 향했다. 언덕을 내려와 대로에 접어들어 양화대교로 방향을 잡았다. 일산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 양화대교를 넘어갈 수도 있다. 언제나 길은 여러 갈래,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나는 삶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선택, 모든 것은 선택이었다. 문제는 그 선택을 내가 자의로 했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불행의 시초였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매 선택의 순간순간은 내게 주어진 길이었다. 자유의지가 개입된 것이 아니라, 나의 선택이 배제된 유일한 길을 걸어온 느낌이었다. 성적이 가야 할 대학을 선택했고, 학사경고가 군대를 선택했다. 심지어는 임신이 배우자를 선택했다. '나'라는 주체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내 밖에 있는 사건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를 선택해서 이 세상에 난 것도 아니었으므로, 내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요즘 아이들처럼, 꿈을 가지라든가, 꿈은 이루어진다거나, 그런 식의 세대가 아니었다.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대처할 뿐,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었던, 10대와 20대를 그렇게 보냈던 것이다.
합정로터리에서 좌회전하면서 양화대교로 접어들면서, 지금부터 집까지는 30분이었다. 아무도 없을 집이 떠올랐고, 텅 빈 방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태양의 윤곽 없는 열기, 거품이 넘치는 맥주잔이 떠올랐다. 일단 성회에게 전화했다. 청주에 있다고 했다. 태호에게 전화했다.
"야, 나 미국 온 거 몰라?"
자다가 깬, 잠긴 목소리였다. 집으로 가는 방향, 중간에 들를 곳도 없었고, 중간에 누가 사는 것도 아니었다. 방향을 틀어야 했다. 방향을 튼다고 해서 지금 정황으로 봐서 딱히 누구와의 만남이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 갑자기, 만나자는 그 문자가 떠올랐다. 굳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내가 찾아다닐 바에야,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벌써, 골목주차보다는 유료더라도 안전한 주차 라인들이 떠올랐고, 이층에 있다는 그 카페로 올라가는 통로와 동선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