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맘 쑥쌤 Mar 13. 2022

서른아홉, 불안함과 내려놓음의 경계

내 나이, 서른아홉

대학교 때 ‘소울메이트’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소울메이트.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도 어울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니 다양했다. 동아리 활동에 학교 활동에 무엇이든 했고 후회 없이 해보려 노력했다.


처음엔 마음을 다 주었다. 자꾸 주다 보면 그만큼 돌아오겠지 했는데 열심히 주다 보면 알아주겠지 했는데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좋아 만나는 것인지 마음을 채우려 만나는 것인지 참 열심히 살았고 만났다 싶었다. 말 안 해도 알아주는 사람. 그리고 스물 한살쯔음 친구를 잃었다.


이건 언니가 주는 마지막 밥이야. 많이 먹어. 모두가 울컥할걸 알면서도  말은 했고, 그리움이 떠나갈 만큼 울었다. “

누군가는 <서른 아홉> 드라마 스토리가 공감이 안된다고 한다. 나는 스물 한살에 잃었다. 그리고 또 그리고 또,,


나는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는 직업을 선택했다. 그게 내 마음을 치유하는 기분이었고 아버지를 용서하는 길이었다. 20대 초보 선생님 어쩌면 키도 작고 참 어릴것만 같고 아이도 없었던 그 때, 그럼에도 꽤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겪은 것들이 많은 사람들 마음을 알게 해주니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라도 날 위로하려고 노력했다.


나에게 어떻게 그리 많은 것들을 도전하고 열심히 사냐고 묻는다. 죽음이라는 불안을 겪어본 사람은 하루 하루가 소중해진다. 게다가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는 혼자 사는 아버지, 삼남매를 키우느랴 고생해온 엄마가 병원에 갈때마다 덜컥 겁이 난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 이 누군가에겐 바램일 때 나는 전부였다. 내가 몇 배의 속도를 낼 수 밖에 없는 이유,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는 이유가 어쩌면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문득 불안감이 올라올 때, 글을 쓰고 흘려보낸다. 강한 힘듦에는 잠이 보약이고, 복잡할 때는 글이 정답이다. 꾹꾹 누르던 마음을 열고 스르륵 적기 시작한다. 나는 무엇때문에 <서른 아홉> 보고 이렇게 슬프고 마음이 절절해지는걸까?


스물 하나, 스물 아홉 나는 애썼고, 철이 없었고 부족했지만 후회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어느새 서른 아홉, 불안하지만 이해할 수 있고 겁나지만 도전할 수도 있다. 하루 하루가 간절해지는 마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아야할 때.

작가의 이전글 나는 반 워킹맘, 엄마 블로거의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