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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May 20. 2024

신발끈을 질끈 묶고 오늘도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될 줄이야.

금방 얼굴이 벌게지고, 호흡은 가파지며, 언제 그만둘까 뛰는 내내 생각하는 달리기 운동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요즘 나는 글쓰기 연습중인데, 어느 독서 클럽에서 글 쓰는 것은 ‘꾸준함’ 그리고 ‘기나긴 육체노동’이라고 정의한다. 그 예로  30년간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글을 쓴다고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급된다.  그의 유일한 자전적 책,  바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글쓰기와 달리기,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을 남과의 경쟁보다는 내 목표에 어떻게 닿는가가 중요한 사람이며 글쓰기 또한 경쟁이 아닌 나와의 싸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소개한다.  


이런 그가 대학 졸업 후 음식점을 운영하며 ‘남과 어울리는 삶’이 쉽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대신 하루의 1시간 달리며 나만의 침묵의 시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공백을 확보했다. 달리기는 누구와 얘기하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라고 한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인터넷 세상에서 놀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산책하면서 쉼을 누린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찾은 방법은 육체적으로 쉬는 방법 대신 자신과의 타임아웃이었다.


주경야독. 생업과 글쓰기가 함께 하다.

30살 어느 날,  무라카미 하루키는 문득 ‘소설을 써보자’ 생각했다고 한다. 카페 운영하느라 바쁜 날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글을 쓰는 작업은, 물리적으로는 쉽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해방구였을지도 모르겠다. 두 계절 만에 400자 원고지 200장 분량의 작품을 완성했는데, 그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다.

그 이후 3년간 주경야독은 계속되었고 어느 정도 재미있고 새로운 경향의 소설은 쓸 수 있지만, 깊은 사유를 담은 무게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이런 일상으로 어렵다고 판단하고 과감히 가게를 접고 집필에 집중하기로 한다. 어렵게 자리 잡은 가게를 포기하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는 만류했다. 실제로 책으로 버는 돈 보다 가게 수익이 훨씬 좋았다는데 책 속에 그려지는 하루키의 아내는 그런 남편을 적극 지지해 준다.

7년간의 요식업 후 가장 먼저 자신에게 준 조촐한 사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이었다고 한다. 자유에서 오는 해방감도 잠시, ‘고립과 단절’이라는 또 다른 얼굴의 자유를 만나게 되고 이는 ‘양날의 검’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보호하는 동시에 내벽에 끊임없이 상처를 내는 부작용을 경험한다. 하루 종일 글 쓰는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체중이 붇고 체력이 떨어져 글쓰기에 집중하기 어려운 문제에 당도한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하루키는 좀 더 심도 있는 달리기를 선택한다.


‘하루 평균 1시간은 달려야지. 천벌 받지 않으려면’

 33세가 된 하루키의 일성이다.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극한으로 몰아감으로써 내면의 고립과 단절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는 것으로 그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살아있는 몸을 통해, 손에 닿을 수 있는 재료를 통해야만, 사물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리고 품이 들더라도, 신체에 현실적인 짐, 근육에 신음소리를 높여 이해도의 눈금을 올리고 가까스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과정이 달리기라고 말한다.


달리는 배경으로 하와이 카우아이 섬, 도쿄, 보스턴, 일본 중소도시, 그리스 아테네 등이 나온다. 그 풍광과 온도,  자신의 경험담이 섞여 ‘여행기’ 같기도 하고 ‘수양일기’ 같기도 하다.

뛰는 작가라는 특별한 타이틀을 얻으면서 잡지에 실리기도 한다. 촬영차 그리스 아테네에서 뛰었던 일화는 그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같이 뛰는 기분이다. 대도시의 혼잡하고 다소 거친 운전자들. 도로 위에는 로드킬 짐승들이 여럿 보인다. 더운 날씨에 땀이 나고 그 땀마저 증기 되어 몸에 소금처럼 들러붙는다. 결국에는 피부에 수포가 날 정도의 고통이지만 결국은 잡지사와 약속한 42킬로 완주하는 하루키는 마라토너라기보다는 고독한 수행자와 같다.


‘지불해야 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 밖에는 손에 넣을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철학은 이렇다. 인생에는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우선순위가 필요하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불특정 다수인 독자를 목표로 설정한다.  가게 운영을 하든 글을 쓰든 사람들을 다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교훈을 말한다. 

단 열 명 중 ‘한 사람’에게 철저하게 마음에 들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명확한 자세와 철학을 가지고 강한 인내심을 유지하면서 버티면 그 뜻에 동의하는 이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강한 인내심으로 버티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면 굉장히 단조롭고 반복적인 경우가 많다. 하루키는 ‘하루 세끼 + 집안일 + 글쓰기 + 달리기 +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기 = 일상’으로 생활을 단순화하고 반드시 지켜나갔다고 한다.

 “이틀 이상 글쓰기를 쉬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한다. 유명한 음악가나 미술가들은 하루 작업을 쉬면 손이 굳고, 이틀을 쉬면 감상이 준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소설가의 삶 또한 도를 닦듯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연장 삼아 갈고닦는 도인의 길인가 보다.


기록은 '사고의 도정'을 위함이다.

지나온 발자취를 기록하는 이유는 내 심정을 기억해 내고, 나 자신을 경계하거나 격려하며, 쉽게 잊히는 일종의 동기를 깨우기 위함이라고 한다.

‘건전한 자신감과 불완전한 교만을 가르는 벽은 아주 얇다.  하루키에게 기록은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가꾸고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수행의 다른 말처럼 들린다.


모국어? 외국어? 표현언어에 대한 다른 시각

무라카미 하루키는 모국어인 일본어와 외국어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 색다른 시각을 말한다.

모국어인 일본어는 표현에 한계가 없고 자유롭기는 하지만, 뭔가 더 표현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외국어는 표현할 수 있는 부분에 이미 제한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언어를 채우기 위한 ‘유머’를 섞는다든지 다른 사유를 위한 공간을 좀 더 쉽게 내어놓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영어로 글을 쓰려고 하면 표현의 한계 때문에 답답해서 애 닳는 나다. 요즘 모국어인 한글로 쓰면서  해방감을 만끽해 온 터라 새로운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 어떤 말보다 위안과 희망을 주는 문단이기도 하다.


경험이 아닌 논리적 생각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사변 '에서 벗어나자

요즘 달리기 전 단계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만보 걷기'를 하다가 지난주부터는 '만 오천보 플러스'에 도전하고 있다. 잠자리에 들 때쯤이면 허벅지나 종아리가 뻐근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기분이 든다는 것은 몸의 근육이 그에 맞게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글쓰기 습관을 잡아가고 있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생활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유의 확장은 결국 '경험' 그리고 '꾸준함'에서 비롯됨을 마음에 새긴다.

신발끈을 질끈 묶고 오늘도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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