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BBC 아침 뉴스시간에 듣기도 안 듣기도 애매한 방송이 바로 날씨예보다. 거의 매일 예보내용이 같기 때문이다. "햇볕이 비치기도 하겠지만, 바람을 동반한 비가 내리기도 하겠습니다."
그러던 기상캐스터가 며칠 전부터 호들갑스럽다. 7월 마지막주는 올해 들어 최고 기온인 뜨거운 날들이 될 거라며 말이다. 그래봐야 28~30도다.(한국에 계신 분들 코웃음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오랜만에 바다수영을 즐기는 영국사람들 @세반하별
오늘이 바로 최고 기온이 예보된 날이다. 방학인 아이들과 기다렸다는 듯이 해변으로 나선다. 오늘은 영국 남서부 페인톤(Paignton) 해변에 간다. 물놀이 외에도 게임장 등 놀거리가 많아 5년 전쯤 가족 모두 재밌는 시간을 보낸 추억이 있다. 가는 길, 덩달아 아이들도 신이 났다.
태양빛은 뜨겁고 역시나 피서객들로 붐빈다. 사람들은 해변에서 태닝하고 수영하느라 바쁘다. 대서양 바닷물은 항상 얼음장처럼 차가운데, 날이 뜨거우니 시원하게 더위 식히기는 안성맞춤이다. 바닷에서 보드도 타고 공놀이도 하고... 다들 오늘 밤 코 골며 자겠다 싶다. 수영이 지루해질 때쯤 게임장에 간다.
영국 해변에서 쉽게 만나는 피어스 게임장 @세반하별
영국 해변가에 있는 부둣가, 피어스(Piers)라고 부르는데 그 위에 커다란 게임장이 있다. 온갖 오락 게임기들이 구비되어 있다. 5파운드(한화 만원 정도)이면 두둑이 동전을 챙겨 이것저것 경험할 수 있다. 게임 점수에 따라 포인트가 주어지는데 그 점수 따라 상품을 받을 수 있다. 돈 주고 사라면 구매할리 없는 싸구려 인형들이 대부분이지만, 사은품을 받아 든 아이들 눈은 행복에 흠뻑 젖는다.
"엄마 1파운드 더요", "나도 더 필요해요". 돌아보니 아이들 따라다니는 짝꿍도 신이 났다. 옛날에 이것도 해봤고 저것도 해봤고 추억이 몽글몽글 샘솟나 보다. 한참을 신나게 뛰어다니더니 각자 포인트 카드를 한 움큼씩 들고 나타난다. 오늘은 조금 점수가 부족했는지 인형들 대신 츄파춥스 몇 개와 하리보 젤리를 기념품으로 받았다. 한 시간 동안 20파운드(한화 약 삼만 오천원) 쓰고 받아온 귀한 물건들 되시겠다.
가족 단위로 즐기는 부둣가 게임장 @세반하별
조금 더 걸어 내려오면 이번에는 관람차, 하늘을 나는 기계들이 한가득이다. 아이들은 줄을 서고 다음 기계로 뛰어가는 쳇바퀴를 반복한다. 밑에서 바라보는 내 목이 뻐근히 아픈 지경이 되어서야 이제 그만 타고 싶다고들 한다. 다행이다. 더는 인출해 온 현금이 남아 있지 않은 참이었다.
이제는 집에 갈 시간. 실컷 놀고 나오는 길, 아이들이 그런다.
"좀 시시했어!"
이젠 무서움 없이 날아오른 아이들 @세반하별
왜 좀 더 빨리 말하지 그랬니....ㅎㅎㅎ
어쩜 그동안 시설 하나 변한 게 없다고 얘기 나눴던 부부는 서로 마주 보며 눈짓한다.
"변한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훌쩍 커버렸네."
하루 사이 구릿빛 피부로 변한 사춘기 소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 옛날 놀이동산 추억이 떠오른다. '후름라이드' 타고 오르고 내리면서 신나게 친구들과 깔깔대며 웃던 그날들은 생각만 해도 웃음 나는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