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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천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중국어 입문기

미래의 걱정은 잠시 묻어두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자.

by 세반하별

열심히 직장에서 일하고 또 시간만 나면 여행을 다니며, 우리 부부는 달콤한 신혼 생활을 즐겼습니다. 그저 일상에 집중하며 살아가다 보니 어느덧 결혼 3년 차가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임신이 됐을 법도 한데 아무 소식이 없음이 그제야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 나에게 문제가 있나? 아님 남편이?'

인생에 아이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은 막상 원할 때 임신이 잘되지 않자 조바심이 나기 시작합니다. 불임 전문 병원에 산전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가기까지 부부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렵게 방문했던 병원 검진 결과, 두 사람의 건강상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소견이 나왔습니다. 결과에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임신이 되지 않는 원인을 모르니 마음은 더 답답했지요.


'좋은 음식 먹고, 많이 걸어 다니면서 건강한 몸을 만들라'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

퇴근하고 집에 있으면 인터넷에서 불임 부부들이 모여있는 카페글들을 샅샅이 뒤지며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매달 확인해 보는 임신 테스트기에는 야속한 한 줄만이 보이고, 점점 내 마음이 고달파지는 만큼 남편의 안색도 어두워지는 것이 보입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나 스스로 다른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시간을 낼 수 있는 시간은 새벽시간뿐. 신혼집에서 도보 30분 거리에 있는 중국어 학원에 등록합니다. 남편과 처음 함께한 여행이 중국 베이징이었고, 그 이후로도 중국 출장 때마다 시간 맞춰 동행하면서 한껏 좋은 추억이 많을 때였습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다른 언어 배우기를 즐겨한다는 것을 알기에, 짐작가능한 방법으로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도전으로 중국어 배우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6시 30분 수업을 위해서는 늦어도 새벽 6시에는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조언대로 건강한 몸도 만들 겸 아침마다 걸어 등원했습니다. 추운 겨울날 새벽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업무가 힘들어 야근을 한 다음날도 쉬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수업이 끝나고 나면 다시 30분을 걸어 회사로 출근했지요. 걷다가 잡념이 떠오를 때면 뛰었습니다.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면 아예 그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흔들리던 자신감을 목표한 바 이뤄내는 과정을 통해 더 채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첫 달 중국어 초급반은 제법 많은 학생들로 시작했지만, 한 달 후 그 절반의 학생이 사라졌고, 그다음 달이 되니 동급반이었던 인원 중 딱 세 명이 남았습니다. 어느 날 초급반 선생님은 그런 상황에 익숙한 듯 “밍주, 아직 학원 다니네요?” 하며 아침 인사를 건네셨던 기억이 납니다. 다수였던 포기자 중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 숙제도 더 열심히, 수업참여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빠 성화로 한자 공부를 해왔던 것이 중국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내가 배운 한자는 고전인 '번자체'였고, 현대 중국어는 그 번자체를 단순하게 만든 '간자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어 선생님들은 번자체를 아는 나에게 폭풍 칭찬을 해주셨고, 나는 칭찬에 춤추는 고래처럼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한동안은 임신 생각 말고 그저 열심히 살자' 다짐하고는 다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건강한 몸만들기를 위해 남편은 담배를 끊었고 아내인 나는 좋아하던 맥주를 끊었습니다. 둘이 열심히 걸어 다니면서 좋은 생각, 좋은 음식들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며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아기 천사가 언젠가는 우리에게 찾아오겠지 하는 희망과 노력해도 반겨 맞이할 수 없게 된다면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양가적 마음. 기도의 만트라를 읊어대던 시기였습니다.


그동안 나의 중국어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중국 청두에서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합니다. 현지인들의 말이 들리고,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 한창 신나는 참이었지요. 재미있고 집중할 일이 생기니, 매달 임신 테스트기에 야속한 한 줄이 뜨는 것에도 덤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6개월이 지나고, 의사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그다음 달부터 불임센터에 갈 예약을 잡으려던 참이었습니다. 그즈음 매달 일상이었던 임신 테스트기에 희미한 두 번째 줄이 보입니다. 부부는 반신반의하며 다음날 병원에 방문합니다. 막상 의사 선생님에게서 “임신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말을 들은 부부는 어안이 벙벙하고 현실인지 아닌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결국 2주 후 재방문한 병원에서 아이의 튼튼한 심장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날로 나는 불임 카페 대신 아이맘 카페에 등록을 합니다. 중국어 공부는 이제 아이 태교를 위한 공부로 그 성격이 변했습니다.




" 지나간 과거나 미래의 일에 얽매이면 발전과 행복이 존재하는 현재에 집중할 수 없다. 당신은 지금 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고, 지금 통제할 수 있는 것만 통제할 수 있다."


요즘 읽고 있는 '레버리지'라는 책에서 나온 문구입니다.

간절히 아이를 원하지만 그 아기 천사가 바로 와주지 않던 당시, 그 답답함과 무력함에 참 힘들었습니다. 내가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미래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에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속해 있던 회사업무나 가족계획이 아닌 전혀 다른 분야의 중국어 공부는 하루하루 눈에 보이는 현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였을까요. 어렵게 첫아기 천사를 맞이하고 두 살 터울로 둘째 천사까지 찾아와 주어, 현재는 귀한 두 딸들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어려운 시간도 교훈이고, 경험이자, 축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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