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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어를 이렇게 잘 사용하게 될 줄이야

모든 배움이 합력해서 현재의 나를 만든다.

by 세반하별

Cześć, jak się masz?

영국 초등학교 5학년 교실. 오늘 새로 전학 온 학생은 풀란드에서 이사를 온 야넥(Janek).

등교 첫날 잔뜩 긴장한 야넥은 보조교사인 내가 “안녕, 반가워” 폴란드말로 인사를 건네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물론 깊은 대화를 할 만큼의 폴란드어 실력은 아니지만, 짧게나마 환영의 뜻을 전달하고 싶었고 다행히 잔뜩 긴장해 있던 아이의 어깨가 조금은 누그러뜨려지는 것이 보인다. 영국에는 동구권 유럽 이민자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폴란드계 주민 비율이 높다. 대부분 학교에서 만나는 폴리쉬 아이들은 영국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경우라 영어 사용에 큰 문제가 없지만, 가끔 이렇게 고학년이 되어서 전학을 오는 경우에는 한동안 언어적응에 어려움을 겪고는 한다.



대학교 시절. 대우 전자의 “세계 경영”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었다. 백색가전, 자동차 등 그 당시 대우는 삼성, 현대와 더불어 3대 대표 수출생산 대표 그룹이었다. 故 대우 김우중 회장은 90년대 구 공산권 국가에 진출해 전 세계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폴란드를 대우 수입차 생산의 거점지로 발전시키는 대형 프로젝트가 있었다. 폴란드어 사용이 가능한 한국의 인재는 졸업하면 바로 취업이 되고는 했었기에, 이 언어를 공부하면 취업에 날개를 달게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폴란드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99년도 분식회계로 대우그룹의 워크아웃이 신청되면서 국내 굴지 기업이던 대우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 모든 일이 내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일어났지만 말이다.




동유럽계 언어들은 슬라브 계열인데, 사용 단어나 문법이 비슷하기 때문에 폴란드어 기준으로 접근해 보면 이해하기 쉬운 경우가 많다. 체코, 슬로바키아 지역을 여행하는데 각국 언어가 다르지만 슬라브계 언어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띄엄띄엄 뜻이 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음식 문화의 경우에도 동유럽권 음식은 주로 구황작물인 감자와 돼지고기 등 소시지를 많이 먹고 zuppa 같은 뭉근하게 끓인 수프류들을 먹는 공통점이 있다. 러시아 만두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고기만두 비슷한 모양에 사워크림을 얹어 먹는 문화가 있다. 러시아에 보드카가 있다면 폴란드에는 부드카(Wodki)가 있다. 폴란드의 양대도시라 하면 행정수도인 '바르샤바'와 문화와 역사의 도시 '크라쿠프'가 있다. 유럽 역사가 어디나 그렇듯 이 두 도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가 보면 전체 유럽의 역사와 맞물리게 된다.



폴란드어를 배우며 그들의 역사를 접해보니 한국과 폴란드 간 비슷한 점들을 많았다. 중국- 일본, 두 강대국 사이에 '한국'과 독일 - 러시아 사이에 있는 '폴란드'는 양차 세계대전 동안 비슷한 운명을 겪는다. 민주화의 과정도 그렇고, 근현대사 굽이굽이 유사점이 많아 폴란드에 대한 공감과 친근감이 생기기도 했다. 통계상 자국 내 거주 폴란드 인구보다 해외에 나가 사는 폴란드 이민자의 수가 더 많다고 한다. 해외로 나가 돈을 벌어 자국으로 송금하는 우리네 60-70년대와 비슷한 이야기들이다. 옛날 미국 영화에 주정뱅이로 표현된 인물들이 폴란드계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전형적인 유럽계 블루 칼라 군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폴란드 국방부가 대한민국 국산 무기를 대량 수입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폴란드에 관한 기사는 언제나 나의 눈길을 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폴란드는 동유럽의 리더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가장 많은 전쟁 원조를 하고 있고, 더불어 자국에 우크라이나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하기도 했다. 폴란드는 지리적으로 유럽 대륙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실패했지만 대우 김우중 회장의 비젼은 분명히 일리가 있는 전략이었다. 지금도 많은 나라들이 유럽향 수출기지로 폴란드를 선택하고 있고, 전기차나 신 에너지 관련 사업체들은 한국기업을 포함해 다양한 업체들이 진출해 있다. 관련 주식 공부를 하다가 보면 폴란드 지역이 자주 나온다. 예전보다 그들의 국력이 한층 발전해 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나의 매일 하교 시간에 맞춰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을 직접 데리러 간다. 영국은 역시 다민족 국가다. 여러 국적의 학부모들이 학교 앞 한 자리에 그렇게 매일 모인다. 데려간 강아지들은 재들끼리 엉덩이 냄새 쫓아다니며 놀고 부모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폴란드 출신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내가 조금 아는 폴란드말을 전하면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다.


일로 만난 미국인 친구 그레그(Greg)의 부모님은 폴란드 분들이었고, 한국 방문하셨을 때 집으로 초대했다. 폴란드 소시지를 구해다가 밥상을 차렸더니 감격해 하셨던 기억이다. 그레그의 할아버지는 폴란드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 미국 이민을 선택했던 산 증인이셨고, 고된 노동일을 해서 고향에 식구들을 돕고 딸을 미국 회계사로 키워내신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 하셨다고 한다. 그 능력 있는 딸이던 그레그의 어머니 덕분에 자신은 다른 친구들과 달리 비싼 미국 대학 등록금 부채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노라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인해 말레이시아에 살았다. 그 때 만난 크리스티나(Krystyna)는 폴란드 크라쿠프 출신이었다. 내가 그녀를 크리샤(Krysia)라고 불러도 되나 물었더니 그녀의 남편이 어떻게 약자를 아느냐며 놀란다. 이후 나는 폴란드말을 아는 몇 안 되는 아시아인으로 순식간에 친한 그들의 이웃이 되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스치듯 지나가던 폴란드 사람들은 그렇게 나의 짧은 폴란드말 덕분에 반갑고 즐거운 인연으로 남았다.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했던 폴란드어 공부는 당시에 관련 취업과 멀어지면서 쓸모없는 공부한 기분이었다. 돌아보면 '배움의 하나하나가 합력해서 하나의 선을 이루는 것이 인생'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지금 유럽 땅에서 사회 생활하면서 폴란드말을 이해한다는 것이 이렇듯 생활의 윤활유 역할을 해줄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배움을 통해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생활이 윤택해지는 경험을, 나는 폴란드어를 통해 다시 한번 느낀다.


Dowidzenia~ 안녕히~


다음은 마음 수련의 마음으로 시작했던 중국어 초급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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