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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외국어는 영어. 평생 친구가 되다.

모국어가 먼저였니 영어가 먼저였니

by 세반하별

말하는 법을 배운 것은 모국어인 한국말 먼저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가나다라” 읽고 쓰기를 초등학교 입학 전에 배웠던 나는 그즈음 영어 “ABC”도 같이 배웠던 것 같다. 아이의 교육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셨던 우리 엄마는 매일 영어 라디오를 틀어 놓으셨다. 영어 동요에 맞춰 춤추며 놀기도 했고, 유치원에서 서양 명절을 놀이 테마로 자주 접하니 영어로 노는 것에 이질감이 없었다. 덕분에 영어와의 첫 만남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즐거움이었다.


집안 환경도 나의 영어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친가와 외가 양가에 우리 부모님을 제외하면 모든 형제들이 미국 이민자들이었다. 각각 집안의 장남과 장녀인 부모님 사이에서 큰 딸로 태어났다. 당연한 듯 언제나 부모님은 미국 이민을 인생의 선택지 중 하나로 올려놓으셨고, 나에게 영어는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항상 미리 준비해야 할 것으로 늘 말씀하셨었다. 왜 유학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들이 다들 해외에 있으니 나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결론적으로는 예상했던 조기 유학을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영어는 나의 도구이자 미래 자산으로 잘 다듬어 놔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인이 박혀 있었다.


자연스레 대학 입시 때 제일 자신 있는 과목 또한 영어였고, 대학교 졸업 즈음에는 누구나 처럼 스펙 쌓기 일환으로 영어 TOEFL공부를 했다. 입사 동기 중에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진급에서 탈락되면서 다시 유학을 꿈꿀 때에도 역시 영어 능력 고양에 노력했었다. 회사 출근 전 강남역 영어학원에서 새벽 공기 맡으며 회화 공부를 했고, 퇴근 후에는 비즈니스 영어 공부에 열정을 불태웠었다. 덕분에 나의 진급에 제동 거신 이사님은 영어로 진행하는 업무에 관해서는 늘 나를 찾으셨고, 내가 없이는 일 처리를 하지 못했다. 진급 누락으로 상처받은 자존감을 영어 업무 특기가 다시 추켜 세워 주었다. 언어는 역시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나는 영어 좀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영어의 본고장, 영국에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나라에나 표준어 이외의 지방 방언들이 존재한다. 영어는 그동안 영국식/ 미국식/ 호주식 국가 간의 차이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막상 영국 땅에 와서 보니 각 지역 방언 간의 차이가 대륙 영어 간 못지않게 크다. 단어 사용과 억양상 큰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영국 안에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잉글랜드 억양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잉글랜드 북부와 남부 언어가 다르고 가까운 물리적 거리를 감안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각 지방의 방언들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뉴캐슬 방문했을 때 남편과 “Greggs” 샌드위치점에 들어갔다. 중년의 아주머니는 해맑은 목소리로 오늘의 스페셜 메뉴 설명을 해주신다. 너무나 밝은 목소리에 웃음으로 답하지만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주문한 샌드위치를 받아 나오는 길에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알아들었어?” 내가 물으니 “아니, 나도 잘 모르겠던데? 그 아주머니 방언 엄청 쎄시네” 그럽니다. 다른 지역 출신이지만 현지인인 남편도 잘 못 알아들었다니 은근히 안심이 되면서도, 이 언어의 장벽이 시간으로 해결이 될 것인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대면으로 하는 대화에는 현지인들과 문제없는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지만, 전화 통화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언어 소통이라는 것이 말 이외에도 표정, 공간, 상황 등 많은 요소들이 서로 작용한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한국어를 쓰면 식당에서 반찬이라도 하나 더 얻는다. 기특하다고 말이다. 영국은 반대로 영어를 잘 못하면 무시받기 쉽다. 동양인은 영어를 잘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을 보기도 한다. 어느 날, 카페에서 음식 주문을 위해 줄 서있는데 앞에 영어 사용이 익숙지 않으신 분이 주문을 하고 있다. 주문을 재차 확인하는 카운터 직원의 말투가 어째 좀 거슬린다. 다음 차례였던 나는 영어로 정확하고 분명하게 손님의 자세로 주문을 하니 그 여인의 태도가 눈에 띄게 바뀌는 것이 보인다. 역시 해외 살이에 본토 말을 못 하면 사소한 것에서도 억울한 경우가 많다.



요즘은 업무상 그리고 생활의 밀도를 위해 또 다른 방식으로 영어 공부를 한다.



반면에 시간 날 때면 넷플렉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의식적으로 틀어본다. 한국의 새로운 트렌드도 알고 싶고, 무엇보다 오래간만에 고국방문 하신 집안 어르신들의 어눌했던 한국말 발음이 가슴속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말할 때 발음이 새는 것 정도는 미연에 방지하고 싶다.


이렇듯 나에게 영어는 평생 동반자이자 도전이며 목표이기도 하다. 영어와의 첫 만남이 좋았던지, 살면서 다른 언어들에도 계속 관심을 갖는다. 영어는 내 인생 첫 외국어 배우기의 시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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