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웅얼웅얼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엄마는 불어 동요도 종종 가르쳐 주시고는 하셨었지요. 전공이 불문학이셨거든요. 중학교 진학을 하고 제2 외국어를 선택하는데 그 당시에는 불어 아니면 독어였습니다. 물론 제 선택은 불어, 무엇보다 엄마가 과외 선생님이 되어주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교과서를 받아오던 날, 우리는 불어 ABCD 발음 연습부터 들어갑니다. 처음 발음 공부에 무척 공을 들였던 기억입니다. 이유는 다 엄마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엄마는 고향 부산에서 성장했고 대학교 진학하면서 서울에 왔지요. 우리랑 얘기할 때는 서울 말투셨는데 할머니만 뵈면 영락없이 “어무이~” 하셨습니다. 나는 지방방언 특유의 착 감기는 말투가 좋아서 할머니와 엄마 대화를 엿들었다가 그 말투를 따라 하고는 했습니다. 엄마는 전형적인 노력형 모범생이셨습니다. 전공 공부에 열심히던 엄마는 불어 원어민 강의에만 들어가면 그렇게 지적을 받으셨대요. 아무리 열심히 발음을 따라 해도 그게 아니라고 하더랍니다. 녹음해서 들어보니 부산 사투리 억양이 묻어난다고 했다네요. 개인적으로 언어는 의사소통의 방법일 뿐, 얼마나 완벽하게 구사하느냐가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엄마는 딸의 발음을 다듬고 다듬으셨습니다.
미리 집에서 예습하고 간 학교 불어 수업에서 내가대표로 일어나서 발음 시연했다고 하니 뿌듯해하시던 엄마 얼굴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제2 외국어로 불어를 접했습니다. 불문과 진학이 아니었기에 그저 내신 시험 준비 정도의 언어, 딱 그 정도의 무게로 공부했고 대학 진학 후에는 잊혀 갔습니다.
지금은 영국 땅에서 사춘기 딸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중 한 아이가 불어를 배우고 있지요. 영국 사람들은 제2 외국어 하면 불어를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만, 모국어 영어로 어디든 의사소통이 되다 보니 제2 외국어 교육에 좀 소홀한 나라도 영국입니다.
한 번은 배를 타고 프랑스 북서부 Brittany 지역으로 들어가 기차로 파리까지 가는 여행을 했습니다. 그중 한 곳이 Morlaix라는 중세 역사를 가진 도시였는데, 에어비앤비로 며칠을 지냈습니다. 가정집의 이 층을 내어주는 형태로 부엌은 주인집과 공용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두 번째 날 밤, 집주인이 우리 부부와 맥주 한 병씩 하자며 초대합니다. 집주인장은 영어가 짧고, 저는 불어가 짧습니다. 다행히 남편이 좀 나은 불어 실력이라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주인 부부는 우선 첫날 여행이 어땠는지 묻고는 우리 부부에 대해서도 질문을 합니다. 영국남자와 한국여자가 어찌 만났는지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질문이지요. 한국에 대한 정보는 좀 어둡지만, 영국 왕실 이야기를 묻고, 영국 현지사정에 대해서도 궁금해합니다. Brittany 지역은 영국과 해협을 하나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보니 역사적으로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만 그만큼 친근하기도 한가 봅니다. 영국에 호의적인 인상을 받습니다. 프랑스 푸조차가 예전만 못하다느니, 지방특산물 양파값이 많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이 시도할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자꾸 줄어들어 걱정이라며, 이제 고등학교 졸업한 아들 이야기를 빗대어 팍팍한 프랑스 경제 상황 이야기를 합니다. 어디 프랑스만의 상황일까요.
우리의 다음 여행 예정지인 파리에 대해서는 여주인이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파리 사람들은 Merci~ 감사할 줄을 몰라”
프랑스도 수도 파리와 타 지역 간 부의 재분배 문제가 많다고 합니다. 영국도 런던과 비 런던지역 간의투자 형평성 문제가 매번 화두로 떠오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날 밤 프랑스 현지 부부와의 대화는 여행 중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시골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친절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음식 관련해서 물으면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야 할 것처럼 이야기가 길어지기도 했습니다. 역시나 제 짧은 불어 실력이 안타깝습니다.
“ 딸아,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에는 현지 사람들과 더 많은 얘기도 나누고 추억 만들어보자” 했더니 피식 웃습니다. “엄마도 같이 공부하면 나도 할게”라는 단서와 함께 말이지요.
파리 Notre Dame 대성당 앞에 도착합니다. 6년 전 큰 불로 지붕이 소실된 후 아직도 복구 중이라 입장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좋아하셨던 곳이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엄마. 살면서 매번 생각나지만 엄마랑 손녀랑 3대가 같이 불어공부하면 참 재미있을 텐데... 이 순간에 또다시 엄마의 빈자리가 아쉽습니다.
"La douleur de ton absence est immense, mais la tendresse de tes souvenirs demeure éternelle dans mon cœur."
당신의 부재로 인한 아픔은 크지만, 당신과 함께한 추억의 부드러움(따스함)은 내 마음속에 영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