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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은 과연 악인가?

by 세반하별


대한민국은 세계 최장의 근무시간과 단 시간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역사상 유례 없는 국가다.

이런 거창한 문구가 아니더라도 한국인들에게는 그 만의 근면과 성실 DNA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간다. 어느 세상 누구든 열심히 살지 않겠나만, 한국인들이 유난히 부지런한 것은 사실이다. 혹자는 나라 잃어본 경험, 아직 분단되어 휴전 중인 환경에서 그 독특한 DNA의 실마리를 찾아도 보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나는 지금 영국땅에서 살고 있다. 사고방식이나 교육체계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지만, 가끔 한인 교민들을 만날 때면 "그래 그랬지"할 때가 많다. 아이들 교육에 진심으로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어려움은 밝은 미래를 위해 얼마든지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다.


영국사람들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아주 말간 눈빛으로 되물을 때가 많다.

"왜 그래야 하는데?"

당연하게 생각하던 나의 가치관을 아주 근본적인 "왜?"로 물으면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는 했었다.

이곳 사람들은 다수가 덜 일하고 게으름 피우며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게으름은 과연 악인가?


게으름에 대한 이야기나 격언들은 보면 대부분 게으름을 나무라고 노동과 땀을 예찬하는 내용이다.

누가 지어 냈을까? 일을 하는 사람이었을까, 일을 시키는 사람이었을까?

<굿바이, 게으름> 저서 발췌


오만, 정욕, 분노, 시기, 나태, 탐욕, 탐식

7가지 죄악으로 서양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로 여겨졌고, 이는 소수이 게으름만을 가능하게 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영국 역사를 둘러보면 왕들의 전설은 모두 7가지 항목의 종합 선물세트와도 같다.

그들의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으려면 누군가는 일해야 했다.

없는 자들은 금욕하며 성실하게, 게을러서는 먹고살 수가 없었다.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인간의 구원을 위해 사회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칼뱅주의가 퍼지며 노동을 신성시하고 직업윤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영국의 프로테스탄티즘은 소명의식, 이윤창출, 검약 등으로 대표되는데,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천국으로 간다고 말했다. 반대로 게으르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균일하게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의 발명과 함께 우리는 시간에 맞춰 근면하게 일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한 노동의 굴레에 빠져 있다. 시간이 돈이 되는 세상. 게으름은 부도덕할 뿐만 아니라 가난을 부르는 것이라는, 부자가 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는 공식 속에 현대인들은 시간 자체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게으를 권리가 있다.


"게으르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슬기로움이나 너그러움의 한 형태다."

<굿바이, 게으름>저서 발췌


게으름 예찬자들은 게으름을 악덕이나 죄악이 아니라 지혜이자 미덕으로 격상시켰다.

'삶의 여유'와 '인간성 회복'으로 게으름을 재조명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게으름은 '느림'과 '여유'이지 선택을 피하기 위해 찾아오는 고전적 게으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유로운 게으름도 인생에 꼭 필요한 일이다.


‘내가 지금 휴식을 취하는 것일까? 게으름을 피우는 것일까?

<굿바이, 게으름>저서 발췌


작년 일을 그만두고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둔 시간이 있었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저 마음이 동하는 일만 해보자 했었다.

이것이 게으름인지 여유인지 헷갈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


지금 돌아보면 요즘 '내가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열망을 쌓아간 힘의 축적 시간이 아니었는가 싶다.

쉬어보니 다시 돌아가고 싶다. 주체적으로 살아있음을, 생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삶으로 말이다.


지나고 보니 '게으름'이 아니었고 '여유'였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나는 지금 이 브런치글도 쓰고 있다.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불혹, 지금까지를 돌아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은 그 가치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시간이 좀 더 짧았다면 좋았겠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나의 속도이니 말이다.



깨닫고 적용할 것


나의 에너지 버스를 잘 관리한다.

몸은 건강한지, 정신적 에너지는 충분한지, 내가 어제한 목표와 지금은 어떻게 같은지 다른지, 왜 그런지

중간중간 밖에 나가 새소리도 들어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여유와 집중이 공존하는 행복한 순간을 살아가자.

루틴 지키고 나면 좀 여유를 부려보자.

나에게 칭찬도 좀 해주자.


뭘 해야만 나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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