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 아니더라도 경험이다.
영국 온라인 서바이벌 마케팅 수업
한 달 반 동안 수업은 백 프로 참여하고 있지만 이해도는 50프로나 되면 다행인 디지털 마케팅 참가 학생이다. 40대 중반, 이제 더 늦으면 시도도 해보기 어려울 것 같은 나이에서 오는 불안감에 이것저것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지만, 생각의 끝은 언제나 마케팅 문제에 봉착했다.
하이스트릿에 상점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레스토랑이나 호텔 같은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서비스 공간만이 살아남는 오프라인 세계를 직접 목도하고 있다. 관련 산업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온라인상에서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이 잡혔으면 이제는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여름휴가를 마치고 칼리지에 면접을 보러 갔다. 육하원칙에 맞춘 인터뷰는 왜, 내가, 이곳에, 무슨 목적으로 와 있는지, 국비 프로그램인 만큼 증명서처럼 제출해야 하는 자료들을 다 제출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도 묻는다. 4년 넘게 영국정부에 꼬박꼬박 세금 내고 살다가 처음 국비 혜택을 보는 순간이었다.
수업에 참여하고 보니 이미 디지털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 프리랜서로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실무자 등 이미 몇 단계를 앞선 사람들과 같은 조로 묶였다. 누가 봐도 툴 사용에 약한 아시안 중년이지만 밀리기는 싫다는 다짐을 한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이건 영어진행 수업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하는 디지털 언어나 생각의 흐름이 너무나 달라 도저히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 온라인 세상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데이터를 분석해서 고객 관련 데이터 사용법을 설명하니 이 무슨 외계인 말인가 싶다.
한글로 번역된 마케팅 개론도 읽어보고 어떻게든 따라가 보려고 한지 두 달째. 이번주부터는 온라인 서바이벌 발표 수업이 시작된다.
정말 한주 내내 열심히 했다. 어떨 때는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안쓰럽고 짜증 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없이 그저 주야장천 들이 파고 있을 때는 더욱이 그런 측은한 마음이 든다.
발표하기 전날, 발표 수업과 같이 주어진 시험 결과 70점 통과인데 55점을 받고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때 "띵동" 한국 카톡 메시지가 울린다. "커피 쿠폰 당첨" 이란다. 피식 웃음이 난다. 이것은 마지막까지 힘을 내라는 우주기운의 신호다.
발표 30분 전까지 부족한 논리와 프레젠테이션 목차들을 보강해서 수업에 참여한다. 발표자들 순서가 하나씩 호명되고 멋들어진 발표들이 계속된다. 듣다 보니 수업 중 '그 말이 이렇게 적용하라는 것이었구나'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
이름이 호명되고 조교님의 도움을 받아 파워포인트를 열고 하나씩 내 이야기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확실히 포인트에 맞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이해 부족이었음을 밝히고 다음 주에 다시 업데이트해서 오겠다고 말한다. 타깃, 방법, 관련 계획에 대한 발표를 마친다. 주어진 시간은 10분이었는데 시간에 맞게 끝난 것인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피드백을 받을 시간,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동기들은 잘했다는 시작 밑밥과 함께 조목조목 자신들의 관점에서의 보강할 부분과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따져 묻는다. 내 발표의 기본 지식은 누구도 나만큼은 모른다는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모르는 부분은 모르겠다, 보충할 부분은 참고해서 다음 주에 들고 오마 발표하니 그들도 동의하면서 애썼다고 힘을 넣어준다.
욕심만 많아서는 내가 왜 이 과정을 시작했는가 혼자 구시렁대던 며칠이 지나고 어쨌거나 발표를 끝내고 나니 좀 살겠다.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2주 후에는 학과 선생님들이 보는 앞에서 발표해야 한다는 폭탄 발표가 나온다. 다들 아는 사이에서 하는 발표와 모르는 전문가들 앞은 차원이 다르다. 미리 걱정은 하지 않을 테다. 과제에만 집중하리라 마음먹는다.
피드백 사항들을 적극 참조해서 발표시기 목전에 벼락치기가 아니라 하나씩 꾸준히 체크해서 후회 없는 발표 해보고 싶다. 성공이 아니더라도 경험이다.
영어 발표다 보니 해당 멘트들도 좀 더 다듬어 연습해야 하는 것은 보너스 과제다.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