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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Feb 28. 2024

일요일 점심에 진심인 영국사람들

가족과 여유롭게 일요일 정찬을  즐기는 영국 문화

아침이면 느지막하게 게으름을 피우며 일어난다. 배우자가 홍차 한잔을 침대 곁으로 가져다주는 로맨틱한 사치도 부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일요일만큼은  각자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기상해서 가벼운 아침식사를 한다. 그리고는 주일 미사에 참여 하러 성당에 간다.


미사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오븐 안에는 칠면조 만한 크기의 통닭이 먹음직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이미 두 시간 정도 오븐에 구워지는 중이다. 고소한 닭고기 기름 냄새가 올라오고, 우리 집 강아지 코코는 부엌을 떠나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다.


영국 전통정찬(Sunday Roast)에는 주로 뿌리채소들이 곁들여진다. 아직 단단함이 있는 정도로 삶은 감자를 오일 두른 오븐쟁반에 담아 굽는다. 당근과 파스닙(당근 닮은 하얀 뿌리채소)을 얇게 잘라서 올리브 오일과 양념을 뿌려 굽고, 콜리플라워(꽃 양배추)는 살짝 데쳐 위에 치즈를 뿌리고는 오븐에 넣는다. 요즘은 뿌리채소 대신 가벼운 샐러드를 대신해 먹기도 하지만, 영국 전통 일요일 정찬이라면 뿌리채소가 제격이다.

집에서 발효없이 바로 굽는 요크셔 푸딩 by 세반하별

요크셔푸딩이라는 컵모양으로 생긴 빵을 집에서 굽는다. 다른 빵들처럼 반죽하고 발효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저 요리기름을 뜨겁게 달구고 거기에 밀가루, 계란, 우유로 만든 반죽을 넣어 오븐에 구우면 완성이다. 파이 같은 폭신한 식감에 고소한 기름맛이 좋다.


이제 이 모든 재료들을 하나로 묶어 줄 필살기. 그레이비(Gravy) 소스를 만들 시간이다. 오븐에서 잘 구운 통닭을 꺼내고 나면 그 오븐쟁반 위에 닭기름이 제법 많이 남는다. 그 닭에서 나온 기름을 작은 그릇에 모은다. 잠깐 놔두면 기름이 두 가지로 분리되는데 위에 뜬 기름을 걷어다가 팬에 밀가루 한 스푼과 함께 볶는다. 어느 정도 잘 섞여 볶아지고 나면 나머지 가라앉은 기름과 함께 야채 삶았던 물에 치킨스톡을 잘 녹여 함께 끓인다. 취향에 맞는 허브와 소금, 후추 간을 해서 걸쭉해지면 소스그릇에 옮겨 담는다.


정성을 다해 집에서 만드는 일요 정찬 by 세반하별

음식을 담기 직전에 오븐 여열로 서빙 접시들을 데운다. 거기에 잘 익은 닭고기와 함께 구운 야채들, 요크셔푸딩을 올린 후 마지막에 그레이비 소스를 뿌린다. 스터핑(stuffing)이라는 빵가루와 야채로 만든 소를 더 추가하기도 하고 칠면조에는 크랜베리소스, 돼지고기에는 애플소스와 같은 그 고기와 잘 어울리는 소스도 함께 즐긴다.


옹기종기 모여 한 그릇씩 음식 가득 담아 앉아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즐기는 일요일 정찬은 영국인들에게 아주 소중한 문화다. 디저트까지 즐기고 나면 배부르고 행복한 일요일 오후가 된다. 한국에서는 주로 토요일 저녁 가족들과 편안하게 저녁을 나누면서 주말을 즐겼었다. 영국은 일요일 늦은 점심 이 바로 그 정겨운 시간이다.


처음 영국에 시집와서 이 정찬 만들기가 영 익숙지 않아 한동안 애를 먹었다. 요크셔푸딩 만들 때 오븐 온도가 낮아서 빵이 설 익어 나오는가 하면, 오븐 온도가 너무 높아 까맣게 태워 나오기도 했다. 그레이비 소스는 밀가루를 처음부터 기름과 함께 볶아야 하는데, 나는 한국식 탕수육 소스 만들 때 전분 넣듯이 밀가루를 맨 마지막에 넣었더니 기름과 잘 섞이지 않아 날가루 냄새가 풀풀 나는 소스를 만들기도 했었다. 그 때 새댁이었던 나는 처음에는 전통 요리 방식을 따라 하느라 그저 급급했었는데, 경험과 세월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영국 전통요리에 담긴 마음을 알게 되었다.  


옛날 음식이 귀했던 시절, 고기에서 나오는 모든 영양소를 다 챙겨 먹으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레이비 소스에는 고기에서 나온 육즙을 소스로 그대로 활용하고 있고, 야채 삶은 물도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다. 요리 순서는 오랫동안 정찬을 만들어 온 노하우가 담긴 것이라 변주를 부리기보다는 전통 요리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때 제일 맛있다.


직접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세세하게 신경 쓰는 영국 문화도 볼 수 있다. 음식을 대접하기 전에 그 접시들을 미리 오븐의 여열로 데운다. 음식을 먹는 동안 그 온도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만든 음식들을 각자 덜어 담는 과정에서도 서로 마주하며 건네주기도 하고 건네받기도 하면서 서로를 배려한다. 식사하면서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식전주, 식후주를 곁들이고 디저트까지 꼭 챙겨 먹어야 정식이 마무리된다. 덕분에 식사 시간이 제법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 일요일 내가 만든 요크셔푸딩이 제법 모양을 갖추어 나왔다. 처음 만들어봤던 그 설 익었던 첫 푸딩 생각이 나면서 그간 경험들이 떠오른다.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그 행복함을 나는 이렇게 영국식 일요일 정찬을 통해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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