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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영 Jan 21. 2022

버겁거나, 여유가 넘치거나

그 중간의 어디쯤.

  아침에 출근하면 사무실에 앉자마자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챙긴다. 그리고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사기부터 바닥을 친다. 해야 할 일들만 봐도 야근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맡은 바 직무가 있고 의무가 있다면 의당 해야 할 일이긴 하다. 하지만 벌서 10년 넘는 시간 동안 이러고 있으니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선배들 중에는 무료한 것보다 바쁜 게 좋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다. 후배를 더 부려먹으려고 하는 소리인지는 몰라도 어느 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물론 온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 같은 회사 내에서도 일에 치여 바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결국 받아가는 돈은 바쁜 사람이나 요령을 피우는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들은 정신없이 바쁜 사람들보다 더 적은 일과 책임을 가져가면서 더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 일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조금 부당하다 느끼지 않을까? 결국 문제는 모두가 똑같이 바쁘지 않다는 게 문제다. 주변의 모든 사람의 처지와 내 처지가 똑같다면 억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같은 사무실 안에서도 바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진대 회사가 다르고 처지가 다르면 그 격차는 더 커진다. 거기에다 원래 가지고 있는 것. 소위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것까지 고려가 되면 박탈감도 더 커 지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요즘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한다. 한 조직에 속해 부품으로 살아가는 삶 대신에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가 세운 삶의 방식에 따라 살아가는 것 말이다. 또 다른 회사를 다닌다면 다를 게 없겠지만 일을 그만두고 글을 쓴다거나, 여행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나 역시 그렇게 살 수 없을까? 하는 그런 상상이다. 


  물론 알고 있다. 그렇게 훌쩍 다짐하고 떠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결국 후회를 한다는 것 말이다. 대부분은 후회를 하고 겨우 몇몇 사람들만이 원래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의 자기만의 삶을 살아간다. 40이 넘은 나이에 지금까지 해본 일이라고는 서류나 만들던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가족이 있고 아이가 있다면 훌쩍 떠나기는 더 어려워진다. 책임은 다해야 하니 말이다. 상상의 끝은 현실보다 더 암울해진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적당히 요령을 피우는 그 사람들은 이런 깊은 고민 끝에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낸 것이 아닐까? 오히려 그들이 둔하디 둔한 나보다 훨씬 치열하게 고민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실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요 며칠 다시 고민에 빠졌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모두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발을 하나 슬쩍 빼 보면 어떨까? 아내와 아이가 동의해 준다고 해도 당장 책임감을 벗어던지고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대책 없이 뛰쳐나갔다가 결국 생활비조차 마련하지 못하지 않을까? 그래서 여유는 넘치지만 자괴감에 빠지는 삶을 살지는 않을까?


  오늘 같은 날은 겨우 짬을 내 잠깐 숨을 돌리는 삶보다는 가끔 할 일이 있는 여유로운 삶이 부럽다. 원래 가진 게 많은 사람들만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고민이 깊어지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아주 심각하지는 않다. 어쨌든 살아가야 하고 한번뿐인 인생은 제대로 살아내야 하니 말이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 맞는 결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버겁거나, 여유가 넘치거나, 그 중간의 어디쯤 말이다.






(Photo by ijmaki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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