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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영 Jan 26. 2022

나의 삶의 방식에 대해

무언가에 최선을 다해 살아본 적이 있었나?

  대학시절 학생 운동에 열심히인 선배들이 있었다. 이미 치열하게 운동을 하던 시기가 지나갔던 무렵이었으나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을 위해 뛰는 사람들은 있었다. 아마 지금도 있을 것이다. 돌아보건대 난 그들과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그들의 이상에 적극적으로 동조한 적이 없다. 늘 한두 걸음 뒤에서 속으로 공감하기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가 하면 연구실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 고민하고 야외로 망치와 장비를 들고 조사나 탐사를 다니던 선후배들도 있다.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며 서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며칠 밤을 고생하는 그 사람들도 무엇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듯 보였다.


  그들은 지금도 각자의 위치에서 여전히 열심히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교수, 변호사, 교사 등으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위해, 또는 자신의 계획한 삶의 루트를 따라 치열하게 살아간다. 사람인만큼 하나도 다름없는 똑같은 마음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살았지?라는 생각이 든다. 


  난 그때 뭘 했을까?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모두가 공부를 했고 부모님이 원하셨으니 공부를 했다. 대학생이 되고 머리가 조금 굵어진 후에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매진하기보다는 하루하루 흘러가는 데로 살았다. 컴퓨터 게임해 몰두해 보기는 했다. 그런데 게임에서 조차 한 게임을 오래 하진 안았다. 이게임 저게임 메뚜기처럼 뛰어다녔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대로 아무런 계획 없이 닥치는 대로 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입사를 한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고집한다. 그러면서 그 분야에서는 누구 못지않은 전문성을 키워나간다. 다른 업무로 발령 나면 퇴사하겠노라 공공연히 말하기도 한다. 후배들이지만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친구들이다. 물론 대다수가 그런 건 절대 아니다. 가만히 사무실을 둘러봐도 그런 친구들은 몇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들이 어떤 면에서 부럽기는 하다. 


  입사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0개가 넘는 부서를 돌았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해야 하는 일도 매번 달랐다. 일의 본질이나 맥락이 비슷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전혀 새로운 일이었다. 어떤 한 분야에서 전문성이라는 걸 키워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마 이직을 하려고 해도 어디 명함 내밀기도 힘들 것이다. 장점을 적어내라면 다양한 일을 경험했으니 무슨 일도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으려나? 그런데 속 뜻은 결국 잘할 줄 아는 것은 없다는 말이 되리라.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가치와 원하는 삶의 방향에 맞게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나의 위치에서 말이다. 첫 번째 질문부터가 난관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나의 삶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끌려왔다는 게 문제였다. 목적 없이 그저 열심히만 살아왔다는 게 문제다. 의미와 가치를 찾으면서도 현실과 적절히 타협하고 조정한 적절한 목표가 필요한 이유다. 


  생각건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내가 꼭 해야겠다는 일은 없다. 좋아하는 일도 즐기고 싶은 것도 딱히 없다. 또 사회적으로 또는 직장 내에서 높은 위치에 오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누가 반드시 알아주는 걸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동료들에게 월급 도둑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으니 맡은 일은 제대로 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들과 함께 호사스럽지는 않더라도 남들만큼은 살고 싶다.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난 분명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거나 '한 학문 분야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난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명의 회사원으로, 남편과 아빠로 책임을 다했다고는 말하고 싶다. 


  앞으로도 나는 사회와 과학을 발전시키는 몇몇 선지자들의 삶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아는 것처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지도 않을 것이다.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할 것이고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그만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삶에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떳떳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Photo by LSK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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