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놈의 상대평가!
난 왜 한마음 한 뜻으로 같이 노력하자고 말했는가?
12월이다. 연말이다.
12월이 되면 걱정이 앞선다. 아직까지 하지 못한 일이 걱정이고, 여기저기 벌려놓은 일을 어떻게 마무리할지도 걱정이다. 예산 집행 현황도 점검하고 각 과제들의 성과도 챙겨야 한다. 당연히 보고서 작성이 뒤를 따른다. 그것뿐이 아니다. 차년도 계획도 세워야 한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여러 부서와 담당자를 만나 협의를 해야 한다. 계획은 세우는 걸로 끝나지 않느다. 구체화해야 하고 보고자료, 발표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12월에 해 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1년 동안의 성과를 미리 정리하고 연말에 길게 휴가를 쓰기도 하는데, 나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매번 연말에 더 허둥대고, 더 바빠진다. 편안한 게 연말연시를 보낸 기억이 없다. 최소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말이다. 아마 내가 아직도 일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걱정거리는 따로 있다. 바로 평가다. 이 죽일 놈의 상대평가!. 부서장이 되고 난 이후 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지난 1년간 대놓고 일을 하지 않은 직원이 있으면 오히려 맘이 편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면 1년 내내 일 못하는 직원 때문에 고생하던 동료 부서장이 부러워진다.
모든 조직은 아니더라도 많은 조직에서는 여전히 연말에 평가를 하고 그 평가를 기초로 차년도 연봉을 결정한다. 승진의 기초자료가 되기도 한다. 나는 평가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상적인 평가라면 본인의 노력을 적절히 평가받고 개인에게는 성장의 기회를, 조직에게는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상대평가라는 게 문제다.
상대평가 체제 하에서는 고성과자가 있으면 저성과자가 있어야 한다. 모두가 고성과자가 되는 것은 시스템 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민이다. 내가 왜 연초부터 줄기차게 부서원들에게 같이 노력하자고 말했을까? 왜 한 명 한 명 챙겨가며 업무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을까? 왜 부딪힌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같이 야근에 주말근무를 마다하지 않았을까? 일을 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이 오히려 후회가 되는 것은 모두 그 상대평가 때문이다.
이번에도 결국 누군가의 등에 칼을 꽂으리라. 평가가 원래 그런 거 아닐까? 아니다. 받는 사람에 입장에서는 비수다. 그리고 내년 초가 되면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다 같이 또 한해 잘 보내보자고 같이 고생하자고 말이다.
모두가 기대 이상의 1년을 보내 줬다면 마땅히 기뻐해야 하건만 그렇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 한탄스럽다.
(Photo by Tumisu on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