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준영 Jul 14. 2022

노래의 가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이 탓은 아닐 거야

  요즘 약간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인지 출퇴근 시간이나 잠깐 짬이 나면 음악을 듣는 일들이 생겼다. 그 전에는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에 조금은 청량한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음악 애호가아니지만 5~6년 전까지만 해도 음악을 자주 듣긴 했었다. 한데 요즘은 그때와는 사뭇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


 나는 원래 노래를 멜로디로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들을 때도 마찬가지고 따라 부를 때도 그랬다. 한 때 유행했던 많은 노래들의 멜로디를 들으면 언젠가 들어본 기억이 나지만 가사는 도통 알지 못했다. 옛 기억을 더듬어 보면 노래방을 가게 되어도 모니터에 보이는 가사가 없으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었다. 대신 멜로디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흥얼거리는 것은 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내가 집에서 음악을 들을 때 아는 멜로디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곤 하는데 어쩌다 가사라고 붙여 흥얼거리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가사를 창조해서 노래를 부르냐는 핀잔 섞인 잔소리다. 결국 아내로부터 노래 금지 처분을 받은 적도 수 없이 많다. 그 처분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김동률과 같은 가수의 노래는 지금 절대 따라 불러서는 안 된다. 아, 절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서는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라.


생각해보면 과거에도 그런 기억이 있다. 대학 때 선배들 뒤를 따라 집회에 몇 차례 따라나섰던 적이 있다. 그런 장소에서는 늘 노동가요를 부르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가사를 정확하게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요즘도 가끔 집회 현장을 지날 일이 있으면 노동가요를 듣게 되는데 전주를 들으면 대학을 다닐 때 느꼈던 분위기가 살짝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멜로디는 생각나지만 가사는 그렇지 않다. 어쩌다 가사가 불현듯 생각나기도 하지만 확신은 없다. 몇 개의 곡의 가사가 섞여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래를 들으며 느끼는 감정은 차분하다, 신난다, 멋있다, 비장하다, 특이하다 정도가 다였다. 그런 감정들은 멜로디나 전반적인 분위기에 기인한 것들이다. 가사를 곱씹어 본 기억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데 최근에 변화가 생겼다.


  40이 되기 전에는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려본 기억은 없다. 가사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본 일도 없다. 그런데 요즘은 가사가 머릿속에 들어온다. 노래를 듣다가 혼자 감상에 젖어 가사를 따로 찾아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 그런 이런 생각을 한다. 그동안 내가 노래를 반만 듣고 살아왔다는 생각 말이다. 노래는 훌륭한 멜로디 이기도 하지만 시이기도 하고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머릿속으로 알던 것이 피부로 와닿으니 이상한 기분도 든다.


  요즘 가끔 노래를 들으면 눈가에 눈물이 맺히곤 한다. 심지어 사무실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어느 가수의 라이브 영상을 보고 티슈를 한 장 뽑아서 눈가에 가져가곤 한다. 이 무슨 청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분은 가히 나쁘지 않다. 스스로 남자답지 못하고 후배들이 혹시 볼까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음악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기쁘다.


  스스로를 바라볼 때, 나란 사람은 절대 감성적인 사람은 아니다. 과거에는 더 그랬다. 스스로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이제는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나에게도 감성이라는 것이 조금 생겼는지 아니면 원래 가지고 있던 감성이 되살아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음악뿐 아니라 미술이나 공연 등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지금까지는 조금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하면 과연 뭐라고 할까? 아마 "그냥 늙은 거야!"라고 하지 않을까? 그래도 상관없다. 음악을 조금 다르게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보다 풍요로워진 느낌이니까 말이다. 


  약간 의심이 들긴 하지만 나이 탓은 아닐 거라고 믿으련다.



(표지 사진 Photo by Henry Be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공가와 병가의 연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