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돌아보기, 퇴사 소감문 04
직장이라는 조직으로 연결되는 인간관계가 있다. 같은 시기에 직장 생활을 함께 시작한 동기가 있고, 회사에 이미 자리 잡은 선배가 있고 나 다음으로 회사라는 배에 올라타는 후배들이 있다.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다.
우선 동기 이야기를 해보자.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한 사람만 뽑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여러 명을 같이 선발한다. 대기업 같은 경우는 수십 ~ 수백 명을 같이 뽑기도 한다. 그중에 나와 맞는 친구가 몇몇은 있기 마련이고 그 친구들 덕분에 직장 생활에 위로를 얻는 경우가 많다. 직장 생활이 지치고 힘들 때, 회사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선배의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릴 때는 동기와의 대화로 응어리진 마음을 조금은 풀 수 있다. 자고로 회사와 선배는 욕해야 제맛 아닌던가? 반드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위로를 받는 건 아니다. 그 동기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 맞아, OO도 구매팀에서 고생하고 있었지, 거긴 더 힘들 텐데, 내가 불평할 때가 아니네'
이런 비슷한 생각으로 자기 위로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동기들이 서로 탄탄하게 받쳐주고 밀어주는 기수는 퇴사나 이직으로 이탈하는 경우도 적다. 가끔 회사에서 전략적으로 신입직원의 동기 모임을 지원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비로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끔 동기가 먼저 승진을 하거나, 조직에서 인정을 받으면 시샘하거나 질투가 날 수도 있지만 인간적으로 나를 무시하거나 아예 아랫사람 취급한다면 모를까, 더욱이 그건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한 참이 지나야 일어날 일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동기에게서 위로를 얻어보자.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 동기와 함께 만나게 되는 게 선배들이다. 선배들과의 관계는 몇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사수 혹은 같은 부서에서 만나는 선배는 내 업무 능력에 상당 부분을 결정하는 요소다. 사수가 일을 잘하면 통상 그 밑에서 일을 배운 후배도 일을 잘한다. 사수가 일을 잘한다고 내 일이 적어지는 건 아니다. 보통 일을 잘하는 사람은 업무도 많기 때문이다. 같이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선배를 만났다면 업무 측면에서는 운이 좋은 것이다. 사수 잘못 만나서 1년이 되도록 뭐 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경우보다는 낫다.
선배가 중요한 이유 중 다른 하나는 내가 어떤 선배와 친하게 지내느냐가 나에 대한 조직 구성원들의 초기 인상, 평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 뺀질거리기로 유명한 선배와 같은 부서에 사수 관계로 만나서 매일 점심을 같이 먹으러 다닌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나도 뺀질거릴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런 사수 아래에서 일을 배우면 업무를 여러 방법으로 다른 이들에게 미루는 걸 배우게 될 테니, 나도 뺀질이가 될 가능성이 높긴 하다. 의도치 않게 사내 정치라는 것에 발을 걸쳐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ㅇㅇ씨는 김 상무님 라인이지?'
'ㅇㅇ연구원은 이 본부장님 쪽 줄 잡았나 보네'
친하게 지내게 된 선배 한 명 때문에 이런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물론 신입사원일 때는 나도 모르게 상황이 흘러가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실제 언젠가는 스스로 저런 사내 정치를 이용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라면 결국 시간이 지나면 나오지 않을 말이다.
직장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게 후배다. 후배들과의 관계 설정은 동기나 선배와의 관계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선배들의 경우 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난 이후에는 그렇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나보다 윗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도 모르게 실수를 할 확률도 낮다. 그러나 후배는 그렇지 않다. 사람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후배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된다.
후배가 들어오면 갑자기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후배라고 함부로 말을 하는 사람. 후배에게 자기 일을 미루는 사람, 칭찬받을 일에는 나서고 질책을 들을 일에는 뒤로 빠지는 사람 등등 이런 사람들은 결국 한 번은 사고를 치기 마련이다. 사실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싹수가 노란 거다.
후배와의 관계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다. 후배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내가 직장 생활을 잘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척도다. 내가 후배에게 갑질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부당한 업무 지시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도 모르게 성적인 농담을 던지지는 않았는지? 늘 살펴봐야 한다. 내가 업무 능력이 출중해서 후배들은 일로 이끌 수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인간적인 부분에서의 실수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정년까지 직장에 다닐 생각이라면 후배들부터 챙겨야 한다. 나중에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나의 처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갑질, 성희롱의 대부분은 선배가 가해자고 후배가 피해자라는 걸 잊지 말자. 그런 일을 저지른다면 그건 후배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지만 스스로의 커리어도 바닥으로 처 박는 꼴이다. 말투부터 고쳐보자, 후배에게 툭툭 내뱉던 반말부터 주어 담자. 호칭과 말투만 바꿔도 많은 것이 바뀐다.
직장 생활은 결국 사람이다. 동기,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서로가 서로를 믿고 끌고 밀어준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상대를 깎아내리기도 하고 없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누가 낸 아이디어라는 이유로 채택이 거부되기 한다. 이런 걸로 내가 피해를 볼까 봐 걱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꾸로 내가 그런 일을 주도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결국 중요한 건 스스로 중심을 잡을 수 있느냐다. 항상 동료 관계가 좋을 수는 없다. 실수가 있으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싫은 소리를 해야 하고, 인간적으로 정말 싫은 사람이라도 잘한 게 있으면 칭찬해야 한다. 결국 사람 관계도 원친이 있어야 한다. 예외는 원칙이 공고히 선 다음에 둘 수 있는 것이다.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는 동기가 있고, 확실히 나를 이끌어주는 좋은 선배가 있고, 나를 믿고 따르는 후배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축하한다. 현 직장에서 정년퇴직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