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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영 Aug 19. 2022

눈치와 직장 생활

직장생활 돌아보기, 퇴사 소감문 03

  입사 이후 교육을 마치고 처음으로 출근하는 날은 긴장되기 마련이다. 그건 내가 경력직 이어도 심지어 CEO로 스카우트되어 출근하는 길이라도 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집단과 공간에 적응하는 것은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직장의 '공기'는 모두 다르다. 회사에 따라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부서마다 분위기가 다를 때도 많다. 요즘은 입사지원서를 내고 채용 과정에서 그 회사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아보기도 하는데 글로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커뮤니티에 써진 것과 실제로 내가 겪는 사무실의 분위기는 큰 차이가 있다. 사무실의 분위기를 빨리 파악하고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은 직장 생활의 시작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직장 생활의 필수 스킬 '눈치'다. '눈치'라는 단어는 많은 뜻을 가지고 있다. 눈치라는 단어를 보통 다음처럼 쓰인다.


 눈치를 채다

 눈치가 있다 / 없다

 눈치를 주다 / 받다


직장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어울리는데 필요한 것이 눈치다.  (Photo by Windows on Unsplash)


  중간부터 대화에 참여했지만 맥락을 잘 잡고 오히려 대화에 리드하거나, 주변 사람의 표정만 보고 상황을 정확히 유추하거나, 내뱉은 말 한마디에 대한 상대의 반응을 보고 나의 다음 단어를 적절히 선택한다면 눈치 있는 사람이라 불릴 수 있다. 결국 눈치는 대인 관계, 사회생활에 대해 단어다. 일단 눈치가 있다면 기본은 하는 셈이다. 직장에서 여러 사람들 속에서 분위기를 빨리 캐치하고 거기에 녹아드는 것이 중요하다. 부서장이 실 없이 웃는 사람을 어떤 표정으로 쳐다보는지, 선배들은 어떤 방식으로 서로 소통하는지, 사실상 분위기를 리드하는 게 누군지, 점심시간은 모두 칼같이 지키는지, 협력 업체나 다른 부서 사람들을 얼마나 입방아에 올리는지 등등... 알아두면 조금은 적응이 쉬울 것이다.


  하지만 직장은 동호회가 아니다. 그냥 잘 지내면 되는 곳이 아니라 일도 잘해야 한다.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일을 못하면? 회사에서 그 사람을 직원을 쓸 이유가 없다. 그래서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도 기본적은 업무 관련 지식과 스킬과 더불어 눈치와 같은 무언가가 필요하다. 


  일에 관해서도 신입 직원에게 친절한 회사는 많지 않다. 내가 담당해야 하는 업무가 무엇인지, 그 업무를 어떤 순서와 절차로 처리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인수인계를 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전임자가 퇴사한 이후 한동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일을 맡아야 할 때도 있다. 산더미 같은 일을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 등줄기가 뜨끈해질 것이다. 반대로 사무실에 나오긴 했는데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도 난감한 일이다. 일을 따로 설명해 주고 업무 지시를 하는 것도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무와 관련해서도 눈치가 필요하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물론이고 업무를 하는 데로 눈치, 이른바 '일 눈치'가 필요하다.(Photo by Marten Bjork on Unsplash)


  이때의 눈치는 '일 눈치'다. 다른 말로는 일머리, 센스(sense)다. 신입 직원에게 문서 하나 써보라고 하면 그 친구의 일 눈치가 어느 정도인지 대강은 알 수 있다. 기존에 회사나 부서에서 만들어진 문서를 찾아보고 그 양식을 활용하여 형식을 맞춘다면 일단 합격점이다. 콘텐츠까지 훌륭하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일 눈치가 없는 친구라면 전혀 생뚱맞은 형식의 문서를 한참이 지나서야 쭈삣 거리며 들고 올 것이다. 사수의 입장에서 일 눈치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큰 차이가 있다. 신경 써야 할 것이 하늘과 땅 차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 눈치가 있는 친구가 내 부사수라면 내 일도 줄어들고 훨씬 쉽게 일을 할 수 있게 되니 사수 입장에서도 정이 가기 마련이다.


  사람 사이의 눈치는 적당하면 충분하다. 동료 여러 명의 성향을 모두 맞추면서 동시에 내 마음도 편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적정한 선을 찾는 것이 나도 덜 피곤하다. 하루에 두 시간씩 주식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되고 세밀한 가정사 상담을 해 줄 필요도 없다. 그런 일은 적당히 선을 긋지 않으면 직장 생활 내내 이어질 수도 있다. 매번 선배 눈치 보느라 입맛에도 맞지 않는 해장국을 먹으러 다닐 필요는 없다. 마라탕이나 똠얌꿍이 땡기는(?) 날은 그걸 먹으면 된다. 


  하지만 일 눈치는 다르다. 일에 대한 센스의 한계는 그 끝을 정해 둘 필요는 없다. 아, 여기서 일 눈치는 일처리 속도를 높이거나 일의 퀄리티를 높이는 능력이다. 일을 대충 넘기거나, 내 일을 다른 사람의 일로 둔갑시키는 것을 일 눈치가 좋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건 그냥 염치가 없는 거다.


  일을 하는 것은 시험공부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과학 시험 준비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는 것은 시험에 나올 수 있지만 아인슈타인의 영어 철자와 생몰연대가 시험에 나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꼭 아인슈타인이 몇 년 몇 월 며칠에 사망했는지를 외우고 있는 친구가 있다. 물론 업무마다 다르긴 하지만 업무의 핵심과 맥을 잘 짚어야 한다. 시험에 나오지 않을 것을 주야장천 외우며 시험공부를 하는 것은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업무의 핵심과 맥을 잘 짚어야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다.  (Photo by Sebastian Herrmann on Unsplash)


  그럼 어떻게 하면 일 눈치를 높일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회사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에이스들을 잘 살펴보는 것이다. 우선 그 사람들이 만든 문서를 읽어보고 어떤 순서로 어떻게 일을 하는지 확인해 보자. 에이스로 소문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물론 가만히 관찰해보면 모든 걸 다 따라 할 수는 없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것으로 만들면 된다. 


  요즘은 MZ 세대들이 사무실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부서장의 기분에 따라 사무실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시대는 지났다. 코로나19로 인해 회식 자체가 사라진 이후 회식 없는 문화가 그대로 고착화되는 직장도 많아질 것이다. 직장에서 사람 관계에서 서로의 눈치를 보며 힘들게 사는 건 덜 하는 시대다. 이런 것에 적응하지 못하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입에 올리는 선배들은 입지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눈치가 아닌 일 눈치는 조금 더 챙기자. 기왕에 할 일이라면 다른 사람이 한 것보다는 더 잘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일 눈치를 키워두면 그건 고스란히 나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내가 일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도 넓어진다. 



  내가 일 눈치가 조금만 더 좋았다면 퇴사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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