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돌아보기, 퇴사 소감문 08
이제 '워라밸'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일(워크)과 삶(라이프)의 균형을 의미하는 말이다. 'A 회사는 워라밸이 좋아', 'B 회사는 워라밸이 폭망이야'와 같이 직장을 평가하는 말로도 자주 쓰인다. 이제 직장을 선택하는데 워라밸이 중요한 요소라는 뜻이다. 실제 직장인들이 연봉보다 워라밸을 더 중시하기 시작한 지는 한참 지났다. 한 대권 주자의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이 히트를 친 것도 2012년 대선 시즌의 일이다.
MZ세대의 경우 워라밸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젊은 직원들은 일을 마친 이후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한다. 전 직장 동료들 중에도 베이킹 배우기, 와인이나 맥주 만들기, 주짓수 배우기, 글쓰기 등으로 저녁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종종 직장에서의 일보다 자신만의 일에 더 가치를 두기도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이라면 워라밸에서 삶, 즉 라이프는 '육아'가 핵심이 된다. 육아에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출산 후 1년 동안 부부 중 한 사람이 육아를 신경 쓰지 않고 일중독자처럼 회사 일에만 매달린다면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비단 출산 후 1년뿐이 아니다. 가정이 있는 직장인이라면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나의 경우에도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오늘까지 마쳐야 하는 중요한 일과 갑자기 아픈 아이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회사일은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고 오늘까지 안 하면 정말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집에는 아내가 있다는 생각에 무게 추를 일 쪽에 두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생활의 연차가 쌓이면서 언제 어떤 이벤트가 일어날지 예측을 할 수 있게 되고 요령도 생기면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조금은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바쁜 시기가 오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직장인 중에는 한 사람은 밥벌이를, 다른 한 사람은 육아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눈 부부들이 많다. 이런 경우 각자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경우가 많다. 밥벌이 담당은 아이에 대한 것은 육아 담당이 모두 다 처리할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반명 육아 담당은 밥벌이 담당이 육아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해 주기를 바란다. 동상이몽이 길어지면 서로에게 서운한 감정이 쌓이게 된다. 자주 대화하는 것이 답이다. 서로가 생각하는 역할의 간격을 좁히고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서 말이다.
승진이나 보직을 받는 등 직장에서의 역할 변화도 일과 가정의 균형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보직을 받는 사람들은 보통 일을 열심히 하는 리더십과 책임감을 갖춘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리를 받으면 일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오해하면 안 된다. 부서장은 더 중요한 결정을 하고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자리이긴 하지만 더 긴 시간을 일하는 자리는 아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 자꾸 일쪽으로 치우치는 나 스스로에게 하던 몇 가지 암시(?)가 있다. 명확한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퇴근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은 한번 살펴보시기를 권한다.
회사 일은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많다.
오늘 이 일을 끝내지 않는다고 회사가 망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쉽게 해고당하거나 징계를 받지 않는다.
퇴근은 일이 끝나면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되면 하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다들 퇴근한다면 나도 해야 한다.
직장은 언제든 옮기면 된다. 하지만 내 가족은 평생을 함께할 사람들이다.
오늘 저녁에 만나는 나의 아이는 내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어린 아이다.
일과 가정에 자아실현까지 더해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 3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도 있다. 3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결국 자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독하지 않으면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농담을 덧붙여 한마디 하자면 그런 사람들과는 상종하지 않는 것을 권한다. 선배들이 하던 말 중에 담배를 끊은 사람은 독종이니 상종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훨씬 더한 사람들이다. 적어도 나 같은 범부에게는 일과 가정 두 가지만 챙기는 것도 벅차다.
직장인으로서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말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면 가족에게 양해를 구할 수도 있다. 다만 그런 일이 매일이라면? 일 년에 몇 번이면 족하다. 일도 일이지만 결국 가족보다 소중한 건 없다.
나의 아이가 아빠, 엄마와의 기분 좋은 추억이 없이 어른이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퇴근해라.
(표지 Photo by Jon Flobrant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