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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영 Aug 29. 2022

개미와 베짱이 in 직장

직장생활 돌아보기, 퇴사 소감문 10

  잘 알려진 이솝 우화 중에 '개미와 베짱이'가 있다. 왠지 모르지만 나에겐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놀기만 하는 베짱이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아마 내가 어릴 때 주변에 많은 분들이 노력, 근면, 성실을 가치를 강조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개미나 베짱이의 이미지가 스쳐 지나가는 동료들이 보인다. 가끔은 내가 지금 개미 같이 살고 있을까 아니면 베짱이처럼 살고 있을까 자문하기도 한다.


  보이는 일을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하고 항상 해결하려고 낑낑 대는 선배가 있는가 하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두고서 다른 부서 직원을 찾아가 몇 시간씩 수다를 떠는 후배도 있다. 당장 할 일이 없으면, 평소에 아무도 뜯어보지 않던 일을 하나하나 다시 체크하는 후배가 있는가 하면 작년 문서를 꺼내놓고 날짜만 올해로 고치고 일을 다 했다고 하는 선배도 있다. 


  나의 직장생활을 돌아보자면, 음... 아주 짧게 베짱이였던 시절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개미로 직장생활을 했다. 동료가 힘들어하면 나서서 도와주기도 하고, 양이 많거나 손이 많이 가는 업무가 나한테 떨어져도 군소리하지 않고 당연히 받아들였다.


  '그래, 그냥 내가 해야겠다.'


  늘 이렇게 생각했다. 체념의 뜻은 전혀 담겨있지 않다. 그냥 그렇게 하는 편이 심적으로 더 편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의 양이 많은 것보다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스트레스였다. 부서장이 되면서 이런 태도가 조금 바뀌긴 했다. 내가 어떤 일을 받아오거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순간 내 팀원들의 업무도 부가된다. 부서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 직장에서도 같은 결말일까? (photo by wikimedia)


  사실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사무실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의 결말은 이솝 우화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화의 결말은 '열심히 일한 개미는 흥하고, 마냥 놀기만 한 베짱이는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무실의 베짱이들은 어려움을 겪는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개미들이 더 곤경에 처하기 일쑤다. 


  어떤 베짱이는 모든 일은 자신이 하고 있고, 개미들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큰 소리를 친다. 개미를 제치고 먼저 승진하는 베짱이도 많다. 그래도 우화 속 베짱이는 자신이 놀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는데 사무실 속 베짱이 들은 스스로 가장 고생하고 있다고 말하니 이게 뭔가 싶다.


  개미들은 말이 별로 없다. 묵묵히 일만 한다. 오히려 자기는 별로 하는 게 없다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다고 말한다. 개미들은 자신이 열심히 해 놓은 일 때문에 나중에 곤란을 격기도 한다. 지적도 뭘 해 놓은 게 있어야 받기 때문이다. 해 놓은 게 많으면 칭찬받을 일이 많아질 것 같지만 오히려 혼날 일이 더 많아진다.


  개미들과 베짱이들은 서로 자기들만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개미들의 네트워크는 조금 느슨한 편이다. 네트워크의 중심이 업무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격려하고 자신들끼리는 서로의 노고를 알아준다. 서로보다는 조직의 미래와 발전에 대해 고민한다. 개미들 중에 리더들은 그런 개미들을 독려해 조직의 기둥을 더욱 강화하려고 노력한다. 서로의 존재를 각자 느끼고 거기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스킨십이 많지는 않다.


  베짱이들도 서로를 알아본다. 베짱이들의 네트워크는 끈끈하다. 그들의 대화에서 업무의 비중은 크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베짱이들의 관심사는 자신들의 이익, 조직에서의 기반이다. 베짱이들은 때에 따라 협력하기도 하고 갈라서기도 한다. 베짱이들이 득세하는 조직이라면 개미들의 조금 불쌍해진다. 개미가 고생하는 것은 어디서나 같지만 이런 조직에서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보상은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무실이나 개미와 베짱이는 있다. 최근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Photo by Kate Kalvach on Unsplash)


  요즘은 직장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지고 있다. 베짱이가 놀도록 그냥 두지 않는 몇몇 개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베짱이들이 개미들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승승장구하는 것은 더더욱 두고 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과거에는 경력이 좀 된 시니어 직원들 중에 베짱이가 많았다면 요즘은 갓 들어온 신입직원 중에서도 베짱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새로운 성향을 가진 직원들의 등장이 사무실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앞으로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개미와 베짱이'이야기의 결말은 또 어떻게 변할지 기대되지 않는가?



  아, 그리고 괜히 '혹시 나도 베..?..' 이런 생각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 말이에요. 



(표지 Photo by Anna Dziubinsk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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