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준영 Sep 01. 2022

10년 후 내 모습 그려보기

직장생활 돌아보기, 퇴사 소감문 13

  사람은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은 건 잘 견디고 살아간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제대로 살 수 없다. 직장생활도 비슷하다. 지금 내가 하는 고생이 보다 나은 미래로 이어진다면 기꺼이 그 수고로움을 감내할 수 있다. 제품 출시, 행사 개최와 같이 D-데이가 정해져 있는 일은 그 시기가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 확실한 시기가 그려지지 않아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곧 좋아질 거야.'

  '좋은 날이 올 거야' 


  라는 말로 서로를 또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지금도 일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과연 10년 후에 어떤 모습일까? 내가 평소에 원하던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서울에 집을 마련하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베이킹을 취미로 즐기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직장 안에서 10년 후 내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좋다. 직장이 미래의 내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승진은 했을까? 부서장이 되었을까? 어느 부서를 맡고 있을까? 


내 미래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주위의 선배들을 살펴보자 (Photo by Filip Filkovic Philatz on Unsplash)


  10년 후 직장에서의 내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면 주변에 선배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나도 그럴 수 있다. 조직에서 인정받아 임원까지 승승장구하는 선배가 있는가 하면,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워라밸을 추구하며 직장에 만족하며 사는 선배도 있다. 과연 나는 어떨까?


  미래를 그려볼 때는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다. 희망사항이 아니라 현실적인 요소들을 고려한 결과여야 한다. 내가 원하는 역할과 직장에서 나에게 원하는 역할은 다르다. 내 미래는 안타깝지만 내 희망보다는 회사의 의지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더 높다.


  내가 그려볼 수 있는 10년 후 내 모습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내가 원하는 모습과 예상되는 모습이다. 당연하게도 이 두 가지 모습이 꼭 일치하진 않는다. 직장에서 예상되는 내 앞길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라 한들 내 기대와 다르다면 실망할 수 있다.


  내가 다녔던 직장에는 존경할만한 선배들이 여럿 계셨다. 내가 직장을 계속 다닌다면 그런 분처럼 살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분들만큼의 열정은 없었다. 앞으로 10년 후에 오히려 지금보다 더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 아니, 할 수 있는 걸 떠나 과연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할까? 내 대답은 아니었다.


보고 배울만한 좋은 선배들은 많다.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Photo by Marija Zaric on Unsplash)


  결국 비전을 바꾸던가 아니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던가 둘 중 하나다. 무슨 말이냐고? 현실을 고려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바꾸거나 아니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사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현실과 타협 vs 도전


  도전이 무조건 옳은 방향은 아니다. 어떤 방향을 선택하더라도 나의 판단이어야 하고 스스로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선택했다면 그 선택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아직은 잘 한 결정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사는 방식을 바꾸기로,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표지 Photo by Zac Durant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이 싫어서 퇴사 한 건 아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